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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여행자 Aug 29. 2018

내책 쓰기, 직장인의 로망

<週刊 태이리> 제18호

“회사 다니면서 어떻게 책을 3권이나 썼어?” 종종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바이시클 다이어리> <서른살, 회사를 말하다> <홍보인의 사(社)생활>이라는 책을 썼거든요. 지금도 새 책을 준비중이고요. 전업 작가도 아닌데, 월급쟁이가 책을 쓰는 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책 내는 방법이 정말 궁금해 묻는 분께는 성실하게 답변해 드리지만, 그냥 찔러보는 분들에게는 대충 얼버무립니다. “기회가 좋았죠 뭐. 글쓰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둘 다 사실입니다. 가끔은 “일은 안 하고 책만 썼나 봐?”라고 비꼬는 놈도 계십니다. 헛웃음이 납니다. 장담하건데, 제가 너보다 성과가 좋아요. “너나 잘 하세요.”    


#1. 모든 게 바뀌면서 글쓰기도 달졌다

패러다임의 대(大)전환기입니다. ‘4차산업혁명’이 그 대장입니다. 세상이 바뀌고 있어요. 물건을 잘 만들기만 하면 최고였던 시장이 이제는 서비스를 유통하고 서로에게 남는 것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90년대 에리히프롬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소유’가 아니라 ‘존재’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소비자들은 ‘물건’이 아니라 ‘경험’을 갖기 위해 지갑을 엽니다. 한때 보고서를 휩쓸었던 ‘선택과 집중’은 어느 덧 쌍팔년 촌스러운 말이 됐고 지금은 ‘연결과 공유’가 뜨고 있습니다. 사장님 말씀자료를 쓸 때, 이런 단어가 어떤 모양으로든 슬쩍 들어가야 제 맛이 날 정도입니다.     

▲ 인공지능의 현실화로 글쓰기에도 혁명이 오고 있다.

글쓰기도 바뀌고 있습니다. '남자들의, 멋들어진, 그럴 듯한, 영웅담'이 주목받아 왔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여자들의, 소소하고 따듯한, 공감 가는, 일상의 기록'에 눈과 귀가 모입니다. 10년 전인 2008년만 해도 우리는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돕는다’고 설파한 <The Secret>과 그 한국판 짝퉁격인 <무지개원리>에 열광했고, <꿈꾸는 다락방>의 ‘R=VD’를 마음속에 소중하게 새겼습니다. 얼핏 보면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공식인 E=MC제곱처럼 생겼습니다. 영어로 ‘Realization= Vivid Dream’이라고 하는데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는 뜻니다. 사실 전 처음 보자마자 참 유치하다고 생각했어요.

▲ 출판 키워드를 보면 세상이 보인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제목의 책이 한 동안 빅히트를 쳤지만 지금은 여러 모습으로 패러디되며 놀림거리가 된 것 같습니다. 2018년의 사람들은 그런 책을 읽지 않습니다. <신경끄기의 기술>과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대화법>을 읽으며 우주의 힘을 멀리한 채 ‘내 방식대로 살기’에 집중합니다.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건 어디어디 교수님과 무슨무슨 회장님이 아니라 곰돌이 푸, 빨강머리 앤, 보노보노입니다. 서둘지 않고, 내 속도대로 살아가는 삶에 집중하게 된 겁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The Secret> <무지개원리> <꿈꾸는 다락방>을 제가 싫어하는 건, 그게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다양성을 너무나 쉽게 무시하는 것 같아서예요. 모든 걸 개인의 노력 탓이라고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그건 아니죠.    


#2. 말하고 싶은 vs. 듣고 싶은

“나도 책 한 권 꼭 쓰고 싶은데 뭘 어떻게 써야 해요?”라고 진지하게 묻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직업 전문성을 정리해보고 싶은 분도 계시고, 여행기, 수필, 사진집, 심지어는 소설과 동화를 준비하는 분도 봤습니다. 그중  많은 수가 자서전 종류였습니다. 자신의 삶을 정리해보고 싶은 건 사람의 본능이죠. 그 욕심이 지나쳐 가끔은 온갖 좋은 말로 내 삶을 포장하려는 경우도 봤습니다. 하지만 글은 내 안으로 깊숙히 들어가 부끄러운 감정까지 쏟아내야 쓸 수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지 말고, 세상이 듣고 싶은 말을 함께 이야기 해보시라고 조언해 드리는데 놀랄 만큼 글이 좋아집니다. 글만 좋아지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제3자가 되어 돌아보면서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더 큰 가치를 만들며 살게 됩니다. 글을 쓴다는 건, 더 좋은 삶을 살고 싶다는 뜻입니다.     

