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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ce Jun 17. 2024

정말 괜찮아질 때까지

정신건강의학과 방문 및 정신과 약 복용일기

약 3년 전의 나는 불면증 치료를 위해 약 1년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담 및 약물치료를 받았다. 정신과 방문 이전에는 심리적 어려움을 겪을 때 교내 심리상담센터와 사설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여러 차례 받은 경험이 있었다. 그런 내게 정신과 진료란 아주 간결하고 허무한 것이었다. 정신과에서는 마음과 기억을 뒤져 상담사와 긴 대화를 나눌 필요는 없었다. 병원마다 다양한 치료법을 병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가 다닌 정신과에서는 상담은 간결하게 진행했으며 드러나는 증상을 가라앉히기 위한 약처방을 주로 했다.


당시 가져간 문제가 불면이었다 뿐이지 내겐 오래 앓던 썩은 문제가 있었다. 그 문제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밤에 잠들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며칠에 한 번은 울면서 잠들었다. 약물치료가 주로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내가 원한다면 진료 시 그 문제에 대해 터놓고 얘기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정신과에 다니던 시절의 나는 주로 주눅 들어있었고 아주 피곤해있었다. 때문에 아주 편안한 환경이 아니고서야 마음을 터놓고 길게 얘기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내 치료의 목적은 단순하게 '잘 자기'가 되어갔다.



[2021/8/29(일) 새벽의 일기]

가끔 내 일기장을 뒤적여보면... 나는 조금 더 빨리 정신과에 갔어야 했다. 나는 조금 더 빨리 괜찮아질 수 있었다. 나에게는 아주 경도의 우울증과 평균 수준의 불안장애가 있다고 한다. 그게 증상으로 드러나는 것이 불면증이고. 2주분의 약을 처방받아 왔고 어제부터 먹고 있다. 앞으로도 꾸준히 복용해 볼 생각이다. 주 2-3회는 마시던 술도 꼭 끊으라고 하셨다.


불안장애를 치료하는 약을 처음으로 복용한 한 달간 나는 빠른 속도로 안정되었다. 약 복용 2주 후부터는 일기에 행복, 편안, 미래 같은 단어가 쓰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지 못했던 문제는 기억력이었다. 기억력의 퇴보. 나는 점점 덜 예민해졌고 그만큼 덜 똑똑해지는 느낌이었다.


[2021/10/1(금) 저녁의 일기]

많은 걸 놓치고 산다는 느낌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제 뭐 했는지, 아까 점심은 뭘 먹었는지 몇 초는 되짚어야 한다. 한 주를 되돌아보면 나는 분명히 따뜻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즐겁고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약물치료로 안정된 나는 전보다 인생의 밝고 따뜻한 면에 집중하게 됐다. 한편, 한 때 깊이 파고들고는 했던 삶의 어둡고 칙칙한 면에 대해 고찰하는 능력 자체를 상실해 버린 기분도 들었다. 나는 딱 필요한 만큼만 사고할 수 있었다. 그 외에는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2021/10/31(일) 저녁의 일기]

다시는 이런 상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참 다행히도 약 덕분에, 내가 나를 위해 처방받은 약 덕분에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 잠은 참 잘 잤다. 이상하게 어제저녁에는 어느 것 하나 해결되지 않은 상황과 더 바닥을 찍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는 와중에도 평화롭고 행복했다.


이 시기의 나는 객관적으로 걱정이 많을 수 있는 상황에서 느릿한 평화와 행복을 느꼈다. 분명 위험을 감지해야 한다는 걸 눈으로 봐서 알지만, 그것에 대해 생각하느니 하늘을 한 번 더 보고 가족과 얘기를 한 번 더 하는 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나는 2022년 7월까지 약을 복용하다가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단약 했다. 임의로 단약 한 것은 아니고, 용량을 70퍼센트, 50퍼센트, 25퍼센트로 줄여가며 서서히 줄여나갔다. 의사 선생님의 가이드를 철저히 준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약을 완전히 그만 먹게 되었을 때 신체 증상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정신과 진료 전과 같이 울며 잠드는 일이 없었다. 불면증도 그간 사라져 있었기 때문에 약을 더 이상 복용할 이유가 없는 상태였다. 그렇게 치료를 종료한 이후에는 정신과를 다시 방문한 적이 없다.


내 정신적 문제가 그 시기를 끝으로 사라졌냐 하면 전혀 아니다. 내 머리와 마음을 약에 의지하는 행위를 중단했다 뿐이지 세상은 똑같이 차갑고 어려웠다. 잠깐의 약 복용이 세상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을 고칠 수는 없었다. 나는 남은 생을 살면서도 꾸준히 힘든 일을 겪을 테지만 매번 약물치료를 택할지는 모르겠다. 이것이 내가 정말 괜찮아지는 과정인지는, 말하자면 아직 알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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