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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여행자 Sep 05. 2018

한남동 몸값상승의 역사

<週刊 태이리> 제19호

한남동에서 평생 살 줄 알았습니다. 여기서 나고 자랐고, 모든 추억이 다 묻어 있으니까요. 초중고를 보낸 80년대의 한남동은 저에게 아련한 곳입니다. 이곳 부동산의 역사를 제 기억으로 거슬러보면, 중학생이던 1994년 남산외인아파트가 철거됐습니다. 폭파공법이라고 해서 한남동 일대가 흔들렸고 TV생중계까지 할 정도로 요란했습니다. 허영만 <식객>의 배경이기도 했던 한남아파트는 제가 ROTC 임관을 앞둔 2003년 즈음에 헐렸습니다. 전역 후 얼마 안 돼서는 2007년 단국대가 이전했고 그 자리에 초호화 아파트 ‘한남더힐’을 짓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그때부터 ‘한남동은 부촌’이라는 공식적인 이미지가 사람들 뇌리에 박힌 것 같습니다.


#1. 서울 부동산 존버의 법칙

강남도 강북도 아닌, 애매하고 조용한 동네 한남동은 2000년대 들어서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눈을 뜨고 일어나면 ‘어디가 얼마에 팔렸다’ ‘공사가 언제부터 시작된다’는 ‘카더라 통신’이 매일 업데이트 됐거든요. 30년 넘게 전설로만 전해지던 ‘한남동 재개발’이 다시 본격화 될 조짐을 보이면서, 동네가 와장창 들썩였습니다. 우리집 빼고 다들 뭔가 큰돈을 벌 것 같아 아버지께 짐짓 불안해 하셨지만, 재테크는커녕 아들 딸 등록금 내기도 빠듯했던 입장에서는 그저 남의 일이었습니다. 집은 서민들에게 최후의 재산이자, 가난한 몸을 누일 마지막 공간이니까요. 아마 별  없었다면 집을 파는 일은 평생 없었을 겁니다.

▲ 집을 가진 한남동 원주민들은 로또를 꿈꾼다.

어머니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양재동 어디쯤에서 아동복 가게를 작게 하시다가 나중에는 ‘아는 언니’를 도와 찻집, 막걸릿집, 식당 이것저것 가게 일을 봐주기도 하셨습니다. ‘돈’이라는 건 그저 열심히 일해 차곡차곡 모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셨죠. 어머니까지 생업전선에 뛰어들어 명절이나 주말도 없이 그렇게 악착같이 일을 하셔도, 이상하게 우리 가족은 하루하루를 버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부동산의 큰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부모님은 잘 모르셨고요. 그저 언제쯤 이 낡은 빨간 기와집을 떠나 저 아랫동네나 저 강 건너 혹은 사대문 안의 아파트로 이사 갈 수 있을지 고민만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그 소박하고 거대한 꿈을 결국 이루지 못하셨어요.  

▲ 한남역 주변은 아직 재개발을 시작 못했다.  

삼남매 중 첫째인 형은 부동산을 전공하고 법학대학원을 나왔는데, 만약 2000년 초반에 형이 대학생이 아니라 서른 중반이, 부동산 시장을 제대로 읽고 움직였다면 우리 집도 하루 빨리 중산층 대열에 낄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뒤늦게 2006년 집을 팔았는데 그 당시에도 꽤 적지 않은 평당(3.3㎡) 가격을 받은 것으로 압니다. 용산구에 30평 후반대 아파트를 전세로 얻고, 수원에 주공 아파트 두 채를 구입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더 신기한 건, 그렇게 비싸게 사고도 ‘X나게 버티면’ 결국 돈을 벌더라는 겁니다. 돈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벌게 되어 있습니다. 1년도 버틸 힘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요.    


#2. 부동산의 빛과 그림자

우리 가족의 큰 밑천이 되는 그 한남동 빨간 기왓집은 아버지가 1970년대 중동으로 3년간 떠나신 댓가로 겨우 마련한 것입니다. 이제는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해 가족이 분리되었으니, 정확히는 우리 가족이 아니라 아버지의 재산이죠. 제가 얼핏 듣기로는 2천만 원이 조금 안 되는 돈을 주고 80년대 초에 구입했다고 하셨는데, 계약서를 뒤져본 건 아니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좀 궁금해서 그게 얼마인지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이란 데 들어가 화폐가치를 환산해보니 2018년 기준으론 7천만 원 정도 됩니다. 한남동에 자리를 잡은 건, 가난했던 아버지가 하신 최고의 재테크였죠.        

▲부동산 인상은 늘 물가상승률을 초월한다.

잘 몰라도 그게 30여 년 흘러 6억, 7억이 된 겁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고 수익률을 단순하게 따지면 연간 37%씩 가치가 오른 셈이고, 자산 가치로는 6억 3천만 원이 늘어났습니다. 제가 살던 한남2동은 아랫동네인 한남1동과 달리 이태원과 맞닿는 꼭대기여서 애초부터 기대를 안 했는데, 이 낡은 집이 그렇게 높은 가격으로 팔리다니 그때 정말 놀랐습니다. 빈 공터처럼 널브러진 화단과 된장냄새 자욱한 장독대, 빨래를 널던 작은 마당이 모두 다 귀해보였습니다. 이 지저분한 자투리 공간마저 다 돈이라니. 고맙다, 거기 꽁꽁 숨어 있어줘서.

▲ 비가 새서 빨간 기와 위에 방수 천을 덧댔다.

