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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열 Sep 14. 2020

겸손하게 여행하세요.

Hanoi, Vietnam

여행이 무거운 마음의 짐이 되었다고 말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해줄 수 있을까?


긴 여행을 계획하고 막 시작했을 무렵 의욕이, 아니 욕심이 너무 많았다. 괜찮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사진을 잘 찍고 싶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가지 않은 곳을 여행하고 다른 사람들이 만나지 못할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그래야 특별하고 그럴듯한 여행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여행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행은 시작부터 엉망이었다. 자리를 잡고 펜 뚜껑을 열었지만,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고 스케치북을 닫는 날이 많았다. 뭘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몰라 답답했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뷰 파인더에 눈을 가져다 댔지만 그 간단한 셔터를 몇 번 누르는 것 역시 너무 힘겨웠다. 역시 뭘 어떻게 찍어야 할지 몰라 답답한 마음만 밀려왔다.

그렇게 제대로 꺼내지도 못할 그림 도구와 카메라 때문에 무거워진 가방을 메고 매일 가이드북에 나온 몇몇 장소만 의미 없이 돌아다녔다. 그렇게 걸어 다니며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만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그래서 하노이에 도착해 지난 베트남 여행을 되돌아보면서 ‘이번 여행은 엉망이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앞으로 여행도 계속해서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 될 까 봐 여행은 점점 나를 짓누르는 ‘짐’이 되어버렸다.






베트남에 오기 몇 달 전 호주에서 일하던 어느 날, 몇 명 찾아오지 않는 블로그에 누군가 방명록을 남겨놨다.


“미얀마 여행을 떠나려고 합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데 준비하면서 자주 여쭤 봐도 될까요?

저는 베트남에 살고 있습니다. 혹시 베트남에 여행 오실 거면 베트남 정보는 제가 알려 드릴게요.”


블로그에 써 논 미얀마 여행 글을 읽고 연락을 했을 것이다. 마침 나도 베트남으로 떠날 생각이었기에 우리는 서로 미얀마와 베트남 여행 정보를 주고받았다. 서로 충분한 이야기를 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그녀는 하노이 근처 NGO센터에서 간사로 일하고 있으니 베트남에 오게 된다면 언제든 연락을 하라고 했다.


그러나 베트남을 여행을 하면서도 그 간사님을 직접 만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분명 내가 연락을 하면 그녀는 ‘미안하지만 요즘 바쁘네요.’라는 핑계를 댈 거라 생각했고 내가 괜찮은 여행 친구라도 만난다면 그곳까지 굳이 찾아 갈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이른 아침 하노이에 도착했을 땐 여행 친구도, 별다른 계획도 없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연락을 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아침에 하노이에 도착했어요.”

“어디세요? 지금 그쪽으로 갈게요!”

다행히 간사님은 예상과는 다르게 바쁘다는 핑계 대신에 너무 흔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최유리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고 검게 그을린 그녀가 게스트하우스로 찾아왔다. 

그녀는 유창한 베트남어로 작은 식당에선 주문을 하고 버스 정류장에선 버스 기사에게 길을 물었다. 그리고 함께 NGO센터로 향하던 길에 그녀가 말했다.

 “세열 씨가 여복이 있나 봐요. 오늘 여대에서 우리 센터로 봉사활동 오는데! 잠시 공항 좀 들렸다가 같이 들어가요.”


공항에 들러 간사님과 여대 봉사단과 함께 들어간 NGO센터에서 며칠 지내기로 했다. 여대생들은 하루 종일 이곳저곳 분주하게 다니며 봉사활동을 하고 센터 직원 분들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사무실에서 일을 한다. 그런 틈에서 나는 혼자 늦잠을 자고 느긋하게 산책을 하다가 때가 되면 식당을 찾아 밥을 먹었다. 어느 날 그렇게 빈둥대고 있는 내게 간사님이 말했다.

“세열 씨, 밥값으로 그림 하나 그려주고 가요.”

“그림이요? 그럼요!”

안 그래도 슬슬 눈치도 보이기 시작하고 무료해질 즈음이라 약간 과장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고는 유리 간사님이 나를 커다란 하얀 벽 앞으로 데리고 갔다. “여기에 그려줬으면 좋겠어요. 애들이 도서관 가는 길이니까 아이들 좋아할 만한 그림으로.”


