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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말 Aug 08. 2023

글씨방 일곱 동무

플라뇌르

글씨방 일곱 동무          


  옛이야기 중에 '아씨방 일곱동무'라는 이야기가 있다. 길쌈을 하는 아씨에게는 바느질을 도와주는 동무들이 있다. 그들은 각각 자, 가위, 바늘, 실, 골무, 인두, 다리미까지 총 일곱이다. 이야기의 골자는 이렇다. 아씨가 오침을 하는 사이 '자 부인'이 먼저 말을 꺼낸다. '아씨가 바느질을 잘 해내는 건 다 내 덕이라구' 그 말로 불씨가 당겨지고 각자는 자신의 공적을 서로 뽐내기 시작한다. 서로서로 소리 높여 공치사를 함과 동시 다른 이를 힐난하기 시작한다. 꽤나 각자의 입장이 그럴싸해서 읽다 보면 누가 가장 큰 공을 세우는가(개인적으로는 실의 의견에 가장 동감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대체 얼마나 합리적인 방식으로 결말을 설득할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든다.      


  그러던 와중에 단잠을 자던 아씨가 뜬금 일어나더니 한마디 거든다. '너희가 아무리 잘 해낸들 내 손 없이 무슨 소용이 있어? 이 몸이 제일이지!'라고 말하며 반짇고리에 일곱 동무들을 쑤셔 넣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아무래도 이건 좀 반칙 아닌가. 갑자기 아씨가 등장해서 다 쓸어버리다니. 무슨 노아 이야기도 아니고. 바늘과 실과 자에게 끼얹어진 찬물이 괜히 한창 몰입하며 역할 놀이를 구경하던 독자에게까지 튀는 기분이다. 쩝.     


  만약에 내가 낮잠을 자고 있는데 글쓰기를 도와주는 것 들이 서로 다툰다면, 나는 누구 손을 들어줄까. 일단 등장인물을 좀 알아봐야 한다. 먼저 아이패드가 입을 뗀다.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다 내 덕이라고. 메모 앱에 지금껏 쓴 모든 글이 다 모여있잖아' 그러면 로지텍 키보드가 발끈한다. '어이가 없네. 화면을 터치하는 일이 얼마나 있다고. 내가 글씨를 입력해 줘야 글이 나오지' 가만히 듣던 노트북이 조용히 끼어든다. '얘는 네이버 어학사전 없이는 글을 한자도 못써. 글을 올리고 초고를 수정하고 다듬는 것은 언제나 내 몫이야' 이어서 스피커도 끼어든다. '암. 글은 안 써도 스피커는 늘 켜져 있지' 조명도 끼어든다. '조명을 먼저 키느냐 컴퓨터를 먼저 키느냐. 봐, 답 나오지' 따뜻한 커피도, 휴대폰도, 심지어는 잠옷도 한마디씩 거든다. 아이고 어렵다. 역시 단 하나라도 없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고 나니 화를 내며 반짇고리에 처박아버리는 아씨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애시 누구 하나 뺀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인 것이다.      


  이것은 결국 경중의 문제가 아니라 역할의 문제다. 나도 결국 왈칵 화를 내며 말한다. '야. 내 손이 없으면 대체 다 무슨 소용이야' 하며 옷장 속에 쑤셔 넣는다. 그러자 잠시 후 조용한 목소리로 엉덩이가 한마디 한다. '내가 가만히 앉아서 버텨 주니까 글은 나오는 거야' 이어서 뇌가 괜히 한마디 한다. '내가 없으면 얘는 글이 뭔지도 모를걸' 이래서는 끝이 없다.     


  글을 쓰게 돕는 것은 결국 환경인 것이다. 거기에 아이패드나 커피나 조명만 포함해서는 안 된다. 집과 방, 의자, 빨래통, 차, 화장실, 음식, 소설책, 가방, 컵, 쓰레기통, 수건, 안경 그 어느 것 하나 없으면 정상적인 글은 나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글을 쓰는 작은 공간을 벗어나서 헬스장, 나의 직장, 나의 친구들과 사람들. 그런 것들. 내 눈에 들어와주고 말을 건네고 귀에 속삭여주는 오감을 채우는 온갖 것들. 차창 밖으로 보이던 하늘과 귀갓길에 봤던 누런 노을의 빛살. 하루 종일 나를 이리저리 흔들어대는 모든 상황과 감정들. 이것들이 모여서 하나의 글을 쓰는 도구가 되어준다. 어느 것 하나라도 빠지면 그것은 모든 의미를 잃는다. 결국 모두가 동일한 만큼의 중요도를 지닌 것과 마찬가지. 나도 매한가지로 온갖 역할 중 하나의 배역을 맡았을 뿐이다.     


  아마 내 역할은 송수신의 통로다. 모든 의견을 듣고 그것을 한데 뭉쳐 내보내준다. 글을 쓰는 것은 바느질과 닮아서 자로 재고 가위로 자르고 바늘로 꿰어낸 옷감을 말끔히 다림질해 내놓는다. 그 과정에 관여하는 모든 환경과 요소들은 결국 씨실과 날실이 무량히 겹쳐진 옷감과도 같다. 도교의 진언처럼 자아가 옷감을 이루는 수많은 실 중 하나일 뿐이라면, 그것은 자타의 구분이 의미가 사라지는 무아경이다. 그런 인식 속에서는 글이 무아경으로 쓰여져 흐른다.      


  나는 그저 작은 임무 하나를 맡았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 역할은 세상 모든 역할을 합친 것만큼의 의미를 지닌다. 내가 없이는 온 우주도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나는 세상의 매우 작은 부분인 동시에 거대한 전부인 존재다. 결국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한 가지다. 자신의 역할에 자부심을 가져라. 그리고 건방 떨지 마라. 예, 알겠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자면, '결국 글을 써내는 건 내 덕이라구' 장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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