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땅파기 역사는 아빠가 내 손에 꼭 맞는 작은 모종삽을 사주신 날부터 시작되었다.
삽이 푹푹 박히는 소리, 점점 달라지는 흙빛, 그리고 점점 커져만 가는 구덩이.
그 모든 것이 나를 아래로, 더 깊은 곳으로 끌어당겼다.
팔이 후들거려도 멈출 수 없었다.
가끔 흙더미 속에서 쫀득한 황토나 반짝이는 석영이라도 발견하면? 그날은 그냥 ‘보물찾기’ 성공이다. 온 힘을 다해 씨름하던 커다란 돌덩이가 삽 끝에 걸려 ‘툭!’ 하고 불거져 나올 때의 그 쾌감이란! 마치 거대한 악당을 물리친 용사가 된 기분이었다.
한 번은 진짜 ‘대물’을 발견했다. 딱 봐도 40kg은 나갈 법한 바위였는데, 동네 민준이 형이랑 동생 하준이까지 가세해 전력투구했다. 처음엔 금방 뽑힐 줄 알았더니 파면 팔수록 끝이 안 보였다. 결국, 집에서 밧줄까지 공수해 와 한바탕 ‘돌덩이와 줄다리기’를 벌인 끝에야 녀석을 정복할 수 있었다. 아빠 말로는 우리 집 터를 다질 때 돌이랑 흙을 겹쳐 쌓았다는데, 그 말은 즉 이놈보다 더 큰 ‘보스 몬스터’가 땅속에 잠들어 있다는 뜻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구덩이가 깊어질수록 내 주변에는 흙더미 성벽이 높게 쌓여갔다. 온몸은 찰흙 범벅이 되고 팔은 천근만근이었지만, 마음만은 풍선처럼 가벼웠다. 눈앞의 장애물들을 하나씩 해치우며 바닥을 향해 내려가다 보면, 주변의 모든 소리는 사라지고 오직 ‘더 깊이 파고 싶다!’는 열망만 남았다.
"엄마! 나와봐! 여기 대박이야!"
환호하며 부르는 나와 달리, 창문을 연 엄마는 내 몰골을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야, 그 찰흙 옷에 묻으면 빨래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해!"
하지만 아빠는 달랐다. 길쭉한 몸통을 가진 ‘어린이 전용 삽’을 내게 선물해주시며 내 기를 살려주셨다.
그날 이후, 나의 공사는 단순한 놀이가 아닌 ‘나만의 비밀 프로젝트’가 되었다.
돌덩이라는 적을 물리치고,
흙 속에 숨겨진 하얀 석영을 캐내며,
마침내 내 키만큼 깊어진 구멍 속에 몸을 쏙 숨겨 보는 것.
나만의 은밀하고 위대한 탐험은 그렇게 우리 집 마당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는 학교로 이어졌다.
미끄럼틀 아래 모래바닥은 나무껍질 삽과 손바닥이 분주히 오가는 거대한 비밀 공사판으로 변했다.
가끔 죽은 나무에서 팔 길이만 한 커다란 나무껍질을 “쭉—” 하고 뜯어내는 날은 그야말로 ‘장비 업그레이드’의 날이었다.
“야! 김민석! 너 여기 있던 내 ‘특급 나무껍질 삽’ 어디다 버렸어!”
“어? 그거 버리는 거 아니었어? 발에 치이길래 저기 던졌는데.”
“야! 내가 나뭇가지 찾으러 간 사이에 잠깐 둔 거란 말이야! 그게 얼마나 귀한 건데!”
멀리서 지켜보던 엄마가 한걸음 한걸음 우리 쪽으로 다가오셨다.
"너희들 왜 투닥거려? 이모가 중재해 줘?"
"이모, 얘가 이거 다시 찾아오래요! 전 진짜 버리는 건 줄 알았다니까요."
"저 버린 거 아니에요. 잠깐 둔 거예요!"
"오케이, 상황 접수. 친구끼리 싸우지 맙시다."
민석이가 억울해하자 엄마는 피식 웃으며 민석이 어깨를 툭 친다.
그러더니 주변을 살피는 척 목소리를 확 낮추고, 민석이 귀에만 작게 속삭인다.
"민석아, 이모가 도와줄게. 기운 내."
그러더니 엄마는 우리 둘을 한꺼번에 바라보며 눈을 찡긋하셨다.
“얘들아, 이모가 방금 봤는데 저기 강당 쪽에 엄청 굵은 죽은 나무가 하나 있더라.
거기 가면 제대로 된 삽 하나 구할 것 같던데?”
결국은 다시 힘을 모아 판다.
그래서 구덩이는 날마다 깊어진다.
어느 정도 깊어졌다 싶으면 우리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시율이를 부른다.
시율이는 우리의 ‘인간 키재기 자’다.
"야! 정시율! 일로 와봐! 빨리!"
"알았어, 간다고! 이번엔 얼마나 더 판 거야?"
"일단 들어가 봐. 어디까지 오는지 보게."
"오! 제법인데? 이제 내 머리끝까지 다 가려져!"
우리의 목표는 언제나 같다.
어제보다 딱 10센티만 더!
땅을 파는 손맛, 승리의 쾌감, 그리고 탐험가들만 아는 비밀스러운 즐거움.
나는 지금, 이 짜릿한 삽질의 세계에 완전히 중독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