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을 다시 하며 한 생각(1)
문제의 원인이 내 안에 있으면 약물이나 상담으로 치료를 하고, 내 밖에 있으면 환경을 바꾸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원인이 외부에 있으면서 쉽게 갈아 끼울 수도 없을 때, 이를테면 원인 제공자가 가족일 때에는 접근 방법과 해결 방법이 꽤나 복잡해진다. 이제는 나만의 평화를 다지는 법을 조금 알 것 같았는데, 무탈함에서 오는 지루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보고 싶은데 아무래도 가족이 도와주지 않을 때였다.
사전적 개념의 가족은 복잡다단한 삶을 헤쳐나가는 나에게 변함없는 등대와 같이 고정불변한 안전지대가 되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모든 이의 등대의 빛과 방향은 변덕스럽다. 어떤 경우엔 빛 자체가 사라져 있기도 하고 말이다. 슬픈 사실은 가족, 특히 부모의 지지 없이 온전하고 완벽하게 강한 인간은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 그런 인간이라는 착각을 오래 해왔기 때문에 단언할 수 있다. 그런 개념은 소설에나 나오는 허상이다.
그렇게 나만의 등대를 더 이상 찾을 수 없어 외롭고 무서워진 올해 여름,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상담센터를 찾아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약물치료로 표면적인 어려움을 가라앉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더 이상 속이 곪아서 난 상처의 겉면에 반창고만 붙이는 식으로 치료할 수는 없었다.
핵심은 애착, 어린 시절 이야기
어떤 주제를 들고 가도 늘 애착 이야기를 하게 된다. 어린 시절에 주양육자와 얼마나 친밀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쌓았는지, 내가 기억하는 생애 첫 기억은 어떤 것인지는 평생에 걸쳐 나에게 영향을 준다. 어린 시절이라는 것은 바꿔 끼울 수도, 개선할 수도 없는 영역이라 이것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나는 가끔 속이 답답해진다.
나의 첫 기억은 꽤나 안쓰러운 편이다. 부모님은 내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맞벌이를 하느라 내가 만 3세 정도인 때부터 나를 놀이방, 유치원 종일반에 맡기셨다. 내 생애 첫 기억은 그런 나를 놀이방에 맡기려는 아빠에게서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온 힘을 다해서 울고 애원하던 기억이다. 그보다는 조금 더 자란 뒤의 또 다른 기억은, 병원에 입원해 있던 엄마에게서 떨어지기 싫어 침대 난간에 매달려 울던 기억이다.
당시 어른들은 그 정도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지만 그 당시의 나는 생존에 위협과 공포를 느꼈다. 나는 죽을 만큼 무섭지만 그들은 나를 너무도 쉽게 떼어놓고 사라진 것 같았다. 젖 먹던 힘을 다해 울며 빌어도 들어주지 않았던 요구였다. 내가 납득할만한 최소한의 설명이 뒤따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가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겠으며 그들은 기억도 못할 과거의 일이다. 그러나 그런 경험의 반복은 아기였던 나를 아주 외롭고, 또 잘 포기해 버리는(회피) 사람으로 성장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