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공모전 출품작
“안녕하세요~ 풀비활동가입니다!”
“본사 직원이세요?”
“아니요~ 저는 이 동네 주부이면서 활동가입니다.”
“활동가? 그게 뭐예요?”
“봉사자 같은 거예요~”
조합활동을 하면서 짧게 내 소개를 해야 할 때 하게 되는 말이다. 매장 직원도 아니고, 본사에서 나온 사람들도 아닌, 이 여자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묻는 분들이 종종 계신다. 봉사자라는 단어가 활동가를 표현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단어이지만 협동조합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안성맞춤이다. 난 전업주부가 아닌 협동조합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이다.
결혼 후 육개월 만에 첫아이 임신을 했고, 출산과 동시에 전업주부가 된 나는 내 이름을 잃고 애들 이름으로 불렸다. 더러 나를 ’ 십삼층 엄마‘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었을 뿐. 어디에서도 내 이름이 불릴 일은 없었다. 한 동네에 오래 살다 보니 아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동네엄마들은 아이 교육과 재테크에만 관심이 쏠려 있었다. 관심 없고 반복되는 이야기들이 단조롭고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아이들이 자라며 기관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자연스레 오전에 혼자 있는 시간도 늘어났다. 누가 감금한 것도 아니었고, 집 밖을 쉽게 나갈 수 있었지만, 혼자 동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순 없었다. 잠깐의 산책에서도 동네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커피 한잔 하는 시간을 만들 수 있었지만, 어쩐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관심사가 맞지 않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점차 피하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무인도에 갇혔다. 사회라는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우리 집이라는 무인도. 타인과 대화다운 대화 없이 혼자 지내는 날들이 쌓여갔다. 엄마로서 역할을 나름대로 잘 수행하고 있으면서도 사람이다 보니 사회생활 혹은 소속감에 대한 갈증에 메말라갔다.
사년제 대학에서 산업디자인학과를 전공하고 디자인 회사와 미술학원에서도 일 했었지만, 경단녀였다. 말 그대로 경력이 단절된 여자, 전업 주부였다. 일을 하기에 아이 둘은 아직 엄마 손길을 많이 필요로 했고, 아이 둘을 기관에 맡기고 사회로 나가기에 난 너무 위축되어 있었다. 감히 내가 사회로 나아가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란 생각보다는 일단 혼자만의 시간을 좀 더 알차게 보내고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십여 년간의 육아 후, 아이 둘이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있을 때 짬짬이 캘리그래피를 배워 민간 자격증을 땄다. 대단히 큰일이 아닌 이 마저도, 거창한 용기로 시작해, 표현할 수 없는 보호막을 쪼개고 나아갔다. 하지만 그 끝은 공허하게 끝났다. 이어져야 할 다음 점은 찾지 못한 채, 연결 선 없이 또 멈춰버린 듯한 나날들이었다.
혼자 집에서 캘리를 끄적이던 중, 원하는 모임을 만들어 보라는 조합의 문자를 받았다. 뭔가에 홀리 듯 캘리그래피 모임을 만들고 싶다고 신청했다. 그렇게 2019년 봄, 재능기부를 시작으로 조합에 발을 들였다. 캘리를 배우고 꾸준히 하고 싶다는 조합원을 모집했다. 압화와 캘리그래피를 이용해 간단한 만들기를 하며 조합원 다섯 명과 함께 캘리모임을 이어갔다. 함께 모여 연습한 실력으로 가을마다 압화가 어우러진 캘리봉투를 만들어 팔아 씨앗재단에 기부도 했다. 나를 비롯해 함께한 캘리모임원들 모두 너무 뜻깊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내가 특별히 대단한 걸 알려드린 것도 아니었고, 즐겁게 이야기하며 캘리 하는 시간을 함께 보낸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기부까지 해냈다는 사실에 나 자신이 좀 더 성장했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멋진 사람이 된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캘리+이야기’ 모임지기가 되었다.
그때부터 내 소개는 달라졌다.
캘리그래피 모임지기 풀비.
캘리 모임 이외에도 한 달에 한 번씩 조합의 모임지기 회의에 참여하면서 나 자신을 소개할 기회도 많이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취미생활 앞에 내 이름 석자가 함께 불리는 것도 기분 좋았지만, 아이들의 엄마가 아닌 내 이름으로 조합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어서 더 행복했다.
