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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ce May 31. 2024

먹고 싶어 아니 먹기 싫어

1초 만에 영혼의 허기를 채웠던 방법: 폭식

먹는 데 문제가 있던 시절의 나는 음식 집착과 외모 강박이 남달랐다. 이 두 가지는 보통 건강하게 공존하기 어렵다. 밤에는 간절하게 내일이 오길 기다렸고 (빨리 아침밥 먹으려고), 다음 날 기다리던 식사를 하면 스스로가 쓰레기처럼 느껴지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내가 유독 무서워하던 것은 체중계에 찍히는 몸무게였다. 전 날 불건강한 식사를 했더라도 그다음 날 소수점 단위의 체중이 늘어있지 않으면 그날 하루는 행복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전 날 건강하게 세끼를 챙겨 먹었으나 다음날 수분 무게라도 늘어있으면 그날은 절식해 버렸다. 배고프고 불건강한 슬픈 돼지 시절이었다. 그러면 건강한 체중감량을 시도해 볼 법도 한데, 나는 '운동이 하고 싶으면 피티를 끊어주겠다'는 부모님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운동센터에 가서 내가 불건강한 비만이라는 사실을 선고받을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당시의 나는 아주 외롭기도 했다. 어쩌면 이 비극의 원인은 영혼의 허기였다. 연인 관계만큼 친밀한 관계는 부담스럽고, 아마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을 가족과도 적당한 거리를 둔 채 살았다. 그런 내가 인정받을 수 있는 창구는 인스타그램이었고, SNS를 정말 열심히 들여다봤던 기억이 난다. 관심과 인정이 간절할 때 휴대폰 너머의 좋아요 알림이 얼마나 달콤한지 생생히 기억하므로 그때의 나를 나무랄 생각은 딱히 없다. 그때는 그랬다.


식이장애를 주제로 진행한 심리상담이 5회기에 접어들었을 때부터 선생님이 자꾸만 어린 시절에 식사를 한 기억에 대해 물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유치원에 다니던 때부터 혼자 밥을 차려 먹었으며, 주로 참치캔이나 김치볶음밥 같은 것을 즐겨 먹었다고 말했다. 어린 내 입맛에 참치는 기름지고 맛있었고, 투니버스에서 방영하는 만화영화를 보면서 참치와 밥을 먹는 시간은 어린 내게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남은 하루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언제든 음식은 내 옆에 있었고, 무엇이라도 입에 넣고 씹으면 1초 만에 마음이 안정되었으니.

나의 부모님은 밤낮없이 일해 자수성가했다. 나는 충분한 교육을 받았고, 감사하게도 빈곤에 시달려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들이 열심히 일하는 동안 나는 집에서 밥과 유대를 쌓았으므로, 체지방과 만화영화 외에 어떤 것과도 친밀한 관계 형성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성인이 되어서도 나를 위안하는 방식은 (혼자 있는데도) 몰래 먹는 음식이었다. 눈에 보이는 체중으로 불건강한 생활습관을 속이는 나날의 반복.


남은 5회기 동안 나는 음식이 아닌 다른 것에 의존하는 방법을 배워갔던 것 같다. 책, 음악, 마음을 나눌만한 친구, 가족에게도 천천히 의존하는 방법을 배웠다. 단번에 실행할 수는 없었고 그런 대안들은 대체로 실망스러웠다. 원래 약은 입에 쓴 법이겠거니 했다.


삶에서 어떤 것은 반드시 그 순간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믿는다. 이를테면 유년시절의 깊은 대화와 안정 같은 것. 그것을 내 어린 시절에서 영영 놓쳤다는 식으로 과거를 밉게만 왜곡하고 싶지는 않다. 어떤 순간엔 부모의 사랑 덕에 충분히 행복했을 것이지만, 많은 날 혼자 밥을 차려먹으며 마음을 달랬을 6살의 내가 가끔 안쓰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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