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라는 선생님
“ㅇㅇㅇ 선생님~”
“ㅇㅇ쌤~“
성인이 되고서 나서도 20년이 훌쩍 넘었다. 그 기간 동안 이러한 저러한 이유로 여러 나이대의 사람들에게서 많이 들어온 호칭이다.
들을 때마다 흠칫한다. 여전히 적응 안 되고 어색하다. 물론 존중과 친절의 의미로 이름 뒤에 붙여 불러주시겠지만, 나에겐 너무 과분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나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들이다. 내가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들을 수 있는 맞는 상황일까?
내가 생각한 ‘선생님’의 의미는 ‘진정한 어른’이다. 타인에게 영감이 되고, 본보기가 되는 사람. 넓은 포용과 이해를 보여주는 사람. 항상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싶은 그런 사람이다. 그런 훌륭한 선생님들은 세상에 참 많다. 티브이나 인터넷만 보더라도 다양한 분야에 꼭꼭 숨어있다. 하지만 직접 만나더라도 가깝게 지내긴 쉽지 않을 테다. 헌데 나는 몇 달 전에 진정한 선생님을 운 좋게 만났다. 심지어 자주 만나고 있다. 보통사람이 아니다.
글쓰기라는 선생님이다.
전에 난 의미 없는 옹알이만 해댔다.
의성어마저 온전히 들어주는 선생님에게서 말하고 듣는 법을 배웠다.
감정을 배우고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 나를 좀 더 쉽게 풀어낼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나를 보여줄 수 있다.
쓰는 법을 모를 땐 내 안에서 달궈진 덩어리를 다룰 줄 몰랐다. 가족들에게 비난이 될까, 상처가 될까 싶었다. 안전한 곳을 찾아 잘 묻는 게 좋을 거라 생각했다. 한참을 삽질하다 혹여나 흘릴까, 새어나갈까 둘둘 감싸 꼭 잡아들었지만... 이걸 들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다. 삼켜 버렸다.
묵히면 나에게 좋은 약이 될 줄 알았다. 독이 퍼져 나가는 고통이 성장통이라 생각했다. 처음 겪어 보니, 참을성이 부족하여, 나만 힘든 줄 알았다.
나를 삼켜 버린 덩어리를 걷잡을 수 없다. 점점 더 크게 번지고 진해지는 고통을 파내려 했었다.
눈을 감은 건지 뜬 건지도 모를 어둠을 웃음이라는 빛으로 덮으려 했었다.
온몸으로 파다 못해 긁어대니 이젠 내가 닳아 몽당해진다. 웃으려 올린 입 꼬리가 나를 찌른다. 끝낼 방법을 찾아 헤맸다.
선생님과 함께 어려운 고민을 즐긴다. 따뜻하고 밝은 곳에서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본능적으로 여기 어디쯤 아무렇게나 내려놓는다. 틀리는 건 없다.
절대 혼나지 않는다. 안전하다. 엉망진창 울퉁불퉁한 문제들을 정리해 본다. 화려한 꾸밈이나 어려운 공식은 필요 없다.
직접적이고 담담하게 알게 해 준다. 온 마음으로 잘 받아 준다. 선생님의 뜻을 오롯이 흡수한다.
글쓰기는 나에게 무한히 알려준다.
새롭고 놀라운 것들을 깨닫게 해 준다.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길을 보여준다.
용기를 준다. 위로해준다. 열정을 준다. 움직이게 해 준다. 칭찬해 준다. 나를 다듬어준다. 함께 해준다. 준다. 준다. 준다.... 글쓰기는 무언가를 계속 준다.
그리고 난 받기만 한다.
글을 써보고 소리 내어 읽고 글을 다시 고치면 낯선 감각들이 길어진다. 세워진다.
나의 세포들을 일깨워 활기를 준다. 잔뜩 움츠려 있던 내가 봄을 만난 식물처럼 바빠진다.
의심할 필요 없다. 내가 찾아 헤매던 게 맞다.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는 중요치 않다. 글을 쓰기만 하면 된다. 충분하다.
지금 이곳에 멈춰 서서 그동안 숨기려 깊게 파놓은 구덩이에 튼튼한 뿌리를 내릴 거다.
핑계 대며 머뭇거려 왔던, 껄끄럽다며 피해왔던 것들을 양분 삼아 단단하게 솟아오를 거다.
지금 이 글로 새로운 나무 하나를 또 심었다. 다양한 물음의 글들을 많이 심어 끝내주게 멋진 숲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나라는 숲이 위로가 되길 바란다.
글쓰기가 나를 구원해 줄 선생님이다.
*** 작가의 말
선생님을 매일 만나던 학창 시절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에겐 기억에 남는 선생님도 없었다. 그저 먼저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선생님이라는 단어에는 선생님에게 예쁨 받고 칭찬받고 싶어 애쓰는 아이들의 뒤통수가 기억난다. 쉬는 시간마다 왜 앞에 몰려가 안달복달하는지 궁금해했다.
글쓰기라는 선생님 앞에선 그 시절의 어린애처럼 굴고 싶다. 잘 모르겠다고 투정 부릴 거다. 도와달라고 진상 부릴 거다. 말 같지 않은 부탁들로 맘껏 치댈 거다. 도덕성 따윈 집어치우고 남 욕도 실컷 해 볼 거다. 시끄럽게 내 자랑으로만 떠들어 볼 거다. 떼쓰고 징징 대고 싶다. 일름보가 되고 싶다. 무모하고 싶다.
글쓰기한테 인정과 사랑을 실컷 받고 싶다.
나도 선생님에게 관심받으려 무던히 애쓰고 싶다. 못되게 욕심부리고 싶다. 잘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