무인도에 갇힌 채, 아이들 엄마로만 있었다면 알 수 없었던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 들을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타거나 등산을 하며 사람들과 함께 건강을 챙기는 모임,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아 조리법이나 물품에 대해 알아보는 모임, 공정무역에 대해 공부하는 모임, 지구와 환경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며 몸소 실천하는 모임, 식물에 관심이 많아 식물을 공부하며 텃밭을 가꾸는 모임 등 다양한 모임들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다양한 나잇대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새로운 걸 발견하고 세상에 관심을 갖는 일은, 단조롭고 좁은 시야에 갇혀 시간을 보내던 나에겐 충분히 자극이 되고, 신나는 일이 되었다. 개인적인 문제뿐 아니라, 사회생활에 대한 결핍과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시기에 협동조합은 내가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다리가 되었다. 그리고 세상에 관심을 더 기울이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용기와 어울려야 할 동기를 찾게 해 주었다.
캘리그래피 지기로서 성실히 조합활동에 참여하던 어느 날, 활동가 한 분이 조심스레 나에게 부탁을 하셨다.
“디자인과 나왔다고 하던데, 혹시 간단하게 포스터 하나 만들어 줄 수 있어요? 포스터 안에 들어갈 내용은 운영 회의에 나와서 함께 듣고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 제가요?”
“부담 갖지 말고 할 수 있는 선에서 조금씩 도와줘요.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은 없어요.”
“…네! 제가 할 수 있는 부분 있으면 조금씩 도와드릴게요.”
2022년 코로나의 막바지에 나는 운영회의에 참여하며 조합활동에 본격적으로 스며들게 되었다. 그러면서 협동조합에 관련된 서적을 정기적으로 함께 나누고 공부하며, 삶을 더 지혜롭고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나 이외에 나의 가족에게만 꽂혀있던 나의 시야는 나의 동네와 이웃으로 커졌고, 활동가로서 길거리 환경 캠페인이나 식품법이나 환경법 제정에 동참하고, 타인들에게 독려하며 지구와 환경으로 관심 범위는 점차 넓혀졌다. 전업 주부, 아이들 엄마 혹은 학부모로서 겪을 수 있는 한정된 경험에서 벗어나 협동조합은 나에게 다양한 ‘첫 경험‘을 시켜주었다. 캘리그래피 재능 기부자로, 모임지기로, 캠페이너로, 민주주의 시민으로, 건강지킴이 등등으로 여러 역할들을 경험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세상에 공부해야 할 게 참 많다는 사실도 일깨워 주고 있다.
“엄마~ 엄마 어렸을 때 꿈이 뭐였어?”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에 세상에 없는 직업을 해보고 싶었거든. 근데 지금 그거 하고 있는 거 같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변화무쌍하고, 이전에 없던 새로운 범주를 만들고 개척해 나가고자 하는 협동조합처럼 앞으로의 내 삶 또한 전에 없던 새로운 도전을 해볼 수도 있고, 충분히 새롭게 만들어갈 수 있음을 배웠다. 그리고 이에 공감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내 삶을 꾸려나가고 싶다. 비록 작은 힘이지만 더 나은 세상으로 멋지게 꾸며 우리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세세히 이야기해 주고 싶다.
****** 작가의 말 *******
이 글은 올해 상반기에 있었던 수기 공모전에 제출했던 에세이다. 브런치에 올리려 다시 검토해 본 시간이 제법 짧았다. 올 초보다 글 쓰는 실력이 크게 오르진 않은 것 같아 실망스럽다. 실명이나 실제 기관명은 다른 단어로 대체하고 올린다. 공모전의 ‘ㄱ‘도 모르는 글린이(= 글쓰기가 어린이 수준)지만, 무식해서 용감했다. 때로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뒷 일 걱정하지 말고, 눈 감고 무작정 나가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란 걸 깨달은 조합활동이었다. 지금은 조합활동에 마무리를 하고 있지만, 조합활동으로 인해 ‘글쓰기‘라는 또 다른 그림을 그리러 출발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전혀 겁나지 않는다. 실패라는 단어는 없는 글쓰기 세상이기에… 그렇다고 너무 열심히 하진 말고, 꾸준히 오랫동안 해보고 싶다.
<공모전 심사 기준>
적합성- 활동을 통한 긍정적인 변화와 교훈
진정성- 실제 경험 기반 및 진솔한 서술
구체성 - 구체적 묘사, 성실한 참여 내용
전달력 -글의 흐름, 구성, 전개, 문장력 및 표현력
활동을 통한 긍정적 변화, 평소 느끼고 겪는 어려움 해결하는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