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바보 종대 16화

선의를 착취하는 사람들

당뇨견과 함께 살기

by 규아

어릴 적,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산 적이 있다. 삐약삐약, 작은 종이상자 안에 노란 털뭉치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한 마리에 500원. 군것질을 참고 작디작은 생명을 안았다. 생명체를 처음 품어보는 설렘에 매일 아침 일찍 눈을 떴다. 그러나 그 작은 존재는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따뜻했던 온기가 식어가던 순간을,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돌이켜보면, 그건 잔인한 일이었다. 죽음을 알지 못하는 아이에게, 어른들이 생명을 장난감처럼 사고팔며 푼돈을 챙기던 시절. 세상은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누군가는 '생명'을 거래로 돈벌이를 하고 있다. 반려동물과 보호자의 선의를 이용해 수익을 올리는 사람들은 지금도 존재한다.


좁고 더러운 번식장에서 출산 기계로 전락한 어미 개들. 갓 태어난 강아지들은 생후 몇 주도 안 된 채 유리 진열장에 갇혀 '상품'이 된다. 펫샵의 불빛 아래 물건처럼 사고파는 생명들. 간혹 ‘무료분양’이라는 말에 포장되는 거래에 결국 돈이 오간다. 그렇게 무책임하게 넘겨진 생명은 생을 다하지 못한 채 쉽게 버려진다.


동물병원의 실상도 다르지 않다. 작은 이상만 생겨도 고가의 검사를 권한다. 보호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죄책감과 두려움이 치료를 명령으로 바꾸는 순간, 청구서는 점점 길어진다. 의료 장비와 약값, 검사비는 병원마다 천차만별. 하지만, 생명을 놓고 셈하기를 꺼리는 보호자들은 섣불리 따지지 못한다.


종대가 당뇨를 앓으면서 착용한 혈당측정기인 ‘리브레’만 봐도 현실을 알 수 있다. 정가는 9만 원 남짓. 그러나 어떤 병원은 이를 부착해 주고 20만 원을 청구한다. 보호자가 직접 부착할 수 있음에도, 망설이는 마음을 이용해 부착비라는 명목으로 10만 원이 넘는 이득을 남긴다. 다른 병원에서는 5천 원, 또 다른 곳에서는 3만 원. 똑같은 기기를 부착하는데 몇 배씩 가격이 달라진다. 약값과 검사비도 마찬가지다. 기준이 없고, 담합은 관례처럼 굳어 있다. 그 차이는 결국 보호자의 선의를 얼마나 이용할 수 있느냐의 눈금처럼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 병원도 다 똑같다”라고 자조하는 이들도 있다. 나 역시 암 수술 이후 요양병원에 입원했을 때, 고가의 영양제와 주사를 반강제로 권유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사람 병원'은 최소한 제도적 감시망 안에 있다.


동물병원은 다르다. 반려동물은 여전히 '물건'으로 분류되어 죽으면 쓰레기봉투에 버려야 하는 현실. 이 괴리 안에서 동물에 대한 의료행위는 대부분 민간의 자율에 맡겨진 채 거의 방치되고 있다. 그래서 더 쉽게 담합하고, 더 노골적으로 과잉 진료하며, 더 거리낌 없이 보호자의 마음을 이용한다.


함께 살던 생명이 죽어가는데, 대부분의 보호자에게 거절이라는 선택지는 없다. 그 절박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 그 위에 가격표를 붙인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채혈과 주사, 끝없는 검사...그 모든 과정은 ‘정당한 진료’라는 명패로 가려진다. 그러나 말 못 하는 반려동물이 느끼는 고통은 청구서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물론, 모든 동물병원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우리 주변에 너무도 많다. 더 이상 동물병원과 수의사의 양심에만 기대게 해서는 안 된다. 선의를 돈으로 환산하는 구조를 방관하게 되면 생명은 숫자가 되어버린다. 그 앞에서 보호자의 사랑은 착취당하고, 아이의 고통은 거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선의를 지키는 사람들도 있다. 다음 편에서는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돈 대신 진심을 택하고, 수익보다 생명을 우선시하며, 보호자와 반려동물의 편에 서는 수의사들. 세상의 무게에 꺾이지 않고, 생명의 편에 서서 나를 위로해 주었던 사람들을 되새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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