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ace May 23. 2024

상담센터에 발부터 들이기

나의 첫 심리상담

누구에게나 처음은 어렵지만 첫 심리상담은 내게 쉬웠다. 당시 나는 내 말을 솔직하게 듣고 이해해 줄 누군가가 간절했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준비만 되어 있다면 당장 내 밑바닥의 깊게 박히고 고여서 썩은 생각들까지 모조리 꺼내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상담센터 방문 결심, 당시 나의 고민]


처음으로 찾은 상담센터는 교내 학생심리상담센터였다. 학교 안에 학생들을 위한 각종 상담센터가 있다는 것은 지나가다 들은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2017년 대학교 3학년이던 당시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추천을 통해 처음으로 상담센터라는 곳에 발을 들이게 되었고 그것은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바꿨다. 


당시 내가 가진 고민은 식이장애였다. 음식 생각을 정말이지 그만하고 싶었지만 그것 외에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밥을 먹기 전에는 밥을 먹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고, 밥을 먹은 후에는 몸무게가 조금이라도 늘까 봐 우울해서 또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먹은 것을 리셋해야겠다는 생각에 속을 게워내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지만 비위가 약해 포기했었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다 보니 인생의 다른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접수상담과 1회기 상담]


상담센터마다 다르지만 내가 방문한 교내 학생심리상담센터에서는 처음으로 방문한 학생들에게 여러 장의 서식을 제공했다. 나를 포함한 내담자들은 간단한 신상정보를 작성하고, 방문이유와 상담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 그리고 문장완성검사 등을 진행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문항 중 '지금의 기분은 어떻습니까?'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나는 거기에 '아무 기분도 없다'라고 답했다. 나는 첫 상담이 진행되기 전에 내가 느낀 이 기분을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하고, 지금까지도 이것과 비슷한 멍한 기분이 들면 스스로에게 상담이든 병원 치료를 권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며 우스꽝스럽지만 나는 첫 심리상담 때 아주 우물쭈물거리며 상담실에 들어섰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못생겨 보이거나 뚱뚱해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을 통해 나중에 듣게 된 얘기지만,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부적절한 말 같아서 하지 않았지만 그 당시의 내가 예뻐 보였다고 한다. 체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외모가 건강하고 예뻐 보였던 것은 당연하며, 낯가림과 어색함을 부수고 내 문제를 타개해 보겠다는 대학생인 내가 기특해 보였다는 것이다. 식이장애를 아예 벗어버린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그때의 내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그러나 그 당시의 내가 예쁘다는 말을 들었다면 다시 한번 그 말에 갇혀서 저녁을 굶었을 것이 뻔하니, 선생님이 그 말을 그저 삼킨 것이 아주 적절하긴 했던 것 같다.



여기까지가 첫 심리상담 당시의 내 고민과 상태, 그리고 상담 시작까지의 이야기다. 

나는 아직 젊지만 대학생 시절보다는 모든 선택을 할 때 많은 것을 따져보게 되었다. 이게 다 아는 것 없고 잃을 것 없어서 부릴 수 있는 용기라는 생각이 든다. 겁 없이 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린 그때의 나 덕분에 지금의 내가 과거로부터 굉장한 위로와 해답을 얻고 있다.  

이전 01화 불안장애 극복을 위한 노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