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견과 함께 살기
| 선의는 쉽게 이용당하지만, 끝내 지켜내는 사람들이 있다.
종대가 우리 집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이유 없이 아팠던 적이 있다. 구토와 설사를 반복하던 그 작은 몸을 안고 동물병원으로 달려가자 곧바로 입원 조치가 내려졌다. 검사란 검사는 다 했고, 며칠을 입원했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그리고 끝내, 돌아온 말은 이랬다. “사체 처리 곤란하니, 집에 데려가세요.”
'사체'라니. 아직 숨이 남아 있던 아이였다. 너무도 냉혹한 말이 마음을 할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수의사를 경계하게 되었고, 동물병원은 장삿속만 챙기는 곳처럼 느껴졌다. 병원 앞만 지나가도 왠지 모를 울분이 솟아났다. 생명을 그렇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큰애가 새로 생긴 동네 병원에 종대를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딸을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 속의 수의사는, 지금껏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 달랐다. 그는 “태어났을 때부터 봤던 아이들의 병들고 늙고 죽어가는 걸 지켜봐야 하는 게 힘들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직업에 회의를 느낄 만큼, 동물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수의사가 있다니.
딸이 서울로 대학을 간 뒤, 내가 직접 그 병원을 찾았다. 갈 때마다 동물들을 대하는 그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지곤 했다. 한 번은 수의사가 대기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대형 개의 토사물을 손으로 뒤적거리는 것을 봤다. 보호자에게 “이걸 자세히 살펴야 왜 아픈지를 알 수 있다”라고 말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생명을 진지하게 마주하는 태도였다.
종대의 당뇨 증상이 심해졌을 때, 그는 망설임 없이 더 큰 병원을 권했다. 붙잡아 이익을 챙기려 하지 않았다. 큰 병원에서 돌아와서도 진료비 없이 상담을 해주었고, 인터넷에서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방법까지 알려주었다. 미안한 마음에 병원에서 사겠다고 하자, “그게 더 비싸요”라고 웃고는, 오히려 샘플로 써보라며 주사기 뭉치를 건넸다.
무지했던 탓에 중성화 수술을 하지 못한 걸 후회하자 이렇게 다독였다. “사람이 중성화 수술하면 오래 살아요?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세요. 사람 아픈 거 생각하면서 치료하면 접근하기 쉬워요." 죄책감에 짓눌린 보호자를 구해주는 따뜻한 말이었다.
그 병원은 늘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너무도 인간적인 진료에 수익은 크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우연히 듣게 된 간호사의 농담이 기억에 남았다. “선생님, 약값 좀 올려요.” 돈보다는 생명을 먼저 두고 진료해 온 시간이 엿보였다.
종대의 백내장 수술을 맡아준 안과 수의사도 그런 분이었다. 급속히 진행되는 아이의 눈병이 시간을 다투는 상황임을 알아차리고, 빠듯한 일정 속에서 야간 수술을 감행했다. 한쪽 눈은 포기할 수도 있다고 했지만, 여섯 시간을 버티며 양쪽 눈을 지켜주었다. “유학을 준비하다 반려견이 아팠는데,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수의사가 되었어요.” 그 말처럼, 그는 한 생명을 붙잡는 신념 하나로 병원을 세웠고, 수많은 보호자들의 마음까지 어루만지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첫 병원에서 들었던 말을 잊지 못한다. “사체처리 곤란하니, 데려가세요.” 그리고 지금, 다른 수의사의 말이 겹쳐진다. “너무 아프게 하지 마세요. 꼭 필요한 것만 해요.” 두 문장은 전혀 달랐다. 그 차이는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알게 된다. 돈보다 생명을 먼저 두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을. 그들이 있기에 보호자의 선의도, 아이들의 생명도, 아직은 지켜질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