▲ 책 광고는 아니지만, 광고를 하고 있다.

책은 상품입니다. 쓰고 싶은 이야기와 읽고 싶은 이야기는 엄연히 다릅니다. 나를 이야기하더라도 그 안에 세상의 변화와 트렌드를 충실하게 담아낼 수 있어야 하죠. 내 이야기를 좀 줄여보라고 말씀드리면 고개를 갸우뚱 하시며 제게 다시 묻기도 하십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못 쓸 거면 책을 쓸 필요가 있어요?” 맞습니다.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꺼내는 게 글이고, 그것들을 하나의 문맥과 기준으로 정리한 것이 책입니다. 이야기의 그 카타르시스가 책을 쓰는 큰 원동력입니다. 그게 뭐가 됐든 일단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야 합니다. 그게 글쓰는 재미입니다.

▲ 출판시장에서 욕망의 승자는 독자다.

말하고 싶은 욕망이 책을 쓰는 시작인 건 분명하지만, 그게 듣고 싶은 욕망과 충돌할 경우 항상 이기는 편은 독자입니다. 글쓰기는 개인의 영역이지만, 책은 상품이고 출판은 비즈니스입니다.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나만의 이야기만 가득 꺼내놓고 싶을 수도 있는데, 그건 일기나 블로그에 쓰시면 됩니다. 그렇게 쓴 글에도 남다른 인사이트가 분명 담겨 있습니다. 나중에 재평가 받아 사회로 길어 올려지기도 하고요. 일단 그렇게라도 시작해서 끝까지 밀고 나가면 뭔가 방법이 보입니다. 양은 언젠가 질로 바뀝니다.    


#3. 꽝은 없다, 그걸 써라

제 주변에서도 많은 분들이 책을 쓰고 계십니다. 그런데 방법을 다 알고 계시면서도 많은 분들이 책쓰기를 중도에 포기하거나 결국 실패합니다. 왜 그럴까.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에서 그 이유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마찬가지로 책을 쓰는 사람은 서로 닮았지만, 쓰지 않는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쓰지 못합니다.   

▲ 성냥갑, 커튼 패턴의 변화도 글이 된다.

책을 쓰지 못하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시간이 없고, 쓸 게 없고, 재능이 없다. 이런 패턴을 자주 봐서 아예 ‘3무(無)’ 현상이라고 정리까지 해 놨습니다. 책 쓸 시간이 없다는 분에게는 “퇴근 후 마시는 술 한 잔 하는 시간만 줄이면 충분해요”라고 말씀드리곤 합니다. 사실 시간이 없다기보다 엄두가 안 나거나, 책을 쓰고 싶은 마음이 아직 적은 상황입니다. 출퇴근 길에 에버노트로 메모를 하고, 주말에 그걸 글로 풀어 쓰면 됩니다. 그래도 시간이 안 나면 연차를 내세요. 오로지 글쓰기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만드는 겁니다. 그때는 회사 근처 커피숍으로 가는 게 효과가 좋습니다. ‘아, 출근했으면 지금 회의 시간인데’ 뭐 이런 생각을 하면 글 쓰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저절로 알게 되거든요.

▲ 3무 현상을 극복해야 책을 쓴다.

쓸 내용이 없다는 말에는 이렇게 대답해 드립니다. 아무리 지루하게 반복되는 삶에도 꽝은 없다고요. 우디 앨런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영 아닌 소재는 없소, 내용만 진실되다면”이라고 말합니다. 10년 넘게 회사생활을 했다면, 똑같은 경험을 했어도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무슨 인사이트를 얻었느냐가 모두 다른 법입니다. 우리 모두에겐 각자의 삶이 있고 색깔이 있습니다. ‘재능이 없어 못 쓴다’는 분에겐 유시민 작가의 말을 인용해 드립니다. “문학적 글쓰기에는 분명 재능이 필요하다. 하지만 내 삶을 이야기하고, 지식을 알기 쉽게 정리하는 글쓰기는 훈련하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오늘부터 써보는 건 어떨까요.          

  

▮ 덧붙이는 말 ▮    

1. 고백하자면 급히 썼습니다. 발행일(8.29)의 글을 다시 읽어보니 논리 헛점이 많아 퇴고했습니다.

    

2. 이번 주는 왜 이렇게 바쁜지 모르겠습니다. 태풍이 지나갔는데, 제 책상 위에는 일의 태풍이 불고 있습니다. 다들 여유로운 한 주 마무리 하세요.    

 

3.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계절은 역시 성실합니다. 꾸준히 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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