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에너지 정책 내부 기록
2025년 10월 1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공식 출범했다. 에너지 정책과 기후 정책이 하나의 부처 아래 통합된 것은 1993년 동력자원부가 상공부와 합쳐진 이래 32년 만의 일이었다.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그 32년이 어떻게 흘렀는지, 그리고 에너지를 전담하는 독립 부처가 어떻게 생겨났다 사라졌다 다시 부활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한국의 에너지 안보 거버넌스 역사는 단순한 행정 조직의 이합집산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이 에너지를 어떤 문제로 인식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에너지가 산업의 부속물로 취급됐을 때, 에너지 안보는 산업 경쟁력의 하위 의제였다. 에너지가 독립 부처를 갖게 됐을 때, 그것은 외부 충격—오일쇼크—이 강제한 인식의 전환이었다. 그리고 그 독립이 16년 만에 끝났을 때, 위기의 기억이 희미해진 결과였다.
[그림 2-1] 한국 에너지 안보 거버넌스 변천 타임라인 (1948~2025)
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정책변천사(2006)
① 상공부 시대(1948~1977): 에너지는 산업의 부속물
1948년 11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상공부가 출범했다. 상업·무역·공업을 관장하는 이 부처 안에 에너지 관련 기능이 녹아들어 있었다. 전기국이 전력 정책을 담당했고, 광무국이 광업과 석탄을 맡았다. 에너지는 독립적인 정책 영역이 아니라 산업과 무역을 지원하는 기반으로 인식됐다.
1950년대와 60년대 한국의 최우선 과제는 전후 복구와 산업화였다. 에너지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투입 요소였다. '에너지 안보'라는 개념 자체가 정책 언어에 등장하지 않았다. 전기 공급을 늘리고, 석탄 생산을 확대하고, 외국 원조로 석유를 확보하는 것이 에너지 행정의 전부였다.
그나마 독립적인 에너지 정책의 맹아가 싹튼 것은 1960년대였다. 1961년 석탄개발임시조치법이 제정되고, 제2차 전원개발계획(1967~1971)이 추진되면서 전력 공급 확대의 실행 기반이 마련됐다. 법제 측면에서는 오일쇼크 이후인 1979년, 전원개발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되어 전원개발사업 인허가를 일원화하는 법적 근거가 처음으로 갖춰졌다. 그러나 이 법들은 모두 공급 측면—더 많이 캐고 더 많이 발전하라—에 집중된 것이었다. 수입 의존 구조의 취약성, 공급 차단의 리스크, 에너지 안보의 전략적 의미는 법적으로도 제도적으로도 부재했다. [1]
이 구조가 근본적으로 흔들린 것은 외부 충격에 의해서였다. 1973년 1차 오일쇼크는 에너지가 '공급의 문제'가 아니라 '안보의 문제'임을 한국 정부에 처음으로 각인시켰다. 그 각인이 제도적 변화로 이어지는 데는 4년이 걸렸다.
② 동력자원부(1977~1993): 독립 에너지 부처의 탄생과 소멸
1977년 12월 16일, 동력자원부가 출범했다. 상공부의 동력개발국·광무국, 과학기술처의 자원조사관, 공업진흥청의 열관리과 등 에너지·자원 관련 기능이 하나의 독립 부처로 통합됐다. 전기국·석유국·석탄국·자원개발국으로 구성된 본부를 갖춘 에너지 전담 부처의 탄생이었다.
이 부처의 설립은 1차 오일쇼크(1973)의 직접적인 산물이었다. 배럴당 3달러에서 12달러로 치솟은 유가가 에너지 관리를 산업 행정의 일부로 두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을 만들어냈다. 원유의 안정적 확보, 석탄과 원자력을 통한 에너지 믹스 다양화, 에너지 수요 관리 등 앞으로 이 과제들은 독립 부처의 전담 관할이 필요한 것이었다.
동력자원부는 출범 직후인 1979년 2차 오일쇼크를 맞았다. 1980년 4월, 원유의 안정 확보 및 수급 업무를 강화하기 위해 기존 석유국을 자원정책실로 확대 개편하고, 그 산하에 석유조정관을 신설했다. 두 번의 오일쇼크를 거치며 에너지 행정의 무게중심이 공급 확대에서 수급 안정과 위기관리로 이동하는 과정이 조직 구조에 그대로 반영됐다. [1]
1979년에는 에너지이용합리화법이 제정됐다. 에너지 절약과 효율화를 의무화하는 이 법은 단순한 절약 캠페인을 법적 제도로 전환한 것이었다. 에너지 안보의 틀이 공급 확보에서 수요 관리로 확장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그러나 동력자원부의 독립은 오래가지 못했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오일쇼크의 기억이 희미해졌다. 원자력 확대로 전력 부문의 불안이 줄었고, 1986년 이후 국제 유가가 급락하면서 에너지 위기의 긴박감이 사라졌다. 에너지 정책을 산업 정책과 분리할 이유가 퇴색했다.
