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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여행자 Mar 29. 2018

정직이 가훈일 것까지야

거짓말을 하게 된 남자 Vs. 거짓말을 못 하게 된 남자

세상엔 가짜가 차고 넘친다. 최근 인터넷을 달군 거짓말 싸움은 정봉주 전 의원과 프레시안의 진실게임인데, 빼박증거가 발견되면서 일단락됐다. MB의 거짓말을 맹렬하게 공격했던 그가, 지금은 반대의 처지가 된 게 아이러니하다. 그게 고의든 실수든 아니면 무지(無知)든, 거짓말은 대부분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영화 속에선 어떨까.    


#1. 거짓말의 발명(2009)

마크 벨리슨(릭키 제바이스)이 사는 세상에는 거짓말이 없다. 안 하는 게 아니고 처음부터 없었다. 마냥 좋을 것 같지만, 에둘러 말하는 법도 없다. 사람들은 양로원을 ‘오갈 데 없는 늙은이들을 위한 슬픈 곳’이라고 부르고, 호스피스 병원에서는 “어머님은 곧 돌아가실 분이지만, 제 월급을 위해서 좀 더 계셔달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심지어 펩시콜라의 광고카피는 ‘코카콜라가 없을 때’다.


▲ 거짓말이 없으니, 세상은 이 모양이다


팩트 폭력이 난무하니, 소위 루저(Loser)들은 매일같이 상처받는다. 마크의 직업은 소설가인데, 하필이면 가장 암울한 16세기 유럽을 맡은 탓에 하루 종일 흑사병 이야기만 하게 된다. 한 마디로 ‘핵노잼’이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전 재산을 인출하러 은행에 들렀다가, 그는 세상에 없던 그 ‘무언가’를 갑자기 발명하게 된다. 통장 잔고를 부풀려 말한 거다. 뭔가 굉장한 걸 만들었다는 걸 직감한다.    

 

▲ 세상에 없던 그 무엇, 하지만 이름조차 모른다


그는 거짓말이라는 이 초능력(?)을 맘껏 발휘한다. 룰렛 게임에서 돈을 쓸어 담고, 외계인을 만나고, 인류의 역사를 새로 쓴다. 이왕 거짓말 하는 거, 힘들어 하는 이웃에게는 따뜻한 응원의 말도 건넨다. “잘 될 거야”라는 거짓말은 삶의 벼랑에 선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여기까진 애교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어머니를 위로하다가 사후세계 이야기를 그 자리에서 막 지어낸다. 내친 김에 전 세계 사람들에게 신(神)의 존재를 속 시원하게 알려줘 버린다. 그 순간 인류탄생의 비밀이 한꺼번에 풀리고 종교가 생겨난다. 그래서 세상은 더 따뜻해지고 가족은 행복해진다나 뭐라나.  

   

#2. 라이어라이어(1997)

플래처 리드(짐 캐리)는 승소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변호사다. 법률지식으로 온갖 거짓말을 지어내는 건 아주 쉽다. 어제의 거짓말을 내일의 거짓말로 가리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 탁월한 능력덕분에, 범죄자 고객들에게 꽤 인정받는다.    

            

▲ 온갖 거짓말과 변명으로 승승장구한다


플래처에게는 이혼한 아내와 낳은 아들 맥스가 하나 있다. 그는 생일파티에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데, 자신의 재주를 발휘해 또 거짓말을 한다. 다섯 살 아이도 속지 않는 거짓말. 맥스는 “아빠가 하루만이라도 거짓말을 못하게 해주세요!”라는 소원을 비는데, 그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    


▲ 만화 같은 설정이지만 의미심장하다

      

거짓말로 먹고살다가, 진실만 이야기 하려니 죽을 맛이다. 중요한 재판에서 클라이언트의 혐의를 낱낱이 고백하고, 이웃들에게는 독설을 내뱉는다. 거짓말로 힘들게(?) 일군 삶은 엉망이 됐다. 그런 해프닝을 여럿 보여주다가 “역시 가족이 최고!”라는 결론을 향해 돌진한다. 미국식 가족 코미디물의 전형이다.    


#3. 그와 그녀를 가둔 이유

두 영화는 거짓말을 할 수 ‘있게(可)’ 된 사람과 할 수 ‘없게(不可)’ 된 사람의 이야기다. 정반대의 상황이지만, 거짓말을 바라보는 중요한 생각 몇 개를 공유하고 있다.   

 

첫째, 생활 속에서 우리는 거짓말을 의외로 많이 한다. 심리학자 존 프레이저는 “보통 사람들은 매일 200여 번에 이르는 거짓말을 한다”고 말했다. 이유는 다양하다. ‘화를 피하기 위해’ ‘좀 더 편하려고’ ‘사랑받으려고’ ‘그냥 게을러서’의 순으로 조사됐다.    


둘째, 거짓말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불편한 진실’이란 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니다. 상대를 위한 배려, 응원과 애정에는 얼마간의 거짓말이 섞여 있다. 어쩌면 우리는 새 길을 열어줄 거짓말을 간절히 기다리고, 거기에서 현실에 없는 희망을 보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셋째, 그럼에도 정직은 거짓보다 항상 앞서는 가장 중요한 가치다. ‘정직이 가훈’이라던 어떤 사람, 모두가 그처럼 ‘도덕적으로 완벽’하긴 힘들다. 하지만, 교묘하게 부당이익을 취하거나 악질적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거짓말을 했다면 동부구치소에 갈 만하다. 거짓말로 어린 생명을 짓밟은 그녀는 서울구치소에 먼저 갔다. “이게 마지막이길 바란다”던 그의 바람처럼, 그와 그녀를 닮은 거짓말은 이젠 없어야 한다.  

   

▲ 셋은 거짓말로 스스로를 옭아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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