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높이기
생각하지 못한 주제로 완성된 글을 한 개 더 만들 생각이었다. 주어진 기간은 적당했고, 주제도 명확했다. 다른 자잘한 내용들엔 관심 없었다. 그저 ‘수기 공모전‘이라는 큰 제목만 눈 안에 들어왔다. 동네 조합에서 소소하지만 나름대로 활동한 사람으로서 한 번은 정리의 시간이 필요하긴 했다. 조합 활동의 마무리를 계획한 시점이기도 했다. 글을 쓰기 전, 이왕이면 제시된 평가 기준을 반영해서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과거의 활동가로서 다음 활동가에게 남기고 싶은 말과 활동하면서 나에게 남은 의미만큼은 또렷했기에 쓸 내용은 명확했다. 평가 기준에 따라 어떤 부분을 좀 더 부각하고 빼야 할지가 정해졌다. 글을 쓴 시간보다 고치고 정돈하는 시간을 많이 들여 넣었다. 완성됐다 싶을 때 종이로 인쇄해서 글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읽어보고 또다시 수정했다. 엄연히 공모전이기에 평가하는 누군가는 읽어 볼 테지만, 난 모르는 사람이고, 앞으로도 모를 사람이다. 참가에 의의를 두었고, 나 자신을 위해 후회 없는 기록을 남기는 거다. 꾸밈없고 거짓 없이 쓸 수 있었다.
글쓰기의 ‘ㄱ‘도, 공모전의 ‘ㄱ‘도 모를뿐더러, 무지했다. 그래서 용감했다. 그저 ‘한글을 아는 조합원’이라는 명분과 순간의 자유의지를 따랐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정작 엄마가 뭘 하는지 크게 관심 없는 아이들에게 공모전을 준비한다며 큰 소리로 생색내고 강조했다. 몇 개월간의 ’ 글 쓰는 엄마’에서 이번 기회에 ‘도전도 하는 글 쓰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높고 큰 벽에 부딪히고, 오르지도 못할 곳인 걸 알면서도 기어오르는… 처참하게 실패하는 엄마의 모습도 딸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실패를 확인한 후, 아이들에게 보여 줄 퍼포먼스도 생각해 뒀다. 익살스러운 표정과 과장된 몸짓을 장착하고, 좌절하는 주인공의 모습. 하지만 어둠 속에서 작은 빛을 봤고, 그 빛을 향해 손을 뻗는… 여기서 작은 빛은 거실의 작은 핀 조명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적당한 위치도 생각해 두었다. 상상하고 웃으며 타이밍만 엿보고 있었다.
한데 결과는 대반전이었다.
최우수상 : 풀비 - 사회로 향하는 다리
축하합니다. 풀비님 공모전에 수상자로 선정되셨습니다.
시상식과 시상금 지급 안내.
123월 45일 서울 xx구 00 컨벤션.
상금 오십만 원.
정부의 어떤 부서에서 주최를 하든 행사를 어디에서 하든 다른 수상자가 몇 명이든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상 다음 최우수상? 제목도 유치한데 최우수상? 별 내용도 없는데 최우수상? 게다가 오십만 원? 참여율이 저조했나? 맞춤법을 제일 잘 맞췄나? 제비 뽑기로 뽑았나? 제일 먼저 제출했나? 협동조합에서 대단한 활동을 한 것도 아닌데? 기쁘고 행복하기보다는 수많은 의문과 의심으로 뒤덮였다. 그리고 이번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면 수상결과가 잘못 발표됐다고 연락올 것 같았다. 나름대로 글을 꾸준히 쓰기 시작한 지 약 칠 개월 만이었다. 그래서 더욱 믿기지 않았다.
남편에게도 수상 소식을 알렸다. 남편은 한강작가가 세계적인 문학상을 받은 것보다 부인인 내가 상을 받았음에 훨씬 더 기뻐했다. 나보다 더 신바람 났다. 혼자 지하철을 타고 아이들 하교시간 전까지 조용히 다녀오려 했던 나의 계획과는 달리, 남편은 월차까지 내고 교통체증이 있는 곳까지 운전하여 동행해 주었다.
