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견과 함께 살기
백내장 수술을 마치고 시간이 지나자 종대는 잠시 안정을 찾는 듯 보였다. 하지만 나의 일상은 자꾸만 금이 갔다. 공직사회에서 번지는 인사 개입의 소문, 나를 겨냥한 기사 한 줄, 기자의 날 선 한 마디. “김 계장은, 그래도 되잖아요.” 내가 상위 보직으로 가는 것을 막았다는 그 말은 날카로운 가시처럼 내 안에 박혀 온몸을 조여왔다.
혼자 울며 잠을 이루지 못하던 어느 날 새벽, 종대가 침대에서 안절부절못했다. 내려가고 싶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안아서 바닥에 놓는 순간, 발작을 일으켰다. “종대야! 종대야!”, 새벽 2시에 막내와 함께 한 시간 반을 달려 전주에 있는 24시 동물병원을 향했다. 밤새 기다렸다가 들은 진단명은 고혈당으로 인한 케톤산증. 췌장염과 방광염 같은 당뇨 합병증도 동반되어 있었다. 염증과 혈당을 잡으려면 며칠간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며칠 전부터 종대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자꾸 구석으로만 숨어들었다. 그토록 좋아하던 산책도 거부했고, 사료도 거의 먹지 않았다. 불길한 신호를 알아챌 수 있었지만, 이미 상처에 잠식당한 내 마음이 눈을 가렸다. 병원에 혼자 두고 돌아오는 길, 입원 케이지 안에 멍하니 있던 종대가 떠올랐다. 예전 같으면 따라가겠다고 난리를 쳤을 텐데, 이번엔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아픈 걸 들키지 않으려는 듯한 그 모습은 오래전 내 기억을 불러왔다. 어린 시절, 손톱을 물어뜯다 곪아버린 손가락이 검붉게 부풀었을 때 나는 그것을 옷자락에 감춘 채 꾹 참았다. 욱신욱신 쑤셔대는데도, 아프다고 말하면 더 큰 꾸중이나 무심한 시선이 돌아올까 두려웠다. 그러다 삼촌이 우연히 내 손을 보고 말았다. 아무 말 없이, 소독을 해 주며 흐느껴 울던 삼촌. 종대의 침묵은 그때의 나를 닮아있었다. 아파도 티 내지 못하는 존재, 그래서 더 애틋했다.
입원한 지 며칠 지나도 종대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강제로 먹이면 바로 토했고,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수의사는 “좀만 더 지켜보자”는 말만 반복했다. 결국 나는 종대가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물었다. 수의사는 망설이다가 말했다. “집이면 일주일, 병원이면 한두 달 정도는….”
한두 달이라는 시간. 그동안 종대는 케이지 안에서 죽은 것과 다름없이 살아야 한다. 토사물과 약물 냄새로 가득 찬 좁은 공간, 가족과 단절된 채 낯선 소리와 공포 속에서 웅크려 있어야만 하는 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찔리는 주사 바늘과 검사들…. 그것이 과연 ‘사는 것’일까? 사람은 수술과 입원이 회복을 위한 과정임을 이해하지만, 강아지에게는 고통을 주는 연명일 뿐이다. “일주일만이라도…. 종대가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다 해 줄래요!”
그렇게 종대를 퇴원시켰다. 병원비는 5백만 원. 하루 50만 원이 넘는 청구서에 동의한 적 없는 검사 비용들이 주르르 기재되어 있었다. 자동으로 혈당을 기록하는 ‘리브레’를 부착했어도 그들은 혈당측정비를 하루에도 몇 차례씩 올려놓았다. 이들에게는 아이의 상태보다, 청구 항목이 더 중요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최신식 장비와 시스템 뒤에 숨은 본질이 이미 보였으니까. 영혼 없는 자본주의는 생명마저 거래하고 있었다. 함께 온 지인이 따져 물었다. “계속 있었으면 천만 원도 넘었을 텐데, 왜 중간 정산을 안 한 거예요?” 이들에게 통할 리 없는 빈말들. 조용히 지인을 말렸다. 그때 수의사가 무심히 내뱉었다. “전에 백내장 수술도 하셨다고 해서….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 말이 가슴을 쳤다.
수의사의 말은 나를 괴롭혔던 기자의 말과 묘하게 겹쳐졌다. 내가 감내해 온 것들이 누군가에겐 ‘그래도 되는 사람’이라는 낙인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병원도, 조직도 나를 같은 눈으로 보고 있었다. 표현을 못해서 혼자 끙끙 아픔을 삭이고 있을 뿐인데, 세상은 그런 나를 어떤 충격에도 끄떡없는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렇게 종대를 부둥켜안고 퇴원했다. 연이은 주사에 딱딱하게 굳어진 목덜미와 혈관부종이 생긴 다리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이. 숨 쉬는 것으로 살아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간혹 큰 숨만 낼뿐 한 번도 보채지 않는 종대. 차라리 낑낑대주면 마음이 덜 아플 것 같았다.
나는 다짐했다. 더는 혼자만 참게 두지 않겠다고. 곪은 손가락을 감추던 아이였던 내가, 이제는 종대의 아픔을 끝까지 안아주겠다고. 그렇게 사랑하는 가족들 곁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 집에서, 햇살과 바람이 스며드는 곳에서 종대가 함께 하도록 했다. 아직 살아 있으니까. 아직 함께이고 싶으니까.
그리고 우리는, 누구에게도 ‘그래도 되는 존재’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