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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리모아 Dec 11. 2022

열심히 공부하는 중하위권이 성적을 못 올리는 이유

셜록홈즈를 따라하려다 박두만이 된다.

  선생님 입장에서 가장 안타까운 학생은 어떤 학생일까?

공부를 진짜 열심히 하는데에도 불구하고, 성적은 절대 안 오르는 그런 학생이 아닐까?


  매일 밤10시까지 남아서 문제집을 풀고 주말에 스터디까페에 가서 공부를 하고

최상위권 학생과 같은 노력 혹은 그 이상의 노력을 하고도 성적이 안 오르는 그런 학생이 우리 주위엔 종종 보인다. 이유가 뭘까?

  내가 내린 나름의 결론은 이렇다. 중하위권은 이해와 활용을 못한 채로 문제를 풀기 때문에, 그들의 노력은 문제풀이를 통하여 이해력과 응용력을 키우는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최상위권 학생만큼 많은 학습량을 따라하는 것에 있다. 자기가 쓴 필기의 양, 고른 정답의 양이 성적을 결정한다고 믿고, 문제를 풀 때는 자기가 노트에 적어서 외운 정답을 떠올리려 낑낑댄다.


  아마 이글을 읽는 사람 중 상당수는, 그게 공부아니야? 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그것은 공부가 아니다. 암기는 공부의 극히 일부일뿐 그것을 유연하게 활용하지 못한 채로 머리에 쌓아두는 것은 쓰지도 않는 에너지를 자꾸 저장만 하는 비만 환자와 다를 바 없다. 지식은 내가 읽고 외워서 쌓아둔 개념의 양이라면, 지혜는 그것을 얼마나 잘 활용하고 찾아내는가?하는 능력이다. 하위권 학생일수록 지혜롭게 풀어야할 문제를 지식으로 풀려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우리는 모두 구구단을 외웠기에 7x8의 정답을 보자마자 알고있다.

그렇기에 상위권도 하위권도 보자마자 답이 나온다.


그렇다면 77x8은 어떨까? 하위권 학생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건 안배웠는데요?" 

상위권 학생은 자신이 배운 지식을 어떻게든 활용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방법이 떠오를 때 까지 머리를 굴린다. 그리하여 마침내  "70x8, 7x8" 이 두 개를 더하면 될 것 같은데요? 616 맞나요?" 라는 문제 해결 방식 자체를 배운다. 이때 공부를 안하는 학생은 "그런걸 내가 어떻게 따라해?"라고 포기한다. 차라리 이게 낫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아 답이 616이었구나! 선생님이 이거 중요하다고 하니까 시험문제 나올 수도 있겠다. 필기하고 외워야지." 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이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한다고? 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놀랍게도 실제로 이렇게 생각한다.

그 지식을 배운 학생이 그날 저녁 편의점에서 700원짜리 물건 8개를 살 때 과연 7x8을 떠올릴 수 있는가?

문제해결과정에서 자신이 배운 수많은 지식 중 지금 이 문제 해결에 가장 적합한 지식을 떠올릴 수 있는가?

이것이 나는 1등급과 하위권을 가르는 차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반복한 이경험이 쌓이고 쌓여 고등학생쯤 되면 상위권 학생은 하위권 학생이 끙끙대는 동안 이미 수많은 생각을 끝마치고 올바론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예를들어 내가 "윤동주의 서시에서 나뭇잎은 쉽게 떨어져버리는 작고 연약한 존재를 상징해~ 그럼 바람과 별은 무엇을 의미할까? 맞춰볼 사람?" 이라고 했을 때

지혜로운 학생은, "화자는 바람에 흔들리다 떨어진 작고 연약한 이파리를 보며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끼고 있구나, 그런데 밤하늘에 빛나는 별은 어떨까? 아하 별이나 이파리나 둘다 작고 연약해보이는데도 별은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구나, 그래서 시인은 작고 연약한 존재를 사랑하고 본인도 작은 존재이지만 별처럼 흔들림 없는 인생을 앞으로 살고싶다는 결심을 하고있는것이구나."

라는 일련의 생각의 흐름이 빠른 속도로 이어져 마침내, "그러므로 바람은 시련과 고난, 별은 희망과 흔들림 없는 의지를 상징한다."는 올바른 결론에 도달한다.

반면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아하 오늘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에서 별은 희망을 상징하고 바람은 시련과 고난이었구나! 별표!! 암기!!!"

더 안좋은 케이스는 "어 이거 저번에 배운건데?" 아니면 "어 별? 다른 시에서 별은 보통 좋은걸로 나오던데...?" 라는 고민 끝에 "혹시 희망인가...? 아 나도 맞출 수 있었는데" 라고 생각한다.

