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바보 종대 22화

숨을 쉬게 된 시간

당뇨견과 함께 살기

by 규아

종대의 숨결이 내 가슴에 깊이 스며들던 그 날, 오래 미뤄온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왜 그토록 직장에 매달렸을까. 자리 하나를 잃었을 뿐인데 인생 전체가 무너진 듯 흔들렸던 내가 어리석게 느껴졌다.


고향으로 돌아와 정착한 지 10여 년, 종대와 함께한 날들과 거의 겹친다. 엄마와 외가 친척이 곁에 있다는 안도감은 잠시였고, 곧 은근한 텃세와 무시가 나를 옥죄었다. 무엇보다도 인생의 풍랑 끝에 하류로 밀려난 듯한 상실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텃세를 이기고 싶었고, 불행을 외면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애처로운 눈동자를 마주하기 두려웠다. 잊기 위해 일에 몰두했고, 결핍을 채우려 남들의 인정에 매달렸다. 그 과정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놓쳤다. 그 무렵 종대는 인형처럼 구석에 놓여 있었다. 산책줄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현관에 걸려 있었고, 나는 그 눈빛을 피했다.


인정을 향한 갈망이 커질수록, 나는 날이 선 괴물로 변해갔다. 남의 흠을 짚고, 실수를 곱씹으며,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동료들이 내게 했던 방식을 그대로 따라 했다. 그러다 직장에서 밀려났고, 그 직후 종대가 아팠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일이 나에게 숨 쉴 틈을 주었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말에게 재갈을 물리듯 일한다.” 그 말처럼 나는 직장이라는 좁은 트랙 위에서만 달려왔다. 억지로 움켜쥐던 것들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려놓자, 비로소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종대와 함께 하면서 되찾은 그 일상의 순간들이 내게 말을 걸었다. 잃어버린 것들을 제대로 보라고.


식탁 위에서 주사약을 정리하는 소리, 처방 봉투의 바스락 거림, 약간 떫은 냄새까지. 그 모든 것이 하루의 리듬이 되었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던 일들이 사실은 생명을 붙드는 일이었다. 종대의 신호 하나를 놓치면 회복은 더뎌졌고, 때로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 인생도 마찬가지였다.


삶과 인연이 보내는 신호를 놓치면, 정말 중요한 것을 잃는다. 종대의 당뇨와 나의 추락도 하나의 메시지였다. 외면했던 흰둥이, 아파했던 아이들, 상처투성이인 나 자신을 이제라도 안아주라는 신호, 지금 남은 것들을 더는 놓치지 말라는 울림이었다. 종대와 함께한 시간, 산책길의 바람, 식탁 위의 웃음…. 이 작은 것들이야말로 나를 살게 하는 심장 같은 순간이었다.


그 순간들이 내게 말한다. 이제는 행동해야 한다고. 빠르지만 날 선 바람이 아니라, 더디더라도 따스한 바람이 되라고 얘기해 준다. 종대가 내 상처를 핥아주었듯, 언젠간 나도 누군가의 고단한 하루 위에 잔잔히 내려앉는 바람 같은 숨결이 되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쓴다. 내 아픔이 누군가의 하루를 식혀주는 바람이 되기를. 스쳐 지나가더라도, 그 바람이 잠시라도 숨 고를 틈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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