10주년 기념행사로 이전 행사들과 달리 성대하게 열린 행사였다. 여러 방면의 기여자들에게 상을 주었고, 내가 참여하고 수상한 분야는 전국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공지한 수기 공모전이었다. 시상식장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상받은 글들의 한 부분을 크게 인쇄해 전시도 하고 있었다. 삐까번쩍하게 큰 무대와 바로 앞에선 현악 사중주의 연주소리가 들려왔다. 지자체와 정부 기관에서 온 귀빈들이 시상자로 자리한 부담스러운 자리였다. 시상식 당일에 알게 된 내용은 우리나라 전국에 이만 개가 넘는 조합이 있고, 소속된 조합원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수기 공모전이었다. 행사장의 압도적인 분위기와 뒤늦게 알게 된 사실들에 더 놀라웠고 너무 당황스러웠다. 수많은 생각들이 밀물처럼 쓸려 들어왔다. 여러 명의 입선도 아닌 큰 상을 받은 게 믿기지 않고 얼떨떨했다. 수상자들이 모여 앉은 앞자리에 앉아 손뼉 치며 행사를 지켜보고 있지만, 왠지 내 이름은 오늘 호명되지 않을 거 같았다. 글쓰기를 싫어하는 어린이였던 내가? 책을 일 년에 열 권 남짓 겨우 읽는 내가? 이렇게 큰 무대 위에서 높으신 분들이 주는 큰 상을 받을 리 없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그럴 리 없다. 유명한 문학 공모전도 아니었지만 수기 공모전으로 상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황송할 따름이었다. 이 장소에 앉아 있는 내가 한없이 부끄러웠고, 쪼그라들 것 같았다. 몸 어딘가가 따끔, 뜨끔했다. 다리를 계속 떨고 싶어지고 손가락을 가만히 두질 못하겠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남편은 나와 달리 행사장의 분위기를 즐기며 바빠 보였다. 준비된 다과를 챙기고, 평소 아이들 사진을 찍던 남편은 시도 때도 없이 나의 얼굴 앞에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정말 많이도 찍어 주었다. “네가 무대 위에서 상을 받는데 내 손이 왜 벌벌 떨리지?” “내가 쫓아오길 정말 잘했지. 차 끌고 안 왔으면 너 혼자 이 많은 꽃과 이렇게 큰 수상보드를 들고 지하철을 어떻게 탔겠니?” 상을 받고 무대에서 내려와 숨을 제대로 쉴 수 있게 된 나에게 평소답지 않게 쫑알쫑알 댄다. 한결같이 의연한 성격의 남편도 난생처음 겪어보는 분위기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불려 나간 고등학생처럼 상을 받는 나의 모습을 남편 덕분에 사진과 동영상으로 명확히 남겼다. 그리고 남편은 행사가 끝난 후, 나 몰래 사진 몇 장과 함께 간단한 내용을 양가의 부모님에게 메시지로 알렸다. 시부모님은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전화로 축하인사와 함께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칭찬과 격려를 보내주셨다. 무려 20분 동안 듣기 좋은 다채로운 말씀들이었다. 남편보다 더 좋아하시고 기뻐하시는 시부모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를 정말 자식같이 생각해 주시는 것 같아 더 뭉클했다. 반면, 친정부모님은 메시지 확인 후에도 답변이 없었다. 그날 저녁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딸~ 축하해~ 근데 뭐가 당첨됐어?” “응? 당첨? 으응… 맞아. 뭐가 당첨됐어.”
“너 조만간 그거 그만둘 거라며~ 근데 네가 돼서 어떡하냐?” “엄마! 이거 정부가 주최한 거야. 내가 글 써서 공모전에서 상 받은 거야. 당첨된 게 아니야!”