펜을 방에서 들고 나와 다시 벽 앞에 섰다. 

사실 자신 있게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지만 커다랗고 하얀 빈 벽이 두려워졌다. 손바닥 만한 스케치북에도 그림을 제대로 못 그리고 있는데, 이렇게 한 번도 그려본 적이 없는 큰 벽에 그림이 바로 그려질 리 없었다.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왼쪽으로 갔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수없이 왔다 갔다 하며 고민해보지만 별 수가 없다. 그렇게 한참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일단 시작이라도 해보자 하고 억지로 첫 선을 무겁게 그린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그 선을 만회하기 위해서 다음 선을 그리고 다시 그 선을 만회하기 위해 다음 선을 그린다. 그렇게 하나하나 ‘만회’ 하다 보니 부담감이 조금씩 줄어든다.

그림은 이튿날까지 이어졌다. 벽화 그리던 첫날 무심하게 지나치던 여대생들도 두 번째 날은 멀리서 쳐다보다가 내게 다가와 인사를 건네고 함께 펜을 들고 벽화를 도와준다. 덕분에 벽화가 생각보다 일찍 완성이 됐다.


다 그린 벽화 앞에서 아이들이 다가와 까르르 웃으며 장난친다. 그 모습이 무언가 부족해 보이던 벽화를 채워주는 듯하다. 덕분에 잘 그린 벽화는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놀만한 무대 배경 정도로는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마음 한가운데 걸린듯한 부담감이 조금은 녹아내린다.





벽화를 완성하고 다음날, 2주라는 짧은 비자 탓에 아쉬운 마음으로 NGO센터를 떠났다. 유리 간사님은 떠나는 내게 말 대신 글로 인사를 전했다.


“건강히 겸손하게, 그리고 매 순간 행복하게 여행하길”


그 글을 읽고 오랫동안 생각을 해본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 그리고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말, ‘겸손한 여행’에 대해서. 그리고 그 덕분에 이번 베트남 여행이 왜 이렇게 힘겨웠는지 알 것만 같았다.

남들보다 여행을 ‘더’ 잘하고 싶었나 보다.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럴듯한 사진과 그림을 그려 ‘나의 여행’보다 ‘남들이 더 보기 좋은 여행’을 하고 싶었나 보다. 그런 욕심 때문에 이곳 베트남 여행이 너무나 버거워졌던 것이다.


유리 간사님의 ‘겸손하게 여행하세요’라는 말은 그런 욕심을 감당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했던 말일까? 아니면 별 의미 없이 누구에게나 전하는 인사였을까? 무엇이든지 간에 그 인사 덕분에 여행에 대한 욕심과 무언가 잘 만들어 내야 한다는 부담을 많이 덜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여행이 한결 가벼워졌다..





베트남을 떠나고도 ‘겸손하게 여행하세요.’라는 말을 여행하는 내내 마음속으로 떠올렸다. 그리고 그때마다 겸손의 의미는 매번 다르게 다가왔다.


나에 대한 겸손,

사람에 대한 겸손,

상황에 대한 겸손.


사실은 여전히 화를 내며 욕을 내뱉고 부족한 배려와 편견을 갖고 여행했다. 그래도 그 말 덕분에 조금은, 아주 조금은 더 모난 마음 다듬어 여행을 할 수 있었고 한 번이라도 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즐거운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그래서 여행 중 들었던 말 중 가장 아름답고 감사했던 말이었다.


‘겸손한 여행.’이란 말은.
 



 









오래전 여행을 하고 몇 년 동안 글을 쓰고 사진을 다듬었습니다. 그리고 몇 해 전 책을 만들었습니다.

브런치에 새로운 글을 쓰기 전에 책에 실은 글 중 좋아하는 글, 편집 과정 중 빠진 글, 사진이나 그림을 더 보여주고 싶었던 페이지를 중심으로 다시 올려보려 합니다.

책을 봐주신 분들께는 다시 여행을 떠올리는 계기로, 아직 본 적이 없으신 분께는 답답한 일상에서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Instgram: @310.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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