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견과 함께 살기
몇 달 전, 종대가 ‘일주일밖에 못 산다’는 선고를 받았을 때, 딱 일주일 분의 약과 인슐린만 받아왔다. 그날 밤, 종대를 안고 돌아오며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수십 번 되뇌었다. 그러나 종대는 일주일을 버텼다. 다시 약을 지었다. 일주일, 또 일주일, 그리고 이주일이 지나갔다. 그 이후로는 늘 이주일 치만 준비한다. 한 달 분도 받을 수 있지만, 그만큼의 시간을 감히 기대하지 못한다. 병원 문을 나설 때마다 묻는다. 두 주 뒤에도 약을 지을 수 있을까?
종대는 여전히 밥을 밝히고 산책이라는 말에 귀를 쫑긋 세운다. 생의 의지처럼 반짝이는 반응들 속에서도, 유선종양의 무게에 휘청거릴 때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신나게 뛰다가 뒷발에 혹이 걸려 멈칫거릴 때면 기적과 두려움을 동시에 마주한다.
지난해 당뇨 판정을 받은 이후, 백내장, 케톤산증, 방광염과 췌장염, 그리고 악성으로 의심되는 유선종양까지. 의학적으로는 점점 무너지고 있지만, 오히려 종대의 눈빛은 더 또렷해지고 몸은 더 활기를 띤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한 번씩 의문이 든다. 죽음과 삶의 경계는 도대체 어디쯤일까.
조금씩 깨닫고 있다. 아픈 종대를 돌보는 일은 병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죽음과 동행하는 일이라는 걸. 매일 아침저녁 인슐린 주사를 놓고, 쿠싱 호르몬제과 항생제를 챙긴다. 혈당이 갑자기 높아지면 긴급 인슐린을, 저혈당이 오면 사료 몇 알이나 간식으로 급히 수치를 끌어올린다. 고혈당도 무섭지만, 저혈당은 더 위험하다. 쇼크로 순식간에 죽음에 닿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숫자 하나에 생명이 출렁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슬아슬한 생사의 경계 위를 걷는다.
사람들은 가끔 말한다. “이제 그만해도 돼.” 하지만 여전히 꼬리를 흔들고, 밥과 간식을 달라며 고갯짓을 하는 종대는 살고 싶은 듯하다. “종대는 어떻게 죽을까요?” 죽음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아 수의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한 수의사는 조용히 잠들 듯이 갈 거라 했고, 다른 이는 발작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이후, 산책을 더 자주 나간다. 어리석게 들릴지 몰라도, 혹시라도 지쳐 쓰러져 잠들듯이 마지막을 맞이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또 여기저기 풀냄새를 맡느라 정신없는 종대를 보다가, 묘약 같은 풀을 씹고는 모든 병이 낫는 상상을 하곤 한다.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기적처럼 완치되기를 꿈꾸면서도, 고통 없이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기를 바라는 소망이 교차한다. 그렇게 종대와 나는 삶과 죽음을 함께 걷는다.
끝을 예감하면서도 오늘을 살아내는 것. 그게, 지금 종대의 삶이고, 나의 삶이다. 어쩌면 이런 것이 인생 아닐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의 또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 종대의 당뇨와 함께한 시간으로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가 끝이라고 여기는 그 순간은, 어쩌면 또 다른 시작이 길을 열고 마중 나오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 길 위에서 오늘도 나는 종대와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