“아… 그래? 상금도 받았다 하니 나중에 한턱 쏴~”
내가 글이란 걸 쓰는 것도 이상한데 상 받는 건 더 이상하겠지. 믿기지 않겠지. 제대로 할 줄 아는 거 하나 없고 맹한 애가 그림도 아니고 갑자기 글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쑥스러워도… 문자로 잘했다고 축하한다고 보낼 줄 알았다. 어떤 글을 썼는지 물어봐줄 줄 알았다. “오빠, 내가 엄마아빠한테는 알리지 말랬잖아. 빈말 아니었어. 부끄러워서 안 알리려 했던 게 아니고… 엄마아빠의 반응이 이럴 줄 처음부터 알았어. 그래서 알리지 말라고 한 거야. 예상은 했지만 막상 또 당하면… ” 남편에게 진즉에 솔직하게 친정부모에게 말하면 안 되는 이유를 말 못 한 내가 싫었다. 내 부모님을 너무 모르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두어 달이 지나고 만난 시아버지는 축하 말씀을 또 건네신다.
“친정부모님이 엄청 좋아하시고 자랑스러워하시지?”
“아니요.”
“왜 아니겠어~ 자식이 이렇게 큰 상을 받았는데, 좋아하시겠지. 우리 며느리 큰 상도 받았으니 맛있는 거 사줄게~”
친정부모님은 내가 눈치 못 채게 마음 속으론 좋아하셨을까? 세상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부모의 관심이 부족하다 생각한 적 없다. 광기 어린 집착이 관심이라 생각하는 부모님이기에 진저리가 난다. 부모님에게 인정과 축하를 받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다. 하지만, 나 스스로 이뤄낸 성과에 대해 인정은커녕, 우연히 일어난 사건처럼, 별 일 아니고 하찮은 일처럼 대하는 모습들은 봐도 봐도 잔인하다.
반면, 축하를 넘어 찬양에 가까운 시부모님의 칭찬에 나는 그저 맑은 날 단비를 맞는 해바라기처럼 빙그레 웃으며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래도 될 것 같았다. 오랜 기간 동안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칭찬을 잘해주는 방법만 고민해 왔다. 누군가에게 칭찬받을 일이 너무 오랫동안 없었다. 그러니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육 학년 때 성당 어린이미사 반주자로 활동하고 마무리 지을 때, 중고등학교 때 내 그림이 복도에 걸렸을 때, 입시미술을 배운 지 삼 개월 만에 미술실기 대회에서 입선했을 때, 내가 원하는 학과에 입학했을 때, 부분 장학금을 받았을 때, 첫 아이를 낳았을 때, 둘째 아이를 낳았을 때. 돌이켜보면 칭찬받을 일은 참 많았다. 부모님은 그럴 때마다 질문을 하셨다. 네가 왜? 몇 등으로? 몇 명이나 받는 건데? 언제? 대부분 모르는 답들이었다. 그래서 정말 별일 아니라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이번에는 내 순서가 되어 일어난 사건들이라 생각했다. 크게 기뻐하고 유난 떨 필요 없이 겸손하게 다음 날을 살아가면 된다는 걸 자연스레 깨달았다. 부모님의 큰 뜻을 몸소 느끼며 지금까지 왔다.
그런데 시부모님 앞에선 타인에게 하듯 겸손 떨고 싶지 않았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따지고 싶지 않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잘 한건 잘 한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시작했고 내가 완성해 낸 성과에 대한 축하와 감탄을 오롯이 다 받고 싶어졌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떠한 이유로, 우연히, 운 좋게 받았을 거라는 상상은 하지 말자. 진짜 바보 같다. 내가 나를 인정해 주자. 나 자신에게까지 겸손하지는 말자. 나에게 보내주는 찬사와 나에게 쓰는 마음은 다 받아들이자. 그리고 축하해 주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인사를 꼭 전하자.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