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견과 함께 살기
“그 돈이면 명품백 몇 개는 사겠다.” 종대의 치료비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듣는 말이다. 웃어넘기지만, 혼잣말을 하게 된다. 생명보다 더 가치 있는 게 있을까.
한때는 나도 그랬다. ‘명품백 같은 자리'가 삶의 목표이자 보상이라고 믿었다. 종대가 아프기 전까지 내 인생의 중심은 직장이었고, 집은 그저 머무는 곳에 불과했다. 종대도 그저 밥만 잘 챙겨주면 되는 존재쯤으로 여겼다.
어린 시절의 불행, 결혼 생활의 실패, 직장에서의 텃세와 무시. ‘가정에는 복이 없다’며 체념했고, 대신 조직에 더 깊이 매달렸다. 가족관계증명서까지 털리며 내 비극이 동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굴욕을 겪은 뒤로는 힘있는 자리만 보였다.
그러다 의회라는 조직에 들어갔고, 평소처럼 맡은 일을 챙긴 것이 도리어 화근이 되었다. 하루아침에 문제 직원이 되었고, 고함과 질책, 꼬리물린 소문과 낙인이 나를 무너뜨렸다. 결국 쫓겨나듯 떠나야했고, '버텨내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삶이 텅 빈 듯 느껴졌다.
그로부터 석 달 뒤 종대가 쓰러졌다. 당뇨, 백내장, 케톤산증, 유선종양까지. 하루하루가 생사의 경계였지만 종대는 살고자 했다. 반짝이는 눈빛, 흔들대는 꼬리, 힘찬 달음박질…. 그 모든 모습이 나를 향해 말하는 듯했다. “아직 살아야 해요.”
종대를 돌보는 시간은, 결국 나를 살린 시간이기도 했다. 술자리는 자연스레 멀어졌고, 아파트 헬스장에서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차갑게만 느껴지던 인간관계 속에 온기가 스며들었다. 동네 수의사, 산책길의 이웃, 함께 울고 웃으며 반려견을 걱정하는 보호자들. 연대와 애정, 진심이란 감정을 종대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 아이를 지키며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쓰게 되었다. 무엇이 진정한 인생인지, 무엇이 소중한 존재인지,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지 묻게 되었다. 종대는 단지 위로가 아니었다. 배제된 나를 다시 세상과 연결해 준 존재였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조용히 나를 일으켜준 아이. 그래서 오늘도 종대의 주사와 약을 챙기고, 산책을 나가고, 이 시간을 기록하며 글을 쓴다.
명품백보다 종대. 그 말에는 망설임이 없다. 사람마다 명품백 같은 가치의 상징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가방이고, 누군가에겐 돈, 권력, 명예일 수도 있다. 지금의 나에겐 종대다. 사랑을 위해 시간을 쓰고, 마음을 쓰고, 돈을 쓰는 일. 그것이 이제 내 삶의 중심이 되었다. 소비의 우선순위가 바뀐 게 아니라 인생의 기준이 바뀐 것이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의 뒷모습만 쫓던 삶에서, 내 곁의 존재를 바라보는 삶으로 옮겨왔다. 그리고 그 모든 변화의 시작에는, 종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