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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여행자 Jun 20. 2018

수류탄, 얼굴 없는

<週刊 태이리> 여름 특집(통권 9호)

여름 납량특집입니다. 제가 육군훈련소(일명 논산훈련소) 교관으로 근무하며 정말 겪은 입니다. 그즈음 이곳을 거쳐 가신 분들이라면, 아마 또렷이 기억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당시 워낙 유명하고 끔찍한 일이었거든요.

  

#1. 무릎 아래만 남기고

훈련소는 5주 단위 군사교육이 빡빡하게 돌아갑니다. 크고 작은 사고가 매일 터져서, 소대장들은 늘 신경이 곤두서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골치가 아픈 날은 수류탄을 던지는 날입니다. 이게 얼핏 보면 돌멩이 하나 던지는 것처럼 쉽지만, 까딱 잘못하면 사망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훈련병들은 1주 전부터 무게와 질감이 비슷한 연습용 수류탄을 수십 번 던지며 감을 익히고, 소대장들은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위험예지훈련을 합니다.

▲ 육군훈련소의 정문인 연무대의 모습이다.

수류탄 투척훈련은 “수류탄 들어, 안전클립 제거, 안전핀 뽑아, 던져!”까지 네 단계의 구령으로 진행됩니다. 소대장은 훈련병과 거울을 보듯 마주서서 땅굴처럼 파 놓은 참호 안에 들어갑니다. 중대장이 지시를 하면, 소대장은 큰 소리로 따라 부르는 ‘복명복창’이란 걸 하고, 수류탄 던지는 시범딱 반 템포 먼저 보여줍니다. 훈련병이 그걸 보면서 한 동작씩 따라하라는 건데 ‘혹시 내 쪽으로 던지진 않겠지? 평소에 조금 더 잘해줄 걸.’ 이런 불안감이 막 듭니다. 육군훈련소 소대장은 그렇게 5주마다 총 160번, 1년에는 1천 400번 훈련병과 함께 수류탄을 아무 생각 없이, 어쩌면 습관적으로 던집니다.          

▲ ‘널 믿는다. 제발 부탁해.’ 이런 마음뿐이다.

수류탄 훈련이 매번 별 일 없이 반복되다 보니, 소대장들은 끔찍한 일이 자기에겐 절대 안 일어날 거라 서서히 믿게 됩니다. 하지만 세상 일이 꼭 그런가요. 더군다나 작정하고 덤비면 좀처럼 막을 수가 없습니다. 2004년 어느 여름, 훈련병이 수류탄을 가슴에 품고 자살하는 사고가 벌어졌습니다. 저는 다음 순번을 기다리다가 ‘꽝’하는 기괴한 진동을 들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게 뭔지 몰랐습니다. 싸이렌과 헬기 소리가 들릴 때 ‘뭔가 큰일이 났구나!’ 알았습니다. 무릎 아래만 겨우 남았다고 했습니다. 사고지점 조사하는 과정에서 현장을 일주일간 보존해야했는데, 시체를 체우지 못해 대충 가리고 밤새워 경계근무까지 섰다는 소문도 들렸습니다.  


#2. 제발 날, 그대로 지나쳐줘

기억을 더듬어 찾아보니 2004년 3월의 실제 기사가 여럿 보입니다. 【육군훈련소서 훈련병 수류탄 터뜨려 자살】 “15일 낮 12시께 충남 논산시 연무읍 육군훈련소 수류탄교장에서 훈련병이 수류탄으로 자폭했다. 육군훈련소는, 김 훈련병이 수류탄 던지기 훈련을 하는 과정에서, 투척호 밖으로 갑자기 뛰어나와 방탄조끼 속으로 수류탄을 넣고 터뜨렸다고 밝혔다. 사고 당시 40여m 떨어진 곳에서 다음 훈련을 준비하는 대기조가 있었는데 추가 인명피해는 없었다.” 제가 바로 그 대기조 다음 차례였습니다.    

▲ 네이버 검색하니, 아직 몇 개 나온다.

이 사고를 입에 담는 건 금기시 됐습니다. 하지만 종교행사 때 훈련병 사이에서 은밀히 퍼지는 것까지는 막기 어려웠. 수류탄 교장에 그때 죽은 훈련병 귀신이 나타났다는 흉흉한 소문은, 1년 넘게 떠돌았습니다. 5주 후 퇴소하는 훈련병과 달리, 소대장들은 수류탄을 던지러 갈 때마다, 그 일을 다시 떠올려야 했습니다. 어디서 사고가 난 건지는 척 보면 한눈에 알 정도였습니다. 유독 그곳만 페인트가 새로 칠해져 있었거든요. 아무 것도 모르는 소위나 하사가 새로 오면, 신고식처럼 거기 밀어 넣곤 했습니다. 저도 무서웠으니까요.       

▲ 수류탄 교장은 위험해서 4km 이상 멀리 있다.

어느 날 “귀신을 본다”는 훈련병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어쩐지 음산해 보였습니다. 훈련병도 ‘불침번’이라는 야간 경계근무를 서는데, 처음엔 조교가 심심해서 그냥 물었다고 합니다. “지금 여기도 귀신이 있어?” “네, 그런데 다들 자기들끼리 모여 있고 사람을 지나쳐 갑니다.”  “뭐야, 하나도 안 무섭다.” “그런데 사람에게 붙은 건 조심해야 합니다.” “혹시 지금도 귀신이 보여?” “네, 저기 김 병장님 관물대 위에 하나. 그리고 조교님 뒤를 아까부터 졸졸 따라다니는 거 하나!” 조교는 소름이 끼쳐 더 묻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정말이었을까, 그 김 병장은 제대를 하루 앞두고 팔이 부러졌고, 조교는 휴가를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3. 그렇게 노려보지 마, 없는 얼굴로

