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바보 종대 15화

사랑은 기적을 물고 온다.

당뇨견과 함께 살기

by 규아

얼마 뒤면 생을 마감한다는 동물병원의 선고를 뒤로 하고, 종대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이별을 함께하고 싶어 하계휴가를 당겨 쓰고, 중간중간 외출과 조퇴를 반복하며 곁을 지켰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큰딸도 마지막 인사를 위해 집에 내려왔다.


퇴원 후 종대는 물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힘없이 축 늘어진 채 온종일 웅크려 있었다. 당뇨용 사료 외의 음식은 금지였지만, 얼마 남지 않은 생 앞에서 그런 규칙은 무의미 했다. 그저 좋아하는 것,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누리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토록 좋아하던 애견 간식도, 습식 캔도 거부했다.


혹시나 싶어 삶은 달걀을 건넸다. 종대가 다가왔다. 북어포, 당근, 블루베리... 조심스레 내미는 음식을 하나씩 받아먹었다. 조금씩이지만 거부감 없이 받아먹는 모습에 마음껏 주었다. 햇살 좋은 날이면 품에 안고 데리고 나가 몇 분이라도 바람을 쐬게 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가장 좋아했던 야외 애견 카페도 찾았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종대가 스스로 걸었다. 병원에서 며칠간 링거바늘을 꽂아놓아 가늘어진 발목으로 잘 걷지 못하던 아이였다. 그런데 한 발짝, 한 발짝 빠르게 걷더니 어느새 뛰기 시작했다. 놀라움에 멈춰 선 아이들과 나를 돌아보며 빨리 따라오라는 듯 재촉한다.


지칠까 봐 쉬게 해도 곧 다시 일어나 같이 뛰자고 졸랐다. 기쁘기도 했지만 불안했다. 죽기 전 잠깐 기력이 돈다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게 그 신호는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그건 기적이었다. 일주일을 못 넘긴다던 아이는 정확히 일주일 만에 살아났다. 식음을 전폐하던 종대가 밥 달라고 눈을 반짝이고, 구석에 웅크린 반 시체가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그날의 풍경은 지금도 선명하다. 봄날의 햇살이 잔디를 어루만지고, 부드러운 바람이 종대의 털을 간지럽히던 그 순간. 나는 멍하니 서 있었고, 종대는 나를 향해 뛰어오다 멈춰 서서 말없이 바라보았다. 살고 싶다는 눈빛이었다. 마치 "나 아직 함께 있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듯한. 그 아이의 눈짓에 가슴이 요동쳤다.


종대는 단순한 반려'동물'이 아니었다. 생의 의지를 가진 존재였다. 함께한 시간과 사랑이 물리적 한계를 이겨내게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하루 네 번 인슐린을 맞으면서도 측정 불가한 수치의 고혈당에 시달리는 아이가 어떻게 저런 생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


“열탕 속에 개구리 아시죠? 그런 증상일 수도 있어요.” 자주 다니는 동네 수의사의 말이었다. 몸이 최악의 상태에 적응해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는 얘기였다.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지인도 덧붙였다. 자기 강아지도 수의사가 예측한 날에 떠났다는 경험담을 전하며 괜한 희망을 품지 말라고 했다. 다들 내가 또다시 상처받을까 염려한 것이다.


그런데 종대와 이별을 준비하며 하루하루 살아간 시간이 벌써 석 달을 넘었다. 사료와 간식을 달라고 재촉하고, 산책길에서는 30분 넘게 지치지 않고 마음껏 뛴다. 아이는 그렇게 다시 돌아왔다. 함께 한 나날들이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불어넣었으리라. 종대는 한낱 동물이 아니었다. 감정에 따라 삶이 좌우되는, 우리의 가족이었다.


종대의 기적은 내게도 치유를 가져다주었다. 그 아이를 지켜보며 배웠다. 세상은 우리가 아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직장에서 한 발짝 밀려나 있는 ‘불운’ 때문이기도 했다. 기자가 쏜 화살, 인사에서 배제된 아픔, 그로 인한 공백이 오히려 종대를 품을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주었다.


시련의 시기가 종대를 살렸고, 어쩌면 나를 살렸는지도 모른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고 했던가. 끝났다고 여겼던 생명이 다시 살아나듯, 직장에서 다한 운명이 내 삶의 어딘가로 다시 흐르고 있다. 그렇게 종대로 인해 또, 한 세상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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