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묘한 공식이 하나 있다. 이름하여 ‘결국은 사우나’ 공식이다.
주말이면 아빠 손을 잡고 수영장에 갔다가 수영을 마치고 자연스럽게 사우나로 향하는 것.
어느새 그것은 아빠와 나만의 작은 일과가 됐다.
우리 둘만 아는 주말 공식 같은 것 말이다.
여행이 비 때문에 망했을 때도, 종일 낚시하다 녹초가 됐을 때도, 바다에서 미친 듯이 수영하고 돌아온 날도 우리 가족의 마지막은 늘 비슷하다.
“아빠, 나 노곤노곤해. 따뜻한 물에 몸을 푹 담그고 흐물흐물 녹아버리고 싶어.”
그러면 아빠는 대답 대신 슬쩍 묻는다.
“사우나 갈까?”
자주 다니다 보니 이제 나만의 확실한 '사우나 순서'도 생겼다.
우선 가볍게 샤워를 마친 뒤, 보글보글 거품이 올라오는 버블 스파에 몸을 맡긴다. 바닥에서 수천 개의 공기 방울이 부글부글 솟아오른다. 그 물줄기가 온몸을 통통통 두드리는 시원함을 한껏 즐기고 나면, 나는 열탕 앞에 선다.
수면 위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나는 발끝으로 조심스레 온도를 살핀다. 발목, 무릎, 그리고 몸을 공처럼 둥글게 말아 ‘쑤욱’ 물속으로 들어간다.
“으으으…!”
처음엔 소름이 돋을 만큼 뜨거웠다. 목에 힘이 빡 들어가고 어깨가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꾹 참고 조금만 버티니 몸이 금세 따뜻해졌다. 옆을 보니 아빠가 보였다. 아빠는 벌써 ‘으-흐으으’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어깨를 씰룩거리고 있었다. 몸에 퍼지는 짜릿한 소름. 이게 바로 열탕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내 냉탕 입수 스타일은 단 하나, '머뭇거림 없는 풍덩'이다.
첨벙!
순간 온몸이 꽁꽁 얼어붙는 것 같지만, 그 차가운 느낌이 정말 좋다. 머리까지 냉탕에 쑥 넣었을 때 찾아오는 시원함을 느껴야 진짜 사우나를 한 것 같다.
사람이 없으면 냉탕은 나만의 작은 수영장이 된다. 잠수해서 끝에서 끝까지 한 번에 가기도 하고, 물속에서 몸을 공처럼 말아 뱅글뱅글 돌기도 한다. 오징어가 도망갈 때처럼 양팔은 허벅지에 붙이고 다리를 힘차게 차며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바닥에 붙어 미끄러지듯 다니기도 한다. 물속에선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놀이가 백만 가지는 넘는 것 같다.
한바탕 놀고 나서 찬물을 가득 담은 바가지를 들고 사우나실에 들어설 때였다. 한 할아버지가 나를 보더니 대뜸 호통을 치셨다.
“야! 바가지 들고 들어오지 마라!”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른들도 다 들고 가는데 왜 나만 혼내시지?’ 억울함에 아빠를 쳐다보자, 아빠는 조용히 바가지를 밖에 두고 오라며 눈짓하셨다.
나중에 아빠는 그 이유를 설명해 주셨다. 아이들이 물을 담아 다니다 보면 바닥에 물을 흘리기 쉬운데, 미끄러운 바닥에서 근력이 약한 할아버지들이 넘어지면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제야 아까 내 발걸음마다 찰랑거리며 쏟아졌던 물들이 떠올랐다. 누군가에게 위험이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조금 뜨끔했다.
우리의 사우나 사랑은 종종 여행지에서 만나는 온천으로까지 이어진다. 온천은 동네 목욕탕과는 또 다른 맛이 있다. 내가 온천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은 밖에 있는 노천탕이다. 일단은 숨쉬기가 편해서 오래 있을 수 있다. '머리는 시원하고 몸은 따뜻한' 그 느낌이 최고다. 눈을 감고 기분 좋게 앉아 있는데 옆자리 아저씨들이 하는 말이 들려왔다.
"여기 물이 그렇게 좋은가요?"
