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다녀야 하지만 차마 그럴 수 없는 사람들
정신과에 다닌다고 고백할 때면 주변 공기의 미세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힘들었겠다는 눈빛,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 일반적이다. 일단 위로부터 하고 보는 사람도 있다. 이 중 화자를 가장 편안하게 한 반응은 어떤 것일까.
정신과 치료 사실을 밝힐지 말지는 청자에 따라 갈린다. 편견 없이 잘 들어줄 것 같은 사람에게는 얘기한다. 나는 나의 오랜 투쟁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친구 몇 명에게만 정신과 치료 사실을 알렸다. 이를 굳이 얘기한 이유는, 정신과 치료와 약물 복용은 그 시기 나에게 자연스러운 일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정신질환, 내면의 고통, 깊은 사유와 가까이 닿아 있는 친구에게는 어떤 희망적인 포용력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혼자 깊게 생각하는 시간을 피하는 사람, 정신적으로 무결하고 떳떳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서툰 사람에게는 이를 숨긴다. 보통 가족, 그중에서도 어른들이 그렇다.
나는 가까운 어른들이 정신적 문제로 고통받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먹고 자는 데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듯했다. 심장이 두근거려 잠들기 어렵다거나,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입맛을 잃고 한 번에 5킬로 이상 체중이 줄어들었다거나 하는 증상을 보였다. 그럼에도 일평생, 그들은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 없다. 정신과 방문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 방문이 선택지에 있어본 적이 없는 느낌이었다.
처음 아빠가 나의 정신과 치료 사실을 알았을 때, 아빠는 이를 어떤 일탈이나 충동적 행동으로 받아들였다. 지난 10년간 나는 이십 대의 특권으로 그 시기에 하면 욕을 덜 먹는 짓들을 착실히 수행하며 부모를 걱정시킨 바 있다. 예를 들어 남자친구와 동거하느라 집에 연락 뜸하게 하기, 과음하고 친구에게 업혀 들어오기, 담배 피워보기 및 들키기, 타투 등이 있었다. 얘는 좀 솔직하고 충동적인 면이 있으니까, 남들 겁 내는 것도 턱턱 해보고 그러니까. 정신과 방문을 남다른 용기를 내어야만, 세간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야만 할 수 있는 특이한 행동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내 동력이던 충동성과 자유로움을 상실했기 때문에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내 자아와 영혼이 죽어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 의지로 움직이던 나는 이미 죽고 어떤 허상의 의무를 강박적으로 수행하다 말라버린 식물이 된 느낌이었다. 그렇게 아파서 일상생활이 어려울 때쯤 좀비 같은 표정으로 방문했을 뿐이다. 성실한 중년들은 이것이 사회에 틀에 맞춰 나이 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여기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누구에게나 이런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안다. 내 마음의 키를 사회적 의무에 맡긴 채 흘러가듯 사는 대신 최선을 다해 알아차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다지 부끄러울 일도 아니라는 것은, 동네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 상담 차 1회만 방문해 보아도 알 수 있다. 그곳은 점심시간 여의도의 식당가가 따로 없다. 점심시간의 은행과도 비슷했다. 나이 든 할아버지부터 아주 어린 여자아이까지 넓은 대기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게다가 입소문 난 병원의 경우 짧게는 한 달, 길게는 1년간 대기를 해야만 방문할 수 있다. 그 정도로 일반적이고 흔하다. 내 옆사람이, 앞사람이 나와 같은 병원에 다니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조금만 아파도 가봐도 되는 게 아닐까. 내가 조금만 힘들고 마음이 찌뿌둥해도, 일단 방문해서 그 증상을 전문가에게 털어놓고 진단받아봐도 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