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견과 함께 살기
흰둥이는 내 어린 시절 가장 가까운 존재였다. 상처투성이였던 나에게 유일하게 다가와 주던 아이. 그러나 끝내 지켜주지 못했고, 어느 순간 외면해 버렸다. 어른들에게 끌려가던 흰둥이의 뒷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날 이후 다짐했다. 다시는 어떤 존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겠다고.
그 상처는 지워지지 않았다. 버려졌고, 나 또한 버렸던 기억은 내 안에 깊은 흉터로 남았다. 누군가를 믿는 일이 두려워졌고 마음 한구석엔 언제나 흰둥이의 그림자가 눌어붙어 있었다.
하지만 종대를 만나면서 그 다짐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아이들의 성화로 종대를 키우게 되었지만, 또다시 상처받을까 두려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종대가 당뇨 판정을 받았다. 이어진 입원과 수술. 그리고 무심한 말들. “그냥 죽게 내버려 둬.”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던진 그 말은, 과거 유기되었던 나와 흰둥이를 향한 말처럼 들렸다.
“당뇨견은 보통 안락사를 많이 시켜요. 감당하기 어려워서.” 수의사도 그렇게 말했다. 종대의 통증을 줄여줄 방법이 없냐고 물어보니 수의사는 나중에 생각해 보자고 했다. 무슨 소리냐고 다시 묻자 수의사는 안락사 얘기를 꺼내는 줄 알았단다. “질병이 계속 이어지다 보면 다들 그렇게 결정하곤 해요.” 그 말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저 아프지 않게 해주고 싶었던 내 마음은, 또다시 '포기'라는 말로 오해받았다.
이제 누군가를 버리는 일은 없다. 거실을 오줌으로 흥건히 적신 종대를 보며 ‘차라리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스친 적도 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서글픔과 죄책감이 다시 들끓게 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내 어린 시절에 대한 보상이었고, 잊고 싶던 과거를 다시 마주하는 방식이었다. 상처투성이 아이에게 보였던 어른들의 냉담함을, 내가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의 비아냥을 감수했고 종대와 함께 아픔의 길을 걷고 있다.
가장 연약한 생명을 품는 일은 무엇보다 강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종대를 돌보는 일은 오래전 지켜주지 못했던 존재에게 건네는 늦은 손길이었다. 외면당했던 기억들, 외롭고 힘들었던 나날들, 그 모든 시간을 껴안으며 나는 종대와 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이 마음을 끝까지 지킨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 병원에 가야 할 때면 통장 잔고를 바라보며 한숨부터 내쉰다. 사료를 잘 먹지 않는다고 병원에 데려갔다가 수십만 원의 진료비를 마주한 날은, 종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말할 수 없는 존재를 끝까지 지킨다는 일은 언제나 불안을 동반한다. 그리고 그 불안은 누군가에게 유기라는 고통스러운 선택으로 이어진다. 버리고 싶어서 버리는 사람은 없을지 모른다. 다만,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올 뿐이다.
그래서 간절히 바란다. 아픈 동물과 그 곁을 지키는 사람들이 조금은 덜 아프고, 덜 외롭기를. 생명을 돌보는 일이 누군가의 고독한 짐으로만 남지 않기를. 언젠가 우리 사회의 한 자락에서, 그들을 감싸안는 제도가 햇살처럼 스며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