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견과 함께 살기
일주일밖에 못 산다던 종대는 어느새 넉 달을 넘겼다. 여전히 먹을 것을 밝히고, ‘산책’이라는 말에 귀를 쫑긋 세우며 문 앞에 선다. 고집대로 길을 걷다 보면 산책이 한 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그런 종대를 대견하게 바라보다가도, 자꾸만 눈에 밟히는 것이 있다. 뱃가죽 아래 덜렁거리는 유선종양. 하루가 다르게 부풀어 오르던 그것은, 이제 내 주먹보다도 훨씬 커져 있었다.
“각오하고 수술하셔야 합니다.” 동네 수의사의 말에 한동안 결정을 미뤘지만,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결국 종대를 안고 병원을 다시 찾았다. 수술 날짜를 잡아달라는 말에 수의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는 이 수술 못 해요. 여기서 하면 테이블 데스 납니다.” 심각한 당뇨가 있는 종대에게 마취가 곧 죽음일 수 있다고 했다. 회복도 문제지만 아예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수술이라며 다시 대형동물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나는 대형병원에서 겪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불필요한 검사들, 과잉 청구된 비용들, 보호자의 불안 심리를 이용하는 것 같은 시스템. 그러자 수의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 병원, 실력은 있어요. 장비도 좋고요. 어떻게든 살려내는 곳이에요.” 잠시 멈췄다가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고가 장비를 유지하려면 운영비가 필요하고, 의료사고가 나면 병원이 손해를 떠안아야 한다고. 그래서 방어적으로 모든 절차를 거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내가 비판했던 '과잉'이 그들 나름의 ‘보험’ 일지도 모른다는 얘기였다.
다만, 수술하려면 기대를 낮추라고 했다. “이 정도 중증 당뇨면 오래 살긴 어려워요. 그건 아시죠.” 혹시 병원에서 악성종양 검사나 전이부위 절제, 자궁적출 같은 추가적 조치를 권하더라도, 마음을 단단히 먹고 지금 당장 불편한 혹만 제거하라고 조언했다. 생명을 오래 붙잡기보다는, 고통을 덜어 주는 쪽으로 생각하라고.
결국 나는 다시 대형병원으로 향했다. 지난번 울며불며 쏟아냈던 하소연 때문이었을까. 수의사는 무척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검사 과정에서도 위험이 따르고, 설령 수술이 무사히 끝나더라도 당뇨로 인해 절제 부위가 괴사할 가능성이 커서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종대의 혹이 너무 커서 수술을 하지 않고 버티기에도 한계가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검사를 최소화할 수 있을까요?” 내가 조심스레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망설였다. 예전에 검사를 생략했다가 전이된 암으로 죽음을 맞은 사례를 들려주며, 그 이후로는 단 하나의 절차도 빼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에는 불신과 두려움이 얽혀 있었다. 동네 수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그들도 생명보다 시스템을 먼저 챙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긴 해요.”
그날 나는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약만 받아 들고 나왔다. 나도, 수의사도 어쩌면 기적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약물치료만으로 혹이 줄어들기를... 한편으로는 다시는 가고 싶지 않던 병원에 또다시 기대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세상엔 정말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차 안에서 종대를 안았다. 내 손보다 더 큰 혹이 먼저 닿았다. 팽팽히 부풀어 검붉게 굳은 종양. 핏줄이 도드라진 채 돌덩이처럼 단단히 자라 있었다. 그런데도 차에서 내리자마자 종대는 신나게 뛰어나갔다. 그러다 휘청. 혹의 무게에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수술을 해도, 안 해도 두렵다. 나는 이 갈림길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어떻게 저렇게 활발할 수가 있죠? 보호자 때문일 겁니다.” 동네 수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중증 당뇨와 커다란 종양을 안고도 여전히 잘 먹고, 잘 뛰고, 그렇게 꿋꿋이 살아있는 종대를 보며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잠시 종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몸이 무너지면서도 한없이 해맑고,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활발히 달리는 그 모습 뒤에는 어떤 힘이 있는 걸까?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생명력.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른다. 종대는 지금도 불가사의한 힘으로 살아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이 정답 없는 선택의 끝에서 또 하나의 희망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