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정권 교체와 정책 리셋의 반복

2장 에너지 정책 내부 기록

by 이주헌

1993년 김영삼 정부가 UNFCCC에 가입하면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선택한 지 32년이 지났다. 그 사이 8번의 정권 교체가 있었다. 8번의 '새 출발' 선언이 있었다. 녹색성장, 그린뉴딜, 탈원전, 원전 회귀, 탄소중립, K-GX. 이름과 방향이 매번 달랐다. 그러나 에너지 수입의존도 93%라는 숫자는 단 1% 포인트도 구조적으로 줄지 않았다. 이 챕터는 그 30년의 역사를 추적한다. 단순한 역사 서술이 목적이 아니다. 왜 이렇게 오래, 이렇게 철저하게, 정책 리셋이 반복됐는지를 구조적으로 해명하는 것이 목적이다.


① 원점: 1992년 리우회의와 한국의 첫 번째 선택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역사적인 회의가 열렸다. '리우환경회의'는 인류 역사상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첫 번째 글로벌 합의의 장이었다. 여기서 채택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은 '공통되지만 차별화된 책임' 원칙을 제시했다. 선진국은 의무적 감축을, 개발도상국은 자발적 참여를.


당시 한국의 위치는 애매했다. 경제 규모로는 세계 10~15위권이었지만 1인당 GDP는 약 7,500달러대(1993년 기준)로 선진국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온실가스 배출량은 이미 세계 13위였다. 급속한 산업화가 만들어낸 역설적 위치였다.


리우회의 이후 한국 정부 내부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경제부처들은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부과될 경우 연간 GDP 성장률이 0.5~1.0% 포인트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분석하며 강하게 반대했다. 외교부는 '기후변화협약 가입은 환경외교의 새로운 장을 여는 기회'라며 국제 위상 제고 논리로 참여를 주장했다. 환경부는 '국내 환경정책 강화의 전환점'으로 삼고자 했지만 예산과 역량이 미약했다. 철강업계는 '조강 1톤당 에너지 소비량이 일본의 1.2배, 독일의 1.4배 수준으로 감축 의무는 국제 경쟁력을 저해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1]


결국 1993년 김영삼 정부에서 방침이 확정됐다.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기후변화협약에 가입하되, 개발도상국 지위는 확실히 하자.' 1993년 12월 한국은 UNFCCC에 47번째 국가로 공식 가입하면서 '비부속서 I 국가' 지위를 선택했다. 감축 의무 없이 협약에 참여하는 이 선택은 한국 기후·에너지 정책의 출발점이자 이후 30년 패턴의 원형이 됐다.


이 선택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전략적 지연'이었다. 국제협약에는 참여하되 실질적 의무는 최대한 미루는 전략. 이것이 이후 8번의 정권 교체를 거치면서도 한국 에너지·기후 정책의 기저에 흐르는 DNA가 됐다. 프레임은 바뀌었지만 본질은 같았다. 이 유예의 대가는 30년이 지난 지금, 93.9%라는 숫자로 돌아왔다. 1993년은 한국 기후정책의 '원년'이자 '유예의 시작'이었다. 당시의 선택이 옳았는지 그른지는 역사가 판단할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선택의 결과를 우리가 지금 고스란히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② 1차 전환 시도와 좌절 (1998~2008): 효율화 시도와 에너지기본법(현 에너지법)

1998년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에너지 효율화를 부분적으로 추진했다. 위기 상황에서의 에너지 절약은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에너지 집약적 부문의 비중이 소폭 줄었다. 이 시기 한국은 교토의정서를 비준했다. 그러나 비부속서국 지위는 유지됐다. 의무는 없었다.

2003년 노무현 정부는 기후 대응을 처음으로 국정 과제의 주류로 올리기 시작했다. 2006년 에너지기본법(현 에너지법)이 제정됐다. 에너지 안보, 에너지 복지, 에너지 환경을 3대 축으로 설정하고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20년 주기로 수립하도록 의무화했다. 이것은 분명한 진전이었다. 처음으로 에너지 정책에 장기 계획의 틀이 생겼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94%를 웃돌았다. 에너지기본계획이 수립됐지만, 그 계획이 실제로 에너지 구조를 바꾸는 수단이 되기까지는 더 많은 것이 필요했다. 계획의 수립이 곧 실행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 간극은 이후 정권들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2]