더더욱 안좋은 케이스는 "아 윤동주? 일제강점기잖아. 별? 이거 학원에서 다 배웠지~. 별은 보통 희망이잖아." 이런 식으로 머리가 좋아서 암기만으로 시를 마스터한 학생은 새로운 시를 봤을때도 자기가 마스터한 지식을 그대로 모방하여 해석할뿐 시를 해석하는 원리 자체는 절대 알 지 못하는 채로 상위권까지 도달하고 만다. 암기는 딱 개념 원리까지만, 그 이후에는 개념 원리라는 지식의 틀을 그 원리에 따라 활용하여야 하는데, 단순 암기량만을 무작정 늘린 다음 암기를 떠올리려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히 선생님이 가르칠 때에도 엄청난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생에게 "이 시의 이 구절은 이런 뜻이야~" 라고 정답부터 바로 알려주면 학생은 "뭐야? 선생님도 나처럼 대충 느낌대로 해석하네?" 라고 생각한다.


느낌대로 수사하는 형사 박두만

  하지만 선생님들은 셜록홈즈고 하위권 학생은 "살인의 추억의 시골형사 박두만"이다. 공통점은 둘다 보자마자 범인인지 아닌지 판단을 내린다는 점이고, 차이점은, 셜록 홈즈는 명확한 근거에 기반하여 100% 확실한 범인을 잡아내지만, 박두만은 그저 자신의 불명확한 직감과 순간적 인상을 토대로 판단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적 인상이라는 것은 어느정도 사실에 기반하였기에 버리면 안되는 중요한 증거이다. 순간적 인상조차 받지 못하는 무의욕 학생들보단 낫다.


이번에도 구체적 시를 통하여 알아보자

내 마음은 촛불이오
그대 저 문을 닫아주오

김동명 <내 마음은> 中


  학생에게 시를 읽게하고 화자의 감정과 시인의 의도에 대해서 물었을 때, 순간적 인상은 해답을 찾는 것에 분명 도움이 된다. 아니, 될 때가 있다. 그렇기에 순간적 인상도 중요하다.

예를들어 '그대'라는 표현은 "야 이년아" 혹은 "이 새끼야" 혹은 "너" 같은 다른 표현에 비해 보다 부드러운 느낌, 상대에 대한 긍정과 존중, 그러면서도 조심스러워 하는 인상을 우리에게 순간적으로 준다.


  그래서 우리는 "아 화자는 그대에게 긍정적 사랑 존중 애정 우정과 같은 감정 중 하나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라고 판단 내릴 수 있다. 하지만 학생은 그런 느낌을 못받을 때가 많다. 그대가 아니라 좀 더 예스럽고 익숙치 않은 표현이 나왔을 때 (예를들어 어옹이라던가), 학생들은 그 단어의 뉘앙스를 전혀 캐치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기억을 더듬어 지식을 단순 모방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는 것이다.

  촛불은 어떠한가? 촛불의 순간적인 느낌은 좀 더 추리를 많이 해야한다. 왜 모닥불이 아니라 촛불인가? 왜 달이 아니라 촛불인가? 왜 전구가 아니라 촛불인가? 왜 반딧불이가 아니라 촛불인가?

그리고 왜 문을 닫아달라고 했을까?


  셜록홈즈는 이 모든 의문을 조합하여 '촛불'이라는 단어로부터 얻을 수 있는 특징과 조합하여, "아하 화자의 마음은 촛불처럼 작은 바람에 흔들리고 꺼질정도로 위태롭고 초라하지만, 그대를 위해서라면 온몸을 태워서라도 방안을 밝게 비추는 존재가 되고싶다는 말이구나, 화자의 사랑은 위태롭고도 헌신적인 짝사랑의 느낌이 나는구나."라는 타당한 범인에 이르게 되는 결론을 내리지만

박두만은 "촛불? 그대? 아 사랑인가? 밤이니까? 그리움? 아 모르겠다 사랑이요"라는 추리하지 않은 그 날 것의 직감적 인상 그대로 결론으로 향하여, 심지어 범인을 맞추더라도, 다음번 추리에서는 틀릴 수도 있는 오직 감에만 의존하는 안좋은 수사방식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박두만처럼 직감을 많이 느끼도록 요구하고 그 시간을 기다려 주어야만 한다. 가끔은 박두만의  감이 아예 엇나갈 때도 있다. 예컨대 촛불을 보고 "음~ 뜨겁고 정열적인 사랑 같아요."라거나 아니면 "아 그냥 낭만적 분위기를 표현하려는 것 아닐까요?"라는 불만족스러운 답변을 했을 때, 웬만하면 틀렸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안그래도 재미없고 힘든 추리 싸움을 옆에서 자꾸 지적하면 더 하기싫어진다. 틀렸다는 말보다는 "오~ 맞아! 사랑 같이 긍정적인 감정으로 너한테도 느껴지지? 그럼 그렇다면 왜 활활 타오르고 훨씬 낭만적인 벽난로가 아니라 촛불이라고 했을까?"하며 정답에 도달할 수 있는 힌트를 옆에서 던져주는 것이 좋다.


나는 학생들에게 항상 말한다.

공부는 암기가 아니라 추리다

그리고 추리는 무당수사가 아닌 과학수사여야만 한다

그래야 억울한 피해자와 억울한 오답이 나오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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