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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말 Aug 04. 2023

사실은 그랬단 말이야

플라뇌르

사실은 그랬단 말이야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라는 책이 있다. ‘백과사전’이라는 명명이 무색치 않게 꽤나 두꺼운 책으로 베르베르가 그간 소설을 쓰기 위해 모아 왔던 다양한 잡학 지식의 모음집이다. 교보 문고에 갔다가 별 뜻없이 팔랑팔랑 넘겼다가 흥미로운 내용이 많아서 덜컥 구매해버렸다. 집으로 가져와 책상에 올려 두고는 한가하거나 읽을 거리가 없을 때 몇 장씩 보다보니 마치 두루마리 휴지가 절로 술술 풀려나가는 것처럼 어느샌가 끝까지 후루룩 읽어버렸다. 역시 베르베르는 단순한 주제와 지식의 나열에도 나름의 역동성과 설득력을 만들어 내는 재주가 있다. 그가 지닌 소재의 독창성 덕분에(때문에) 그의 유려한 문체는 저평가되는 면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의 책을 읽을 때면 어딘가 호쾌한 BMW를 몰고 드라이브하는 기분이 드는 데, 나만 그런걸까.     


  이 베르베르의 ’백과사전’ 처럼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나도 휴대폰에 소소한 지식 모음집 같은 것은 하나 가지고 있다. 살면서 이런저런 경위로 알게된 신비한 사실들, 주로 책에서 읽거나 주변 사람들이 알려준 내용, 을 차곡차곡 정리해서 모아 두고 있다. 마치 제 눈에 반짝이는 보물들을 모아두는 까마귀처럼. 가장 최근에 모은 지식은 바로 방귀에 관한 내용이다. 사람이 방귀를 뀌면, 그것이 정상적인 배출인 경우에, 약 100밀리리터 정도의 양이 배출된다는 놀라운 사실, 혹시 알고 있었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방귀를 두 번 뀌면 작은 우유팩 하나를 가득 채울 수 있다는 말이다. 그걸 채워서 뭘 어쩔거냐고 묻는다면 대답이 궁하지만.     


  나의 소소한 ’지식 모음집‘에 들어가는 지식에는 사회적으로 중대한 사실(뉴스에 나왔겠지)이나 아무도 생각지 못한 기발한 발견 같은 것은 없다. 복잡한 과학 상식이나 체계도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대체 어떤 내용이 있으며, 나는 어떤 기준으로 지식을 모으고 있는 걸까. 곰곰 따져보니 크게는 두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1. ‘우와, 사실은 그랬단 말이야?’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지식. 2. 아무런 실용성은 없지만 왠지 마음을 흐뭇하게 만들어주는 지식. 앞서 말한 방귀 이야기는 명백히 후자의 경우다. 왠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새가 짹짹대고 신록이 우거진 산길을 여유롭게 걷는 기분이 든다. 평소 당연하다고 여기던 익숙한 사물들을, 예를 들면 방귀라던가,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자세히 관찰하고 고찰해보게 된다. 이건 아무래도 타고난 성격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기준인 1. ’우와, 사실은 그렇단 말이야?'유형의 지식이란 이런 것들이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최신 자료를 몇 가지 간략하게 나열해보자면, 먼저 ’치킨 무‘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치킨과 곁들여 먹는 ’무 피클‘은 사실 제조 공정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유통 과정에서 비로소 완성 된다는 사실. 두둥, 정말로? 처음에는 밍밍한 일반 무였던 것이 마치 김치가 숙성되는 것처럼 시간이 흐르며 어엿한 무 피클로 새콤하게 변모한다는 것이다. 마치 열대 과일이 배를 타고 오는 기간에 맞춰 후숙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이 이야기를 듣고 궁금해져서 치킨 무의 생산 공정까지 공부하게 됐다. 못생기고 썩은 불량 무들은 사람들이 일일이 솎아 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도 왠지 신기하다. 하나 더 말해보자면 이번에는 어묵탕에 대한 이야기. 가정에서 어묵탕이나 북어국을 끓일 때 식당처럼 맑고 시원한 국물이 아니라 탁하고 텁텁한 국물에 좌절했던 경험 다들 있지 않습니까. 나는 여러번 있다. 재료의 신선도나 특정한 첨가물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단순히 ‘불의 세기’ 문제라고 한다. 두둥, 정말로? 단지 화력이 약해서가 아닌 너무 세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서, 해산물을 넣기 전에 약불로 줄이고 조리하면 된다고 한다. 이제 나도 당당하게 맑은 어묵탕을 끓여 대접할 수 있게 됐다.

  아쉽게도 어떤 정보들은 새롭게 알게 됐지만 ‘등재되기에는 조금 그런’ 경우도 왕왕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는 우체통처럼 보이는 작은 조형물이 하나 있다. 그것의 정체는 바로 쓰레기 배출함(크린넷)이다. 열림 버튼을 누르면 둥근 투입구가 열리고 닫힘 버튼을 누르면 쓰레기 봉투는 기계 속으로 사라진다. 이전에 사용하던 배출함처럼 부피도 크지 않고 냄새도 심하지 않아서 아주 좋다. 어쩐지 미래 도시에 살고 있다는 기분도 낼 수 있다. 그런데 크린넷을 이용할 때마다 매번 궁금했던 점은 이 작은 기계속으로 어떻게 수많은 쓰레기 봉투가 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조형물의 크기로 미뤄 보면 스무개도 채 안 들어갈 크기인데, 직원이 하루에도 몇 번씩은 비우고 있는 걸까. 고민 끝에 나는 ’진공관을 따라서 하이퍼 루프처럼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나보지'하고 멋대로 단정지어 버렸다. 그런데 고작 며칠 뒤에 ’정말로'그렇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됐다. 투입구로 들어온 쓰레기 봉투는 엄청난 압력으로 이송관을 통해 지하 집하장까지 순식간에 이동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분명 등재에서 제외되는 경우다. 막상 상상했던 것과 실제 시스템이 일치한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흥미가 폭삭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차라리 직원이 몇 번씩 비우고 있었다는 쪽이 더 흥미로웠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나의 ’지식 사전‘에도 기꺼이 등재해 줬을 텐데. 크린넷은 이렇든 저렇든 별로 관심도 없겠지만.     


  사전 속에는 이 외에도, ‘김포에 위치한 음식점 대머리 장어’는 장어의 민머리가 아니라 사장님의 헤어 스타일을 칭한다는 것. 해삼에게는 뇌가 없다는 것. 오래된 혈서의 글씨는 갈색이라는 것. 장기 이식 수술에서 간은 그 절반을 떼어낸다는 것. 대체로 이런 내용들이 있다. 나는 그런 것들을 짧게는 한 단어로 길게는 한두 문장으로 정리해 두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보들을 모아 두고 묵묵히 보고 있으면 그것들이 한낱 ‘당연한’ 말의 모음집처럼 느껴진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무용한 정보의 갈무리일 뿐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고 있는 것들이 이토록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보고 있지만 사실 보지 못했던 것. 그리고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보고 있었던 것. 그런 것들이란 언제나 글로 적혀지는 길 밖에는 없을 것이다. 세상에 당연한 일이 어디 있나. 그리고 당연하지 않은 일은 또 어디 있을까. 그러니까 여기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결국 ‘당연하며 당연하지 않은 지식의 백과사전’ 쯤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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