③ 녹색성장과 자원외교의 역설 (2008~2017): 선언만 있고 전환은 없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은 외형상 가장 야심 찬 에너지·기후 전략이었다. '녹색성장'을 국가 브랜드로 내세우고 G20 의장국으로서 국제사회에 이 개념을 수출하려 했다. 2009년에는 2020년 BAU 대비 30% 감축이라는 목표를 자발적으로 선언했다. 2010년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이 제정됐다. 2011년에는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을 인천 송도에 유치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녹색성장을 외쳤고, 다른 쪽에서는 아프리카와 카스피해에서 화석연료를 사들이는 자원외교에 수십조 원을 쏟아부었다. '해외 자원 자주개발률 확대'가 에너지 안보의 핵심 수단으로 제시됐다. 결과는 참혹했다. 2013년 감사원 감사에서 주요 사업들의 부실이 드러났고 수조 원의 손실이 확인됐다.


더 큰 문제는 이 정부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오히려 급증했다는 점이다. 녹색성장을 선언한 시기에 한국의 배출량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에너지 수입의존도도 2009~2010년 97%대로 치솟았다(2010년 97.5%). 이명박 정부 이전인 2001년에 이미 98%를 기록한 바 있어 '사상 최고'는 아니었지만, 녹색성장 시대에 의존도가 오히려 높아진 역설은 분명했다. 녹색 선언과 화석연료 의존의 모순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시기였다.


박근혜 정부(2013~2017)는 이 아이러니를 어느 정도 인정했지만 방향 전환은 없었다. 2016년 5월 박근혜 정부는 법에 명시되어 있던 202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조용히 삭제했다. 목표 달성이 어려워지자 법 자체를 바꾼 것이다. 같은 해 국제 기후변화 연구기관 Climate Action Tracker(CAT)는 한국을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4대 '기후악당'으로 평가했다. [2]


④ 탈원전과 탄소중립의 아이러니 (2017~2022): NDC는 올랐지만 구조는 그대로

문재인 정부(2017~2022)는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가장 극적으로 바꾼 정부였다. 탈원전을 선언하고 재생에너지 확대를 핵심 어젠다로 설정했다. 그린뉴딜을 통해 재생에너지, 녹색 인프라, 에너지 효율화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2020년 10월에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2021년 10월에는 NDC를 2030년까지 배출량 40% 감축이라는 도전적 목표로 상향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도 결정적인 한계를 남겼다. 첫째, 실제 재생에너지 설치량이 목표에 미치지 못했다. 계획은 야심 찼지만 인허가, 계통 연계, 지역 수용성이라는 세 벽을 넘지 못했다. 둘째, 탈원전의 속도가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를 앞질렀다. 원전이 줄어드는 자리를 LNG 발전이 채우면서, 의도와 달리 화석연료 의존이 오히려 커졌다.


그리고 결정적인 제도 오류가 있었다. 2021년 탄소중립기본법 제정 과정에서 에너지기본법의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수립 근거 조항이 유실됐다. 탄소중립기본계획이 에너지 계획을 포괄하는 상위 계획이 되면서, 별도의 에너지기본계획 수립 의무가 약화됐다. 그 결과, 한국의 에너지 정책에서 사실상 최상위 에너지 계획이 실종됐다. 가장 진보적인 에너지 전환 정부가 가장 치명적인 제도적 공백을 만든 아이러니였다.


⑤ 원전 회귀와 CFE (2022~2025): 리셋의 완성

윤석열 정부(2022~2025)는 이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탈원전 폐기'를 선언하고 원전을 탄소중립의 핵심 수단으로 재설정했다. '무탄소에너지(Carbon Free Energy, CFE)' 전략을 내세워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동등하게 취급하는 국제 논의를 주도하려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2022)이 이 정부의 출범과 겹쳤다. 에너지 안보가 전 세계적 화두로 부상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 안보 논의는 재생에너지 확대보다 원전 활용과 화석연료 공급 다변화에 집중됐다. 한국의 중동 원유 의존도는 이 시기 다시 72% 수준으로 반등했다. [2]


윤석열 정부에서 재생에너지 정책은 사실상 후퇴했다.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가 하향 조정됐고, 일부 사업의 인허가가 지연됐다. 2030 NDC 달성을 위한 에너지 전환 부문 세부 계획도 전면 재검토됐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3년 보고서에서 '현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이 NDC 달성을 담보하지 못할 가능성'을 명시적으로 지적했다. [3]


