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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말 Aug 04. 2023

파울클레와 그의 시대

플라뇌르

파울클레와 그의 시대          


  파울 클레. 평소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솔직히 말하면 나는 평소에 그의 명성이 작품에 비해서 조금 과장된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동시대에 활동 했던 그의 기라성 같은 동료들의, 피카소와 칸딘스키 그리고 자코메티 같은 작가들, 후광을 뒤에 업고 마치 순풍을 탄 범선이 신나게 바람을 가르고 나아가듯 그의 이름값도 부풀려지고 과장된 것은 아닐까 의심했다. 거기에다 공피병으로 죽어가던 말년까지 작품에 헌신하던 불굴의 창작욕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나는 클레와 같은 시대의 다른 작가의 작품은 접할 기회가 종종 있었기에 나름대로 어느 정도 판단 할 수 있었지만, 어쩐지 파울 클레의 작품은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었다. 작품전 도록이나 관련 책자에 조그맣게 인쇄된 작품을 봤던 것이 전부다. 나는 그를 예쁜 색감과 단아한 형태의 구조적 회화를 추구하는 작가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색 감각은 마티스보다 부족하고 형태의 파격도 몬드리안에게 한 수 접어줘야 한다. 외국 호텔에 들어 갔을 때 로비에 장식용으로 걸려져 있거나 밋밋한 거실에 신선함을 더해줄 목적에 부합하는 수수한 그림이라고 생각해 왔다는 뜻이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한 기회에 도쿄 현대 미술관에서 파울 클레의 작품을 실물로 볼 기회가 생겼다. 비록 특별 전시의 제목은 ‘피카소와 그의 시대’였지만, 그 전시명에는 아마도 마티스나 자코메티도 쉽게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렇다면 파울 클레는 말할 것도 없다. 그렇지만 새롭게 피카소를 볼 수 있다는 설렘을 가지고 들어갔던 나는 생각지도 못하게 파울 클레의 작품 앞에서 상당히 긴 시간을 보내게 됐다. 작은 홀에 옹기종기 전시된 그의 작품을 연대별로 살펴보면서 나는 그 초창기 작품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천천히 다시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서 그랬는가. 사실 아직도 정확한 이유를 콕 집어서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분명 나의 발걸음을 강력하게 붙잡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림이 전하고 싶은 말이 아직 남았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그것은 작품의 설득력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호소력처럼 느껴진다. 물론 많은 추상화가 그렇듯 그것은 그저 감정의 덩어리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작가가 시도하는 일정한 양식의 틀(의 해체)이 있고, 배치되는 색감이 있다. 또한 무의식이 흘러 들어간 형상들이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째서인지 언어로 명확하게 표현될 수는 없는 것들이다.      


  그렇게 작품을 더듬듯 살펴보다가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파울 클레는 결국 생의 마지막까지 적절한 표현 매체를 찾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당대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오직 그 형태만이 담을 수 있는 것을 작품이 담고 있다는 기묘한 안정감을 받곤 한다. 그것은 오로지 그 형식과 그 기법으로만 표현되어야 했을 무엇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일종의 메시지와 그것을 담고 있는 매체가 완연한 일체를 이룬다. 마치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듯한 야릇한 쾌감이 존재한다. 피카소의 몇 가지 회화들은 반드시 그런 방식의 회화로 표현되어야만 하는 것이고, 자코메티의 조형들은 오로지 그 형식으로만 제작되었어야 했다. 라흐마니노프가 피아노를 택하고 톨스토이가 소설의 형식을 택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아마도 파울 클레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존재하는 어떤 이상이나 꿈 같은 것은 결국 정확하게 표현 될 방식을 찾지 못하고, 그렇게 캔버스 속 어딘가에서 맴이 치고 약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의 작품을 보며 어렴풋하게 느낀 것은 그런 종류의 어떤 야속함이다. 연대별로 드러나는 변화를 따르며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것이 혼란 가득한 한 인생에 대한 연대표로 읽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것은 전부 그의 작품을 보면서 ’왠지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 뿐이다. 명확한 근거나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논리 같은 것은 없다. 그런 이유로 나는 미처 해독하지 못한 고대 이집트의 언어를 남겨가듯 카메라로 그의 작품을 하나하나 순서대로 담아왔다. 사진으로 찍은 그의 작품을 집으로 돌아와 보고 있으려니, 이상하게도 그의 작품은 예전에 도록으로 보며 느꼈던 것처럼 그저 밋밋한 작품으로 보인다. 실제 작품 속에서 고뇌하고 방황하던 감정들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마치 시치미를 떼고 움직임을 멈춘 토이스토리의 장난감들처럼.

  나도 피카소와 동시대에 태어난 작가들의 고충을 나름대로 짐작해 볼 수는 있다. 우리는 메시나 조던과 같은 전무후무한 천재들과 동시대에 태어나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들을 왕왕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피카소는 그의 동료라는 사실 만으로도 그것이 하나의 업적이 되는 사람인 것이다. 영부인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유명인의 연인이 셀러브리티가 되는 것과 같다. 생전부터 범접 할 수 없는 예술계의 탑이었던 피카소를 곁에서 지켜보는 동료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앤디 워홀의 팩토리가 그야말로 안티 컬쳐의 생산 공장이 되어버린 것처럼, 가까이에서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당연한듯 무언가 만들어 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파울 클레도 어쩌면 그 중 한사람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는 글을 쓰거나 연극 배우를 했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작품들도 분명 굉장히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피카소와 비견될 만큼 ‘충분히’ 훌륭하냐고 묻는다면 아무래도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물론 그가 어떤 심정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펼쳐 왔는지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그것은 한낱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됐건간에 파울 클레의 작품이 적어도 그날만큼은 나에게 깊고 풍부한 암시와 강렬한 감흥을 선사해 주었다. 그날만큼은 아무리 모네나 자코메티라도 심지어 피카소라도 한수 접어줘야만 했다. 전시 제목을 ‘파울 클레와 그 시대’라고 해도 좋을만큼. 


  권투로 치면 아마도 클레의 작품은 화끈한 K.O.승리라기 보다는 언제나 진땀 판정승이다. 그렇지만 어쩌면 그것이 그의 작품만이 지닌 강력한 마력인지도 모른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세상은 언제나 우리가 전하고 싶은 것을 100퍼센트 적합한 형식으로만 담아낼 수는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글을 쓰는 나에게도 분명 익숙한 일이다. 그렇게 그의 작품은 아직도 호소력 짙은 고뇌와 약동하는 감정을 품은 채로 도쿄 미술관에서 관객들의 발을 붙잡고 있다. 마치 당신은 삶에서 어떤 형식을 취하고 있냐고 묻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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