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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말 Aug 04. 2023

네버 브로크 어게인

네버 브로크 어게인          


  미국의 랩스타 영보이 네버 브로크 어게인(이하NBA)의 11번째 아이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11번째 아이라니. 말만 들으면 출산율 상승에 지대한 공헌을 한 건실하고 다복한 장년 어르신이구나. 국가적 차원으로 표창이라도 드려야 하는거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그 실상을 알고 나면 그런 식의 훈훈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 이번에 출산한 그의 11번째 아이의 생모는, 이름부터 난해한, 영보이 NBA의 아이를 낳은 아홉번째 여성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는 9명의 여성과 합작하여 11명의 자녀를 낳은 장장 23살의 남성이다. 맙소사.     


  그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생긴 궁금증은 과연 그는 몇 살부터 아이를 낳은 것일까 라는 것이다. 미국은 18살부터 어엿한 성인으로 인정하고 있으니, 그는 어린 나이에 부단히 노력하여 래퍼로서도 큰 성공을 거두고, 그 왕성한 활동력을 바탕으로 참으로 많은 여자를 만나 아이까지 쑥쑥 낳았다는 것이다. 첫째는 16년생의 알마니 굴든 양으로 곧 일곱 번째 생일을 맞게 된다. 햇수를 따져봤을 때도 그 외의 자녀들은, 둘째부터 열한 번째까지, 대부분이 동갑이거나 한 두살 터울이라는 뜻이다. 이거 참 족보도 어지럽겠군. 예전 말로 바람둥이도 머리가 똑똑해야지 할 수 있다던데, 이정도면 양자 컴퓨터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바쁜 23살 남자일지도 모르겠다. 하루 종일 음악 작업과 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한숨 돌릴 틈도 없이 11명의 자녀와 9명의 엄마들에 대한 세부 고려 사항들을 확인하고, 다음 열두 번째 아이를 낳기 위해서 열번째 예비 엄마와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상상해보면 그만큼 피곤한 인생도 없지 싶다. 어쩌면 그는 인생의 어느 순간 문득 신의 계시를 받고, 수많은 자녀를 갖는 것을 삶의 소명이라고 여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정말로 신의 부름을 받은 것처럼 그는 수많은 여성들과 잠자리를 가졌고 그들은 하나 둘 임신을 하기 시작했다. 잘 생각해보면 거기에는 정말 순수하게 계시적으로 감탄할 만한 무언가가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미국 엔터테인먼트 계에서 혼외 자식이야 자주 있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이정도 수준이면 현지에서도 꽤나 충격적인 일이라고 여겨지는 모양이다.      


  나는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실제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모른다. 주변 지인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나는 그들을 보며 부모의 마음을 조금 추측해본다. 누구는 아이를 낳아야 진정한 어른이 된 것이라고 한다. 아이를 보면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음을 알게 된다고 한다. 갓난쟁이 조카만 봐도 귀여운데 내 아이면 어떻겠냐. 라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골똘히 생각해봐도 나는 그게 대체 무슨 말인지 와닿는 점이 거의 없다. 그렇지만 그들의 공통된 의견이란, 쭈글쭈글한 핏덩이를 품에 안는 순간, 아, 이것이 바로 살아갈 이유라는 것이구나. 묵직한 아이의 무게와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삶의 무게를 가늠해보게 된다. 말하자면 하나의 새로운 생명을 태어나게 함으로써 역으로 자신 스스로도 태어난 이유를 알게 되는, 그런 것이지 않을까, 짐작은 하고 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은, 시기의 차이는 조금씩 있지만, 그동안의 인생이 기어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을까 고뇌한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사회 초년생에서 결혼 적령기로 접어드는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모두 하게 되는 공통의 고민처럼 보인다. 단순한 일반론에 실질적인 효용이 있는 경우는 무척이나 드물지만, 나는 잠시나마 그런 의혹에 전혀 빠지지 않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인생에서 결혼을 하여 자신의 가정을 꾸려 나간다는 것은 그런 불가피한 불안감과 깊은 공허함의 틈바구니에서 나를 구원 할 수 있는 하나의 유효한 기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어른들이 말하는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이라는 한물간 격언은 결혼이 언제나 무언가의 수단임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었을까. 좀더 단순히 말하자면, 우리는 결혼과 육아라는 막중한 과업을 부여받음으로써(혹은 스스로 부여 함으로써), 더이상 그런 복잡한 삶의 의미 따위는 고찰할 것도 없이 명확하고 확고한 진리 하나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굳건하고 건강한 가정을 이룩하고 한 아이를 올바르게 키워 내는 것을 삶의 목표이자 하나의 정답으로 설정하고, 앞만 보는 경주마처럼 우직하게 달려 나가면 된다. 그것이 실은 결혼과 양육의 본질은 아닐까. 가정의 광막한 무조건성은 하나의 작은 종교와 같은 의미를 지니곤 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가끔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어르고 달래는 부모들의 모습에서 무척 성스러운 과업을 수행하는 성자를 비춰 볼 때가 있는 걸까.     


  삶의 의미를 완정치 못하고 방황했던 그 가녀린 친구들은 어떤 식으로의 평안을 찾았을까. 그들은 여지껏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뗏목같은 심정으로 살고 있을까. 아니면 가정을 이루어 아이를 계획하며 마치 닻을 내린 배처럼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무언가를 발견해 냈을까. 그리고 그 배라는 것은 삶의 한 가운데에서 언제부터 재차 흔들리기 시작하는 걸까. 나는 역시나 아무것도 모른다. 그렇지만 단지 그들이 나름대로의 해답을 발견하고, 안식을 되찾기를 오래오래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저녁밥을 먹으며 영보이 NBA의 이야기를 이리저리 생각해보다가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제우스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운명을 타고난 추녀들의 침실로 숨어든다는 제우스의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고독한 그녀들이 꿈꾸는 모습으로 변신하여 간밤에 사랑을 나누고, 그들에게 자녀를 선물한다. 그리고 그녀들에게는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완고한 밧줄 같은 의미가 하나 생긴다. 대전제로서의 사랑이라. 경위가 어쨌건, ’네버 브로크 어게인‘의 수많은 자녀들과 엄마들에게도 ‘다시는 깨지지 않는’ 그런 것들이 있기를 나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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