1993년 3월 6일, 동력자원부는 상공부와 통합되어 상공자원부로 개편됐다. 설립 16년 만의 일이었다. 공식적인 이유는 '국내 산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와 산업발전의 기반 확충을 위한 사무의 효율적 추진'이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결과는 에너지 안보가 다시 산업 정책의 하위 의제로 내려앉는 것이었다.
"동력자원부 시절, 부처 안에 에너지를 전략적 자원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살아 있었다. 산업과 통합된 이후 에너지는 다시 산업 경쟁력의 투입 요소로 환원됐다. 에너지 안보라는 언어가 정책 문서에서 조용히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 그즈음이다."
— 도현재 (2003). 21세기 에너지안보의 재조명 및 강화 방안. 에너지경제연구원 기본연구보고서. [1]
③ 32년의 산업 종속(1993~2025): 에너지 안보 없는 에너지 행정
1993년 이후의 역사는 에너지 행정 조직의 이름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본질 구조가 변하지 않는 과정이었다. 상공자원부(1993) → 통상산업부(1994) → 산업자원부(1998) → 지식경제부(2008) → 산업통상자원부(2013). 다섯 번의 이름 변경, 하나의 공통점—에너지는 산업 또는 통상의 부속 기능이었다. 이 기간 에너지 안보 거버넌스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에너지 정책의 목표가 모호해졌다는 점이다. 산업 경쟁력을 위해 에너지를 싸게 공급해야 하는지(산업부 논리), 환경을 위해 화석연료를 줄여야 하는지(환경부 논리), 에너지 안보를 위해 다변화를 추진해야 하는지(에너지 부서 논리)가 하나의 부처 안에서 끊임없이 충돌했다.
2006년 에너지기본법(현 에너지법)이 제정됐다.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는 최상위 법률의 탄생이었다. 이 법은 에너지 안보, 에너지 복지, 에너지 환경을 에너지 정책의 3대 축으로 설정했다. 또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20년 주기, 5년마다 수립하도록 의무화했다. 제도적으로는 에너지 안보를 정책의 핵심으로 명시하는 진전이었다. [2]
그러나 2021년 탄소중립기본법 제정 과정에서 결정적인 오류가 발생했다. 에너지기본법의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수립 근거 조항이 탄소중립기본법 제정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유실됐다. 탄소중립기본계획이 에너지 계획을 포괄하는 상위 계획이 되면서 별도의 에너지기본계획 수립 의무가 약화된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의 에너지 정책에서 사실상 최상위 에너지 계획이 실종됐다. 이 공백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2008~2013)의 지식경제부 시절은 이 시대의 모순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녹색성장'을 국가 전략으로 내걸었지만, 에너지 담당 부처의 이름은 '지식경제부'였다. 자원외교라는 이름으로 해외 화석연료 개발에 수십조 원을 투자했지만, 국내 재생에너지 기반은 유명무실했다. 에너지를 경제 성장의 수단으로 보는 시각과 에너지를 전략적 안보 자원으로 보는 시각이 충돌하는 전형적인 양상이었다.
