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그리고 ‘전‘ 과 ‘후‘
우린 참 잘 맞고, 그에겐 닮고 싶은 점이 많다. 그리고 결혼했다.
그는 자아가 크고 단단한 사람이다. 한결같고 주변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부모님과 주변 어른으로부터 끝없는 지지와 크나큰 인정을 받았기 때문일 거다.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알고 그 자신을 잘 챙긴다. 그런 모습이 가장 좋았고, 지금도 좋다.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니 내가 제일 갖고 싶었고, 닮고 싶은 부분이었다. 그래서일까? 지금까지도 일관되게 고집부리는 모습이 좋다. 그의 고집을 꺾을 필요도, 그를 구부러지게 할 이유도 딱히 없다.
그는 본인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큰 관심이 없다. 눈치도, 배려도 없다. 심하게 없다. 굳이 주변인을 헤아려주고, 눈치 챙길 필요가 없이 자랐으리라. 그와 사귀는 육 년 동안 나의 집 앞에 데려다준 적은 단, 세 번이었다. 학교 옆에 살고 있는 그가 날 데려다준다는 명분으로 굳이 돌아 돌아가 시간과 돈을 헛되게 만드는 민폐는 절대 끼치기 싫었다. 섭섭하고 속상해도 상대방에게는 물론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나에게 마음이 없어 보이는 남자친구를 보며 지인들에게 비난 섞인 말들이 나오면 온갖 핑계를 대며 그를 변호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내가 한 선택이다, 내가 더 좋아한다는 결론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와의 관계를 끊어내는 게 더 싫었다. 사귀는 관계였지만, 짝사랑이었으리라. 그리고 찌그러진 마음을 상대방에게 꺼내 놓는 내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다. 항상 반짝이는 하트 모양 마음만 보여줘야 한다 생각했다. 그게 사랑하는 방법이라 생각했었다.
그는 타인에게 큰 관심이 없으니 혼란스럽게 얽혀있는 나의 감정이나 미세한 심경 변화 또한 모른다. 내가 표현하지 않고 숨기기를 잘했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다. 직접적인 언어나 단순한 행동이 아니면 정확한 이유는 물론, 끝내 모르기도 하고, 설령 알게 되더라도 정확한 이유와 답을 알려하지도 않았다. 본인 또한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거나 드러내는 걸 어려워하는 편이고, 감정이 다채롭지 않고 변화의 폭도 작다. 타인의 감정변화에 민감한 나에게, 그는, 참 맞추기 편한 사람이다. 난 불가사의하면서 보호색을 띤 기묘한 생물체였지만, 그에겐 그저 스마일 마크 같은 사람으로 보였을 거다.
난 오직 내 자리를 위해 한 명이라도 움찔하고 다른 사람들의 자리가 좁혀지는 것이 끔찍하고 그 후 상황이 어색해져 싫다. 차라리 그 자리를 웃으며 떠나 도망치는 게 편하다.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 대다수 중 다수이고 싶다. 아무도 날 감지하지 못했으면 좋겠다. 뒷 배경이면 딱 좋겠다. 난 연인에게 마저도 내 자리가 만들어지고 커지는 건 부담스러웠다. 평범하지만은 않은 나도 그의 마음 속 나의 자리가 작아 섭섭한 마음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상황에 맞춰 마음에 드는 배경이 되려 노력했다. 그렇다고 완벽한 배경은 아니었고, 그도 그런 걸 원한게 아니었지만, 난 그의 배경 같은 사람이 되는 게 좋고 편했다. 더불어 항상 웃는 동그란 얼굴을 보길 원할 거라 생각했다.
단순하고 안정적이며 결점과 모난 곳이 쉽게 눈에 띄는 정삼각형 같은 사람이다. 내가 삼각형에 기대면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앉게 된다. 이 또한 나에겐 익숙한 감정이었을 거다. 누군가에 의지하고, 온몸을 맡긴다는 건 나에게 너무도 무서운 일이니까. 우린 세모와 동그라미. 너무 다른 서로의 모습 그대로를 존중해 주었고, 퍼즐처럼 딱 맞는 부분을 찾아 헤매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알았던 거 같다. 서로를 이해할 순 없어도, 불만이어도, 서로를 변화시키려 하지 않았다.
그는 다음 수를 생각하지 않으며 직관적이고 깔끔하다. 매사 진지하고 착실하며 진실되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나 필요치 않는 상황이 생기면 재빨리 회피한다. 그런 점 또한 절대적 평화주의자인 나에게 안성맞춤이다. 우린 둘 다 서로를 위해 계획을 하거나 변화할 생각은 안 했고, 서로에게 닥친 상황을 품고 각자의 속을 삭히려 노력했다. 서로로 인해, 마음에 생채기는 났겠지만 서로의 인내심을 경쟁하듯 속 상처는 내보이지 않은 채, 그리고 외면한 채, 겉으론 평온하고 화목하게 지냈다. 지나간 상황과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부스럼 만들기 싫다는 게 둘의 일치하는 생각이었을 거다. 껄끄러운 상황이 잠시 생겨나도 각자의 시간을 잠시 가진 뒤, 별 일 없던 듯 행동할 수 있었다. 둘 다 잘 덮었고 잘 묻었다. 그래서 크게 싸울 일도 없었다. 서로에게 주어진 임무를 자기 자리에서 책임감 있게 해내기만 하면 된다 생각했다. 서로의 역할을 세세히 나누고, 의논하지 않았지만, 명확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 둘은 서로를 믿었고, 매번 잘 해냈다. 완벽한 연인이면서 완벽한 팀워크를 가진 부부의 모습으로 잘 살아왔다.