부동산 광풍이 일면서 옛 친구들이 하나 둘 한남동을 떠났습니다. 멀리는 의정부와 일산, 가깝게는 왕십리와 대방동으로 민들레 홀씨처럼 흘러갔습니다. 헤엄치지 않고 물결을 따라 그저 흘러갔어요. 저 역시 한남동에 오래 머물 수 없다는 걸 예감했습니다. 서른 둘에 결혼을 하고 신혼집을 한남동에 구하는데, 이제 막 대리를 단 평범한 직장인이 가진 돈으로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얼마쯤 생각하시는데?” 안경을 콧잔등으로 밀어 올리며 부동산 중개인이 저를 쳐다볼 때는 뭔가 죄를 지은 듯한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고작 그 돈으로?’라는 표정이 저를 비참하게 했습니다. 집이라는 게 100대 기업 연봉의 두 세배, 많아도 다섯 배를 넘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그래야 생각이라도 하죠.    


#3. 아파트, 쫄리면 뒤지시든가

한남동에 1억대 신혼집을 구하면서 수많은 멸시의 눈초리를 이겨내야 했습니다. 아니 언제부터 이 나라 부동산 시장에서는 1억이 이다지 부끄러운 돈이 된 건가요. 저는 엄연히 수수료 내는 손님이고  그는 내 돈을 받는 입장인데 왜 눈치를 봐야 하는 건지. 동네 후배의 도움으로 겨우 찾은 곳이 다섯 가구가 사는 보광동 다세대주택이었습니다. 맘에 들진 않아도 출입구가 따로 있어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는 게 그나마 장점이었. 옥탑방에서 한남대교와 잠수교, 강남GS타워가 한 눈에 보이는 건 참 맘에 들었습니다. 한강을 바라보며 하이네켄 한 잔을 마실 때는 ‘원래 신혼은 가난해야 더 재밌다’는 오기어린 낭만에 취해보기도 했습니다. ‘그까짓 거, 내가 열심히 벌어서 사고 만다!’는 순진하고도 불가능한 생각을 한참 하기도 했습니다. 여기가 헬조선인 것도 모르고.   

▲ 한남동 윗동네의 오후 7시반 야경은 아름답다.

나중에 형편에 맞춰 강북구의 2억 대 작은 빌라를 신축분양 받았는데, 그것도 내 집이라고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여기서 돈을 더 모아 아파트로 가거나, 마당 넓은 집을 사는 행복한 꿈을 꿨습니다. 제가 자란 그 낡은 한남동 빨간 기왓집에 비교하면 너무나 깨끗해서 바닥에서 향기까지 나는 것 같았습니다. 아쉬운 대로 ‘뭐, 이거면 됐다’라고 서로를 위로하며 통장에 돈을 차곡차곡 모았습니다. 비싼 갈비는 잘 먹지 않고, 옷도 잘 사지 않으면서요. 한남초등학교를 함께 나온 부자 친구들은 저랑 상황이 많이 달랐습니다. 누구네 친정에 서울숲 아파트를 사줬네, 누구네 시댁에서는 1층에 신혼집을 꾸려줬네 하더라고요. 다들 저보다 학교 성적이 한참 밑이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의 출발선은 저보다 100미터는 앞에 있었습니다. 역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더라고요. 금수저 순이지.

▲ 신이시여, 이게 정녕 사람사는 집 값이 맞습니까?

아이들이 자라면서 아파트로 이사 갈 생각을 요사이 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부동산을 열고, 직방을 깔았습니다. 호기심에 한남동은 얼만지 살펴봤는데 평균가격이 10억 원을 넘겼더라고요. ‘한남더힐’은 도대체 얼마인지 찾아보니까 최저 가격이 55억 원을 가볍게 제쳤습니다. 이게 바로 한남동 부자들의 클라스군요. 한남동에 오래 살았지만, 한 번도 그 중심에 들어가 본 적이 니다. 관심 두는 지역인 동대문구는 어떤가 살펴봤는데, 5년 전 3억 원 중반이었던 산동네 아파트가 5억 원에 척 올라와 있습니다. 욕심도 많으셔라. 서울의 집값은 오늘이 제일 싸다더 이러다가 서민들에게 아파트란 존재그저 한여름밤의 꿈이 되고 말 것 같아요. 서울의 아파트, 그 죽음의 레이스는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요. 한 번 올라타면 멈출 수가 없습니다. 하우스푸어가 되더라도 베팅을 하느냐 이대로 뒤지느냐, 결정해야 합니다.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의 이 미친 몸값은 또 어디까지 올라갈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 덧붙이는 말 ▮ 

1. 커버 이미지는 박능생 작가의 2005년작 <한남동>입니다. 한지에 수묵으로 그렸습니다. 참 멋진 그림입니다.


2. 서울에선 주소가 곧 스펙이라고 하더군요. 아파트 브랜드가 곧 삶의 등급이고요. 심지어는 지역별로 점수까지 매겨져 있다고 합니다. 부디 우리 아이들이 자랄 세상은 그런 곳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생각과 감정과 말과 글로, 그 사람이 대우받고 평가받는 건 꿈에서나 가능할까요?

 

3. “정부에는 대책(對策)이 가끔 있고, 부자들에게는 비책(祕策)이 항상 있다” 명언입니다. 주택수요가 부족해 집값이 오른다 하고, 집값을 잡으려고 재건축을 지정하거나 그린벨트를 해제하면 근처 집값이 오릅니다. 그냥 애국 마일리지 쌓아서 집 한 채씩 주고 시작합시다.


4. 한남동 이야기를 매 홀수차마다 해 왔는데요, 이젠 3회를 주기로 쓰려고 합니다. 매번 같은 이야기만 드릴 수가 없고, 관련 문헌을 찾아본다거나 답사를 가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해서요. 그 대신 글쓰기에 대해 다채롭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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