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여행자 Jun 27. 2018

책쓰기를 가르친다는 것

<週刊 태이리> 제10호

몇 권의 책을 냈다는 이유로 아는 체를 좀 했습니다. ‘알쓸홍잡’(알아두면 쓸모 있는 홍보실 잡학사전)이라는 세미나를 했는데 거기 사내강사로 나선 겁니다. ‘대충 하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꽤 잘하고 싶어졌습니다. 다행히 반응이 좋았습니다. 회사 도서관에서 분기별로 문화강좌를 하는데 이왕이면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고 싶더라고요. 커리큘럼을 냈고 지난 6월 20일부터 ‘직장인의 내책쓰기’라는 내용으로 짧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게 뭐 돈을 번다거나 승진에 도움이 되는 건 전혀 아니지만, 그래서 더 잘 해보고 싶습니다.

    

#1. 나의 아름다운 수강생

수요일 11시 20분, 노트북을 챙겨 바쁘게 내려갑니다. 김밥을 우걱우걱 씹으며 어젯밤 준비한 강의안을 옮겨 담습니다. 25명이 정원인데, 56명이 신청을 해서 분반을 해야 하나 어쩌나 고민할 정도였습니다. 2대 1의 경쟁을 뚫고 당당하게 선발된 수강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봅니다. ‘도대체 뭘 믿고 오신 걸까’ 그만큼 책쓰기가 직장인들 사이에 화두가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회사 내에 ‘스피치라이터’가 있는 게 신기해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원래 제가 하는 일은, 그림자처럼 있는 듯 없어야 하는 것인데 너무 나서는 거 아닌가 조금 걱정이 됩니다.  

▲ 직장인이 점심에 시간 내는 건 쉽지 않다.

강의는 총 4회로 이뤄져 있습니다. 1시간 반씩 진행하는 거니, 6시간입니다. 첫날부터 어설픕니다. 빔 프로젝터가 말썽이고, 노트북이 멈춥니다. 급하게 멀티미디어 대여실로 뛰어가서 뺏어오듯 하나 빌려왔습니다. 말은 안 하지만 ‘뭘 이렇게 늦었냐’는 표정으로 날 노려보고 계십니다. 100미터 달리기를 한 소년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뜁니다. 그런데 그게 싫지 않습니다. 저도 그냥 온 건 아닙니다. 준비한 이야기가 있거든요. 몇 번 특강을 해보긴 했지만, 이렇게 수강신청을 받아본 적은 처음입니다. 실망시키면 안 될 텐데요.    

     

   

▲ 강의안을 짜 놓고 나니 자신감이 붙었다.

어떤 것들을 기대하고 오셨는지, 몽키서베이로 사전조사를 해봤습니다. 어떤 장르의 책을 쓰고 싶은지, 블로그나 브런치를 하는지, 준비하고 있는 내용이 있는지. 이걸로 대충 10분은 날로 먹을 생각입니다. 파워포인트 화면을 띄웁니다. “우리도 ‘오리지낼리티’를 가져보자”라는 부제가 눈에 띕니다. 맞아요, 지난 8호에서 말씀드린 그 ‘오리지낼리티’입니다. 하루키가 말한 거요. 발음도 이상하고 웃긴 요 단어에 팍 꽂혔습니다. 하루키처럼 되긴 어렵겠지만, 투명 인간으로 살다가 회사에서 죽고 싶진 않습니다.  

   

#2. 여섯 가지 질문

설문조사 리뷰를 하고 나니 15분이 지났습니다. 5분 더 거저먹은 셈이죠. 판에 박힌 이론을 내가 막 발견한 것처럼 말하는 건 민망한 일입니다. 인터넷만 뒤져도 나오는 출판 프로세스를 소개하는 것도 그렇죠. 그 대신 자신들이 적어낸 이야기를 풀어서 해주니 더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꽉 막힌 표정이 이제야 스르륵 풀립니다. 책 쓰기에 필요한 정보를 많이 얻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건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면 될 것 같습니다. 글 잘 쓰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는 분에게는, 그걸 알게 되면 저에게도 꼭 가르쳐달라고 부탁 드려 놨습니다.

▲ 조사결과를 좀 재밌게 소개해봤다.  

매 장마다 소제목을 영어로 썼는데 책쓰기를 ‘Writing a Book’이라고 써야 할지 ‘Book-writing’이라고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습니다. 결국 네이버 번역기에 나오는 무난한 표현인 ‘Writing a Book’으로 씁니다. 내책쓰기는 직장인들의 로망이 됐는데, 몇 가지 질문에 발목이 걸립니다. 5W1H, 즉 육하원칙입니다. ‘Who, 책은 누가 쓸 수 있어?’ ‘When, 바쁜데 언제 책을 써?’ ‘Where, 책쓰는 장소가 혹시 따로 있어?’ ‘What, 도대체 뭘 써야 돼?’ ‘How, 일기도 써본 적 없는데 책을 어떻게 써?’ 물음표가 쏟아집니다.    

