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책 <회사에서 글을 씁니다>를 2020년 2월 20일 서점에 내놨습니다. 아직 발견하진 못했지만 더 다듬어야 하는 거친 문장들이 어딘가 숨어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을 낸다는 건 벌거벗고 세상에 나서는 일이라, 어딘가 많이 부끄럽고 걱정이 앞섭니다. 그런데도 계속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건, 진짜 나를 표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1. 직장인의 내 책 출간사(史)
첫 책인 <바이시클 다이어리>를 2008년 썼을 때 주변에서 열이면 아홉 “이 책 내는 데 얼마 들었어?”라거나 “바쁜데 언제 책까지 썼어?”라는 이상한 질문을 했습니다.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그속뜻은 ‘너가 이 책을 정상적으로 썼을 리가 없다’고 깎아내리거나 “우리는 이렇게 바쁜데, 너는 한가하게 책이나 쓰고 있냐?”는 거였습니다.
△ 회사 선배들이 이런 표정으로 출판을 축하해줬다.
두 번째 책 <서른살, 회사를 말하다>를 2010년 냈을 때는 “언제 또 책을 냈어?”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또’를 힘주어 말하는 건 ‘넌 여전히 [딴 짓]을 하고 있구나’라는 부정적 의미였습니다. 한국 사회의 직장인들은 자신이 남들과 다른 걸 잘 참지 못합니다. 내가 못하는 걸 주변에서 하면 칭찬하고 응원하기보다, 질투하고 흠잡는 게 먼저입니다. 슬프지만 제가 겪어본 세상은 딱 그렇더라고요.
△ 직장인은 다들 딴 짓을 이미 하고 있다.
세 번째 책 <홍보인의 사(社)생활>을 2016년에 새롭게 내놓자 그 뉘앙스가좀 달라졌습니다. 질문이 “다음 책은 뭐야?”로 바뀌었거든요. 이번에 네 번째 책 <회사에서 글을 씁니다>를 세상에 선보였을 때는 그런 나쁜 질문이 전보다 확실히 줄어든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책을 한 번 쓰는 건 운이 좋으면 어쩌다 가능한 일이지만, 10년 넘게 꾸준히 쓰는 건 실력과 성실함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그걸 이하시는 분들이 제 주변에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2. 글쓰기는 배고프지 않다
저는 ‘굶는 과’라고 놀림 받던 ‘국문과’ 출신입니다. 동기들이 대학 2학년이 넘어 행정학이나 경영학을 복수전공하고 전과를 고민할 때 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혼자 고상하게 문학청년의 지조를 지킨 게 아니라, 세상 물정에 어둡고 게을러 멍하니 손 놓고 있었다는 게 더 정확한 말입니다.등록금과 용돈을 벌기 위해 항상 두 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으니 다른 데 신경 쓸 틈이 별로 없기도 했고요.
△ 국문학은 국어와 문학, 즉 커뮤니케이션을 다룬다.
스무살 즈음의 저는 ‘일단 군대 다녀와서 뭐든 다시 생각해보자’라는 순진한 생각을내심 했습니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고민을 미루면, 나중에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바보 같은 마음입니다. 물론 그 생각은 입대하자마자 바로 사라졌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제대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취업준비생일 때 “국문과에서 뭘 배워요?”라는 면접관의 냉소적인 질문을 아침에 울리는 핸드폰 알람처럼 일상적으로듣곤 했습니다. 그 괴상한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해 마지막 문턱에서 미끄러진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숨이 막히고 억울하고 무서워 베개를 눈물로 적신 적이 여러 날이었습니다.
△ 국문과 나와서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충무로의 작은 잡지대행사에 힘들게 첫 취직을 해 클라이언트 대신 이곳저곳으로 취재를 다녔습니다. 사업장 구석구석을 살피며 이야기를 찾아내고 글을 썼습니다. 이후 기업 홍보실 몇 곳을 옮겨가며 사내방송 대본을 쓰고, 기자를 만나고, 기업문화 혁신활동을 맡아 했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종로의 한 회사에서 기업의 역사책인 사사(社史)담당자가 되었을 때입니다. 한때 대우증권의 사사 담당자였다는 강원국 선생님처럼 저도 그 일을 맡았고, 이후 자연스럽게 회장님의 자서전과 연설문을 담당하게됐습니다. ‘스피치라이터’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도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3. 회사에선 스피치라이터, 밖에선 작가
스피치라이터는 조직에서 리더의 말과 글을 맡아 쓰는 ‘연설문 전문작가’를 말합니다. 철저하게 을(乙)의 입장에서 그분의 말씀을 씁니다. 나를 지우고, 그분처럼 생각하면서, 회사의 입장을 대변합니다. 소설이나 에세이가 아니라, 신년사, 창립기념사, 격려사, 축사, 환영사, 그리고 칼럼과 경영서신과 같은 말씀을 씁니다.
△ 스피치라이터는 회사에서 쓰는 모든 글을 쓴다.
출근해서 회사의 글을 쓰고, 퇴근해서 저의 글을 썼습니다. 회사에서 글을 쓰는 것은 누군가의 인생을 대신 사는 시간이지만, 글을 쓰는 것은 오로지 나로 사는 시간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바꿔말하면 내 글을 쓰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나로 사는 시간이 길어지는 셈입니다. 나로 살고 싶어서, 저는 출근해 글을 쓰고 퇴근하면 또 글을 썼습니다. 명함 속 소속과 직급만으로 살다가 흔적도 없이 허무하게 죽을 순 없습니다.
△ 힘들게 썼다. 이젠 독자들의 처벌을 기다릴 뿐이다.
이번에 쓴 <회사에서 글을 씁니다>는 브런치에 30주 동안 연재한 글에 뼈를 세우고 살을 붙인 책입니다. 힘들게 쓴 만큼, 최대한 많은 분들과 만나고 싶습니다. 이 책에는 ‘왜 직장인이 글을 잘 써야 하는지’ ‘회사에서 통과되고 선택받는 글의 비결은 무엇인지’ ‘자기소개서부터 이메일과 보고서, 그리고 축사와 퇴임사까지 글의 종류마다 글쓰기 방법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가 담겨 있습니다. 글쓰기가 밥 먹여 주는 시대가 코앞에 와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글 잘 쓰는 직장인’이 지금보다 많아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