오랫동안 그에 대해 잘 알고, 파악했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그에 대한 나의 예상은 틀린 적 없었고, 예외인 적 없었다. 농도의 차이가 있을 순 있지만 내용물은 확실했다. 이십여 년 넘게 함께 지내 온 지금도 물론 잘 알고 있다 생각한다. 그는 외형뿐 아니라 내면 또한 큰 변화 없이 세월들을 잘 지나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내가 염두하지 못한 착오점을 발견했다. 아주 치명적이다.
내가 나를 너무 몰랐다. 그가 생각하는 동그란 나의 모습은 아마도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었으리라 예상된다. 에너지와 자존감이 평균 이상으로 높아 가만히 있어도 반짝이던 스물두 살의 모습이었으리라. 그 시절의 날 기억하며 지금까지 내 곁에 있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고무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려져 있으며 속은 비고, 그 어디에도 비슷한 모습도, 틀도 없는 나의 진짜 모습. 그 시절에도 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몸서리치게 싫어했고, 그에게 들킬만한 일들은 최대한 피했다. 특히나, 정말 좋아하는 그의 앞에서 나의 미운 부분은 모조리 숨기고 싶었다. 사실 그 당시의 난, 정확한 모양도 없이 흐트러진 나를 소스라치게 징그러워하며 송두리째 증오했다. 진짜 나를 없애고자 부풀리고 덮어버렸다. 그를 더 잘 알게 될수록 그의 앞에서 좋아 보이고, 내 마음에 드는 부분만 드러내기 편해졌고,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난 되고 싶은 나의 모습으로 진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착각했다. 그가 없는 곳에서 몇 시간씩 나오는 이유 없는 눈물은 물론,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다양한 공황 증상들과 무기력함에 대해선 완벽하게 간과했다. 알리려 생각지도 않았다. 숨겼다. 그저 나쁘고 미운 된 건 철두철미하게 감춘 채, 나 혼자 몰래 감당해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기결혼이다.
그는, 그가 생각하는 나는, 내가 아닌 나와 결혼했다.
난 속인 게 아니다. 변한 게 아니다. 그때그때마다 내 마음이 편한 게 정답이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이십 대엔 마음에 드는 가면들로 날 빽빽이 뒤덮었고, 삼십 대의 난 떨어져 나가는 가면들 아래로 상처와 흉터가 보이는 나를 방치하고 외면하며 숨기기에 급급했다. 사십 대가 되어서야 진짜를 드러내고 싶어졌다. 배짱이 생겼고, 용기가 생겼다. 이제야 똑바로 나를 바라보고, 치료하고, 보살펴주려 한다. 그리고 흉터난 나의 모습도 보여주려 한다.
그동안 짧고 얕은 생각으로 그에게 자세한 설명은 모조리 생략하고, 그에게 무한한 이해심만이 생기길 바라고 기다리며 투덜대고 있었던 거 같다. 나에 대해 잘 모르는 그에게 다가갈수록 늘 같은 곳에 상처받는다. 생각보다 많이 약해지고 시들해진 나를 좀 더 보살펴 더 단단하고 튼튼해질 필요가 있겠다. 나에겐 그 사람으로선 상상하기도 힘든 불안과 고착들이 숨겨져 있다. 나도 몰랐던 나를 조금씩 알아채가고, 글쓰기로 실마리를 찾은 느낌이다. 그의 전폭적인 지지와 이해를 바라진 않는다. 그가 변해주길 바라지도 않는다. 내가 가족에게 나의 감정을 드러내고 보여주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고 올바른 것이리라 이제야 배웠기에. 그리고 지금 나의 가족들은 나의 감정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기에.
그 누구도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그가 화내는 일들을 줄여 주고 싶다. 그의 마음이 편하게 도와주고 싶다. 복잡한 수학공식을 설명해 주기도 벅찬데, 숫자부터 알려주어야 하는 현실에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다. 어렵게 꼬여있는 나를 쉽게 풀어 보여주자. 그러기 위해선 ‘껄끄러운’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민낯의 감정을 드러내고 날 것에 대한 생각을 교환하자. 익숙한 생략과 회피는 적당히 하자. 이제야 정말 조그만 것 하나씩 꺼내 펼쳐 보이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와 내가 나누던 언어 번역 기능에 오류가 살짝 있었음을 깨닫는 요즘이다. 그러면 또 나는 죄책감과 후회가 밀려온다. 솔직히 너무 어렵다. 어쩌면 이전에 편했던 방식으로 돌아가고 싶을지도 모른다. 함께한 지 이십 년을 넘겼고, 우리 둘 다 사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시작했지만, 우리 뒤돌아 보지 말자. 막막하고 서투르니 서로의 한 손만 꼭 붙잡고 균형 잡아가며 천천히 조금씩 나가자.
분명 그도 나의 손을 놓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리라. 느낄 수 있다.
****작가의 말****
요즘 글을 쓰며 이전의 의문점들에 대한 답들을 찾아서 모으고 있다. 너무 어두운 곳에 너무 오래 방치되어서 정체 모를 화석이 돼버렸다. 원래 모양과 종류가 무엇인지 구분해서 범주를 나누기도 쉽지 않다. 아마도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난 에너지와 용기가 필요한 듯하다. 그리고 나름대로 공부도 필요할 듯하다. 나의 세대주로, 배우자로, 보호자로, 아이들 아빠로, 함께 한 시간이 워낙 길었기에, 이 사람과의 관계를 아주 깔끔하고 명확하게 정리할 순 없겠지만, 글을 쓰기 이전보다 훨씬 가벼워진 기분이다. 기분 탓인지 글을 쓰기 시작하고 글을 수정하는 동안, 미운점도 많이 안 보인다. 이젠 서로에게 마냥 예쁜 점만 보일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다시 한번 친하게 지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