훈련병은 자기에게 쏟아진 시선을 의식한 듯, 의외로 얌전하게 모든 훈련을 잘 받았습니다. 이 시간이 무사하게 지나가길 모두가 바랐습니다. 그런데 수류탄 투척 훈련장에서, 갑자기 숨이 끊어질 듯한 표정을 짓더니 면담을 계속 요청했습니다. “저는 수류탄을 던지면 정말 안 됩니다.” “이유는?” “저, 저기에, 그, 그게, 있어요.” 벌써 1년도 넘은 일을, 이제 막 3주차 생활을 한 훈련병이 어떻게 정확히 알았던 걸까요. “그런 건 이유가 안 돼!” 젠장, 중대장은 원칙주의자였습니다. 소대장들이 여러 번 설득해, 맨 마지막에 던지는 걸로 순서만 겨우 바꿨습니다. 좀 더 관심 갖고 살펴보면 문제 없을 거란 뜻이죠.     

▲ 수류탄을 던지면 물기둥이 용처럼 솟구친다.

 “안전핀 뽑아!” “던져!” 중대장이 투척구령을 했는데 이상하게 아무 소리가 안 납니다. 5초가 지나면 물기둥이 솟아야 하는데 뭔가 무섭고 이상합니다. “던져! 이 미친 새끼야, 어서 던지라고! 야 소대장! 저거 뭐야?” 훈련병이 멍한 표정으로 수류탄을 들고 벌벌 떨고 있습니다. 보다 못한 소대장이 씩씩대며 대신 던졌습니다. 입이 거친 중대장의 그 다음 반응은 뻔했죠. “죽고 싶어? 죽으려면 너 혼자 죽어.” 흰자를 희번덕거리던 훈련병이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아뇨, 전 안 죽어요. 히히, 나말고 중대장님이 죽어요! 귀신이 중대장님을 노려봤거든요.” 저게 돌았나. 거기엔 침 삼키는 소리만 시계바늘처럼 들렸습니다. “뭐? 날 노려봤다고? 그딴 소리를 왜 하는 건데?” “그게 화가 나 있었습니다.” “화가 나? 나한테 왜?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귀신인데 나한테 화를 내?” “상체가 없어서 얼굴은 못 봤습니다.” “얼굴도 없는데, 날 어떻게 본다는 거야? 이 새끼, 지금 날 겁주려는 거야? 군대가 우스워? 여기가 어딘지 제대로 한 번 알려줘?”

▲ 흰자를 희번덕거리며 웃던 훈련병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광기 서린 그들의 대화에 움찔했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중대장 말이 맞아요. 그래, 제까짓게 어디서 소문 들었겠지. “히히, 얼굴은 없어요. 하, 하,만, 난 알아요. 분명 중대장을 노려봤어요!” “얼굴도 없는데, 그게 날 노려보는지 아닌지, 네가 어떻게 알아?” “그, 그 귀신의 발, 그 발을 보고 알았어요.” “발을 보고 알았다고?” “네, 그 너덜너덜한 발이, 중대장님을 향해 있었거든요. 이렇게!”라고 하면서 발로 V자를 쓰윽 그렸습니다. 마치 거기에 귀신이 서 있는 것처럼 다들 땅만 쳐다봤어요. “귀신이 나한테 뭐랬는지 알려드릴까요. 중대장한테 이거 던져. 아니, 저기 훈련병 새끼들에게 던져! 다 같이 죽자. 넌 내가 살려줄게.” “그만, 거기서 그만, 소대장 여기 정리해!” 그만두길 뭘 그만해. 죽는 건 내가 아니라 너, 너, 너, 그리고 너! 중대장이라고. 나 아니면 씨발, 니들, 여기서 싹 다 죽은 목숨이야!”

▲ 이렇게 V자로 걸어오고 있었다는 걸까.

이게 뭐냐면, 보통의 훈련병들은 절대 이럴 수가 없습니다. 소대장 눈만 마주쳐도 관등성명을 대고 어쩔 줄 모르는 게 훈련병입니다. 전, 훈련병이 중대장한테 손가락질 하면서 욕하는 건 처음 봤습니다. 약간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달까. 자다가 가위 눌려본 적도 없는데, 그때 털이 솟는 기분을 처음 느꼈습니다. 모두가 내무반으로 오는 길에 얼빠진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말이 사실이든 훈련병이 지어낸 것이든, 제가 무사하게 살아남아 이걸 적을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귀신은 얼굴도 없으면서, 중대장을 왜, 그리고 어떤 표정으로 노려봤던 걸까요. 뒷 이야기가 더 있지만, 짧게 줄입니다. 승리의 V.

▲ 그 훈련병이 본 건 이런 느낌의 V였을 것 같다.

▮ 덧붙이는 말 ▮    

1. 정말로 제가 겪은 일이에요, 컬투 쇼에 납량특집 응모하려고 합니다. 사실 예전에 해 봤는데 대충해서 그런지 안 되었어요. 댓글, 좋아요, 공유는 큰 힘이 됩니다.  

  

2. 벌써 6월도 3주차가 지났습니다. 곧 무더위가 시작될 텐데, 여름휴가 계획은 잘 세우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전라도 투어를 해볼 생각입니다.    


3. 매번 이미지를 찾거나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네요.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다들 좋은 취미 하나씩 더 가져보시는 건 어떠세요?    


4. 독자 중 한 분이 자기 이름을 내걸고 브런치 매거진을 창간하겠다고 하셨어요. 정말 반갑고 기분 좋은 일입니다. 제가 그분께 좋은 기운을 드린 것 같습니다. 응원해요!    


5. <직장인의 내책쓰기>라는 제목으로 사내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저에겐 큰 도전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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