⑥ 이재명 정부와 K-GX: 전환의 시작인가, 또 다른 리셋인가

2025년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두 가지 점에서 이전 정부들과 다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첫째, 에너지 전환을 '기후 문제'가 아닌 '경제 성장 전략'으로 재프레임 했다. 'K-GX(Korea Green Transformation)'를 산업 탈탄소화와 경제 성장의 동시 추진 전략으로 설정하고, 2026년 1월 K-GX 민관합동 추진단을 출범시켰으며 상반기 중 구체적인 이행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둘째,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출범시켜 에너지와 기후 정책의 제도적 통합을 이루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에너지고속도로'를 내걸었다. 박정희 정부의 경부고속도로, 김대중 정부의 인터넷 고속도로에 이어 기후위기 시대의 에너지 인프라를 국가 주도로 구축하겠다는 논리였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원전 유지를 실용주의적으로 병행하는 접근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일변도와 달리 산업계와 보수 진영의 반발을 줄이는 효과도 있었다.


그러나 이 정부도 '리셋의 유혹'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K-GX는 전략의 방향성이 뚜렷하지만, 구체적인 재정 메커니즘과 법적 구속력이 아직 미완성이다. CCfD(차액계약제도), GX전환채 등 민간 투자를 유인하는 핵심 도구들의 법제화가 지연되고 있다. '선언 → 세부 설계 부재 → 다음 정권에서 폐기'라는 패턴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이번 임기 내에 법적·재정적 메커니즘의 착근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⑦ 리셋이 반복되는 구조적 이유

왜 30년 동안 이렇게 철저하게 정책 리셋이 반복됐는가. 개인의 의지나 특정 정권의 능력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 이유가 있다.

첫째, 에너지 정책이 이념 갈등의 대리전이 됐다. 원전 찬반이 진보-보수의 진영 문제로 굳어지면서, 정권 교체는 자동으로 에너지 정책 리셋을 의미하게 됐다. 원전 확대(보수)와 탈원전(진보)이라는 이분법이 에너지 안보의 실질적 논의를 가렸다.

둘째, 에너지기본계획의 법적 근거가 약화됐다. 2021년 탄소중립기본법 제정 후 사실상 최상위 에너지 계획이 실종됐다. 법적 근거가 없는 계획은 다음 정권이 무시하기 쉽다.

셋째, '에너지 수입의존도'를 구조 지표로 관리하는 체계가 없다. 각 정권은 자신만의 성과 지표를 설정했다. 재생에너지 비중, 원전 비중, NDC 목표—이것들은 모두 중요하지만, '에너지 수입의존도 감소'라는 구조 지표가 법제화되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면 성과 지표도 바뀌고, 전임 정부의 성과는 지워진다. 에너지 수입의존도 93.9%는 그 30년의 결과다.


정책 연속성의 조건: 덴마크·독일과의 비교

▶ 덴마크: 1973년 오일쇼크 이후 수십 번의 정권 교체에도 재생에너지 정책 지속 — 이유: 의회 여야 합의 기반의 에너지협약(Energy Agreement), 최소 5~10년 유지 조건 명시

▶ 독일: 2022년 이후 에너지 전환이 가속화 — 이유: 에너지 안보·기후를 동시에 다루는 단일 부처(BMWK, 현 BMWE)

▶ 한국: 8번의 정권 교체마다 에너지 정책 리셋 — 이유: 법적 구속력 부재 + 부처 이원화 + 에너지=이념 갈등

→ 해결책: 에너지 수입의존도를 법정 성과 지표로 설정 + 의회 승인 에너지기본계획 근거 복원


2.3절 핵심 명제

① 1993년 UNFCCC 비부속서국 선택이 '전략적 지연'의 원점 — 이후 30년 정책 DNA.

② 8번의 정권 교체, 8번의 리셋 — 프레임은 매번 달랐지만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93%+ 불변.

③ 리셋의 구조적 원인: ① 에너지=이념 갈등 ② 법적 구속력 없는 계획 ③ 구조 지표 관리 부재.

④ 탄소중립기본법(2021)의 역설: 가장 진보적 에너지 전환 정부가 에너지기본계획 근거를 유실.

⑤ 리셋 방지 조건: 의회 승인 에너지기본계획 + 에너지 수입의존도 법정 지표화 + 부처 이원화 해소.



▌ 이 절의 주요 참고문헌

[1] 도현재 (2003). 21세기 에너지안보의 재조명 및 강화 방안. 에너지경제연구원 기본연구보고서.

[2]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통계연보 2023 및 에너지수급동향.

[3] 국회예산정책처 (2023). 탄소중립 에너지전환 정책 평가. 국회예산정책처.

작가의 이전글2.2  기후부 출범의 진전과 남은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