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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ce Jun 22. 2024

가족에게 정신과 약 봉투를 들킨다는 것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지만 어떤 비밀이라도 결국 들키고 만다. 나는 일기장을 서랍에 넣어 잠그고는 그 열쇠를 잃어버릴 만큼 허술한데, 그런 탓에 그간 많은 비밀을 들키고 들킨 줄도 모르고 살아왔을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던 당시 나는 본가에서 통근을 하고 있었다. 집 근처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고 매번 2~3주분의 약을 처방받아 왔다. 장기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약봉투가 그렇듯 두껍고 존재감이 컸다. 약은 내 방 침대맡에 두고 하나씩 꺼내 먹었는데, 허술한 나는 약을 뒀다고 해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다니지는 않았다.

대학생이던 시절, 가방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던 습관 탓에 호기심에 피워본 담배를 들킨 적이 있다. 그리고 딱 그 모양으로 아빠는 내 약봉투를 발견했다.


일터에 있던 얼빠진 내게 아빠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정신과 약 먹는 것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 했다. 가장 먼저 든 마음은 안도감이었다. 약을 말하는 말투에 조바심이나 실망이 묻어나지 않아서였다. 어쩌면, 컨디션이 잘 맞아떨어지기만하면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약에 대해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복용의 이유? 증상? 차도? 아파서 약을 먹는다는 것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아파서 약을 먹는 상황을 포장하고 순화해서 가족을 설득해야 하는 지경이 되면 아픈 마음이 더 아파지고 말 것 같았다.


정신과 약 복용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맥락을 드러내야 했다. 같은 집 식구에게도 숨기며 몰래 앓던 고통을 꺼내 그 배경을 고해야 했다. 화자와 청자 모두가 괴로운 시간일 것이고 그 대화가 성공하리라는 계산이 서지 않았던 참이다.

그날 저녁 걱정하던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각자의 사적인 일정으로 시간을 내지 못한 탓이다. 목에 걸린 가시를 꾸역꾸역 넘겨 소화시키듯 우리는 회피에 성공했다. 모든 것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왜 물건 간수를 못해서 화근을 만들었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방 문을 벌컥 연 채 출근한다거나, 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지고 다닌 행동에는 ‘담배가, 정신과 약이 잘못은 아니지 않나?’ 하는 반항심이 있었다. 내 뾰족한 면이, 돌발행동이 가족에게 정면으로 받아들여졌다면 좋았겠으나 그렇지는 못했다.


부모님이 내 방에서 숨겨둔 화장품 따위를 발견했을 때엔 격세지감을 느꼈을 것이다. 어깨의 타투를 발견했을 때에는 마음이 내려앉았을 것이나 그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신과 약 봉투는 다르다. 화를 낼 수도, 따질 수도 없이 그저 많은 질문을 삼켰을 것이다.

서로가 용기를 낼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라 여기기로 했다. 그저 아파서 먹는 약이라는 걸 이해할 용기와, 내가 그간 아팠던 이유를 설명할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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