[그림 2-2] 한국 에너지 안보 관련 주요 법령 제정 연표
출처: 국가기록원,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정책변천사(2006)
주: 1967년은 제2차 전원개발계획(행정 계획); 전원개발에 관한 특례법(법령)은 1978년 제정·1979년 시행
④ 2025년 기후에너지환경부 출범: 진전과 남은 문제
2025년 10월 1일, 기후에너지환경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제정령이 발효됐다. 32년간 산업부 안에 묶여 있던 에너지 정책 기능이 기후 정책과 함께 환경부와 결합한 것이다. 이 통합이 갖는 의미는 단순한 조직 개편 이상이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이 기후부로 이관되면서 탈탄소 목표와 전력 계획 사이의 정합성이 제도적으로 강화됐다. 에너지 정책과 기후 정책의 통합 지휘가 2 차관 단일 라인 아래 이뤄지게 됐다. [3]
이 변화는 유럽 선진국의 에너지·기후 거버넌스 모델과 방향이 일치한다. 덴마크는 기후에너지부가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안보를 통합 관할한다. 독일은 연방경제기후보호부(BMWK)가 2021년 숄츠 정부 출범과 함께 신설되어 에너지 전환과 안보를 통합 담당해 왔으나, 2025년 5월 메르츠 CDU/CSU 정부 출범 이후 기후 기능을 환경부로 이관하고 부처명을 연방경제에너지부(BMWE)로 재편했다. 이는 경기 침체와 산업 경쟁력 회복을 기후보다 우선시한 정치적 결정이었다. 영국은 에너지안보·넷제로부(DESNZ)라는 이름 자체에 에너지 안보를 명시하고 있다. 한국이 2025년에 선택한 방향은 이 흐름과 같은 궤도 위에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가 남아 있다. 화석연료 공급안보 기능이 여전히 산업통상부 자원산업국에 잔류하고 있다. 원유·가스 비축 및 수급 관리, 해외자원개발 정책이 기후부 밖에 있다. 재생에너지(기후부)와 화석연료 안보(산업부)가 이원화된 구조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의 의사결정 속도와 책임 소재에 대한 의문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법제도다. 에너지 관련 법률에서 재생에너지를 에너지 안보 수단으로 명시한 조항이 없다. 에너지안보의 법적 정의는 여전히 화석연료의 안정적 양적 확보 중심이다. 기후부 출범이라는 조직 변화가 법제도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으면, 행정 문서에서는 재생에너지가 에너지 안보와 무관한 것으로 계속 취급된다. [4]
⑤ 거버넌스 역사가 남긴 구조적 공백
1948년부터 2025년까지 77년의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패턴이 있다. 에너지 거버넌스가 에너지 안보를 진지하게 취급한 시기는 오일쇼크 직후의 짧은 창(窓) 안에서 뿐이었다. 그 창이 닫히면 에너지는 다시 산업, 통상, 성장의 하위 의제로 돌아갔다.
이 패턴이 만들어낸 구조적 공백은 세 가지다.
첫째, 개념의 공백이다. 재생에너지가 에너지 안보 개념에 아직 포함되지 않는다. 에너지 안보의 현대적 정의—시스템 취약성 최소화—는 아직 제도 언어에 편입되지 못했다.
둘째, 법제의 공백이다. 에너지기본법, 전기사업법,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어디에도 재생에너지를 에너지 안보 강화 수단으로 명시한 조항이 없다. 한국법제연구원은 2022년 보고서에서 '현행 법률의 에너지 안보 개념이 화석연료 양적 확보로만 접근하는 한계'를 명시적으로 지적했다. [D-4]
셋째, 거버넌스의 공백이다. 화석연료 공급안보(산업통상부)와 재생에너지 정책(기후부)의 이원화가 지속되는 한, 위기 상황에서 두 가지를 통합 관할하는 단일 의사결정 체계가 작동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에너지 안보 수단으로 동원할 법적·제도적 근거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출범은 이 공백을 메우는 시작이다. 그러나 시작일 뿐이다. 2장의 나머지는 이 공백이 어떤 정책 결과를 낳았는지를 구체적으로 추적한다.
2.1절 핵심 명제
① 한국 에너지 거버넌스는 77년간 단 16년(동력자원부 시절)만 에너지 전담 독립 부처를 가졌다.
② 독립 부처가 1993년 폐지된 것은 오일쇼크의 기억이 희미해진 결과였다 — 구조적 취약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③ 32년 산업 종속의 결과: 에너지안보 개념 공백 + 법제 공백 + 거버넌스 이원화.
④ 2025년 기후부 출범은 진전이지만, 화석연료 안보 기능 이원화·법제 미비 등 구조 과제가 남아 있다.
⑤ 재생에너지를 에너지 안보 수단으로 명시한 법 조항이 없다 — 이것이 2장이 분석할 핵심 공백이다.
▌ 이 절의 주요 참고문헌
[1] 도현재 (2003). 21세기 에너지안보의 재조명 및 강화 방안. 에너지경제연구원 기본연구보고서.
[2]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통계연보 2023 및 에너지수급동향.
[3] 기후에너지환경부 (2025.10.1). 기후에너지환경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제정령.
에너지경제연구원 (2006). 에너지정책변천사. KEEI.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동력자원부", "산업자원부" 항목. 한국학중앙연구원.
[4] 박기선, 「에너지안보 및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에너지법제 정비방안 연구」, 한국법제연구원, 2025.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