"그럼요. 씻고 나면 몸이 매끈매끈해서 때를 밀려고 해도 미끄러져서 안 밀린다니까요? 억지로 밀면 피부 다 망가져요." 그 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아저씨는 온천물에 그냥 물을 섞는 비율이 날마다 달라서 어떤 날은 더 미끄럽다는 설명까지 했다. 조금 황당해서 아빠를 보니, 아빠도 어이없다는 듯이 웃고 계셨다. 그래도 이상하게 동네 목욕탕보다 온천에 다녀오면 일주일 내내 피부가 보들보들하고 촉촉하다. 진짜 온천물이 좋긴 좋은가 보다.
하지만 온천에는 이런 낭만만 있는 건 아니다. 한 번은 정말 '대박 사건'이 터졌다. 그날 아빠와 나는 진한 갈색빛의 황토탕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아빠는 탕 가장자리에 편하게 손을 얹고 계셨는데, 마침 그 근처에 엄지손가락만 한 덩어리 하나가 찰딱 붙어 있었다. 아빠는 당연히 황토 진흙이 뭉쳐 있는 줄 알고 "여기 진흙이 있네?" 하며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뻗었다.
내 눈에는 그 정체가 너무나 또렷하게 보였다. "아빠! 만지지 마! 그거 아기 똥이야!"
내 비명이 터짐과 동시에 아빠의 손가락이 그것에 닿고 말았다. 아뿔싸, 이미 늦었다. 내가 똥이라고 소리쳐도 믿지 못하더니, 심지어 손가락으로 찍어서 냄새까지 맡았다. 나는 너무 웃겨서 웃음을 참느라 아예 물속으로 잠수해야만 했다. 나중에 아빠는 물색이 워낙 진하다 보니 정말 흑설탕 덩어리 같은 진흙인 줄로만 알았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온천에는 아기들이 참 많다. 사실 나도 바다에서 수영할 때 실례를 해본 적이 있기에, 기저귀를 차지 않은 저 꼬마들이 "엄마, 저 쉬 마려워요"라고 정중하게 보고하고 화장실에 갈 리 없다는 걸 잘 안다. '지금 내가 몸을 담근 이 물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자기도 모르게 실례를 하고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순간 찝찝한 기분이 들어 황급히 탕 밖으로 발을 뺐다. 하지만 곧 생각을 바꿨다.
'그래... 아기 쉬는 깨끗하겠지. 괜찮아.' 나는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다시 물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덩어리'는 정말 너무했다. 그날 이후, 나는 탕에 들어갈 때면 주변에 수상한 덩어리가 없는지부터 아주 신중하게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면 엄마는 항상 묻는다. "때 밀었어?" 하지만 아빠와 나는 절대로 때를 밀지 않는다. 그냥 샤워비누를 짜서 온몸을 문질문질 씻을 뿐이다. 아빠는 어릴 때 할아버지가 때를 너무 세게 밀어서 피부가 빨개지고 살이 너무 아팠던 기억 때문에, 나한테는 절대 때를 밀게 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매일 씻는데 굳이 아프게 밀 필요 있나? 손바닥으로 살살 닦아서 뽀득뽀득하기만 하면 되지." 아빠가 그렇게 말하면 엄마는 기가 막힌다는 듯 "온천 와서 몸 푹 불렸을 때 밀면 좋잖아!"라며 잔소리를 하시지만, 나는 아빠 방식이 좋다. "움직이지 마! 등 펴!" 소리를 들으면서 등을 찰싹찰싹 맞는 아이들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나는 나만의 '손끝 세안법'이 있다. 손끝에 살짝 힘을 주어 얼굴, 옆구리, 팔뚝, 발가락 사이사이를 하나하나 훑는 것이다. 그러다 때가 조금이라도 나오면 마치 보물을 찾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온몸을 뽀득하게 훑고 물을 끼얹어 마무리하면 기분 좋은 나른함과 함께 참을 수 없는 배고픔이 몰려온다.
나는 아빠를 지긋이 바라본다.
"아빠."
"왜?"
"오늘 점심 뭐 먹지?"
잠시 고민하던 아빠가 묻는다.
"너 먹고 싶은 거 있어?"
망설임 없이 대답이 튀어 나간다.
"짜장면!"
역시 사우나의 완성은 짜장면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공식은 이렇다.
결국은 사우나.
그리고 마지막은 짜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