▲ Why를 풀면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된다.

이때 가장 중요한 질문은 ‘Why'입니다. “왜, 너는 책을 쓰고 싶어?” “너는 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왜 지금 그걸 쓰려는 건데?” 이 세 가지 질문입니다. 그냥 쓰고 싶다는 사람, 쓰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사람도 분명 있습니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쓰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라고 반문합니다. 다산 정약용은 ”사람이 글을 쓰는 건 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라고 일갈하죠. 하지만 그건 직장인의 범위를 조금 벗어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제2의 인생을 탐구하기 위해, 혹은 일하면서 배운 걸 정리한다는 현실적인 생각으로 시작해보라고 말씀드리곤 합니다.


#3. 나중은 창대하리라

강의가 진행되면서 점차 모든 눈과 귀가 저에게 모이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기운 센 천하장사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무대에 오른 아이돌 그룹이 이런 기분일까요. “그러면 저도 책을 쓸 수 있다는 말인가요?” 웅크리고 있던 한 수강생이 말을 꺼냅니다. “그럼요, 누구나(Everyone) 쓸 수 있어요. 아무나(Anyone) 쓰진 못하지만요.” 이게 뭔 소리인가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단번에 그 차이를 짚어내는 분도 있으십니다. 모두에겐 가능성이 담겨 있지만, 그걸 꺼내는 사람은 결국 손에 펜을 든 사람이라고 설명해드립니다.    

▲ 미생 캐릭터를 활용해봤다.

우리 주변에는 의외로 ‘책쓰는 직장인’들이 많이 숨어 있습니다. 기사만 몇 개 검색해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한국경제신문이 ‘우리회사 별별스타’라는 내용으로 연재기사를 쓴 적도 있습니다. 응급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쓴 최석재 뉴고려병원 응급의학과장, 휴가 때마다 아내와 자전거 여행을 떠난 효성그룹 최상원 과장, 알제리 건설실무 이야기를 쓴 대림산업 해외영업팀 차장, 그밖에도 광고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대흥기획 노다혜 대리까지. 이들이 그 분야의 전문가는 아닐 겁니다. 대륙을 횡단하는 자전거여행가도 있고 알제리 대사관도 따로 있으니까요. 하지만 글을 쓰면, 그리고 그걸 책으로 내면 그 ‘오리지낼리티’의 싹은 틔울 수 있습니다.   

 

▲ 달리기는 출발선에 섰을 때가 가장 두렵다.

저는 강의를 마칠 때, 이런 말을 붙입니다. “글쓰기의 시작은 미약하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 성경 욥기에 나오는 말을 패러디 해 봤습니다. 글은 막막합니다. 책은 남의 일처럼 멀게 느껴지고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포기하는 분들을 자주 봅니다. 저 역시 처음엔 ‘이게 뭐하는 짓인가’ 했었습니다.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일단 시작하면 어떻게든 결론을 맺게 됩니다. 앞으로는 내 이야기를 갖고 있는 게 더 중요해집니다. 땅 부자가 아니라 콘텐츠 부자가 성공하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 덧붙이는 말 ▮    

1. 오늘 글을 완성하지 못할 뻔 했습니다. 양해 말씀도 드렸고요.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아서 일필휘지해 썼습니다. 글의 소재로 삼은 ‘직장인의 내책쓰기’ 교육자료는 유료 독자에게 PPT로 제공합니다.    


2. 이번 글이 6월호 마지막 글입니다. 차별화된 서비스를 위해 7월호 구독료 미납자에게는 알람, 대필서비스, 강연, 사은품과 같은 유료 혜택이 중단됩니다. 응원 부탁드립니다. (월 9,900원 / 카카오뱅크 3333-0527-66818)     


3. “무언가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군가에게 가르쳐보는 것이다” 출처를 찾긴 어렵지만 누군가 이런 말을 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은 아니겠죠. 사내특강 4회를 모두 마치면 묵직한 자료가 남을 것 같습니다.  

  

4. 저는 내일(6.28)부터 2일간 제주도 출장을 갑니다. 장마라고는 하지만 나름대로 운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비오는 제주도, 궁금합니다.     


5. 강원국 선생님께서 <강원국의 글쓰기>라는 세 번째 책을 내셨습니다. 글쓰기 3단 콤보가 완성된 거죠. 스피치라이터 모두의 롤모델일 것 같습니다. 저는 세종시 국토부 강연에 가서 이미 뵈었는데 아쉽게도 그때는 책이 안 나와서 사인을 못 받았습니다. 사생팬 체면이 말이 아니네요. 다들 한 권씩 구입해 보세요.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

매거진의 이전글 수류탄, 얼굴 없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