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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열 Sep 18. 2020

종이 한 장

Agra, India

“아저씨, 얼굴 그려드릴게요.”

“얼굴? 난 돈 없는데. 필요 없어.”

“사실 제가 지금 종이 한 장이 필요한데 제가 얼굴 그려드리면 아저씨가 가지고 있는 종이 한 장 주시면 안 될까요?”


타지마할 입구에 들어가는 것은 공항에서 만큼이나 까다로운 검사를 했고 종이와 펜을 들고 갈 수 없다고 했다. 아마도 여느 관광지처럼 하얀 대리석에 글자를 세기 거나 낙서를 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이유였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사진을 찍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런데 가만 보니 관광객들의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들 가방 속에 사진을 담을 종이가 한가득 보인다. 몇 번 망설이다가 나무 그늘 아래 쉬고 있는 한 사진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얼굴 그림과 종이 한 장을 바꾸자고. 아저씨는 종이 한 장쯤이야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한번 옆으로 끄덕이며 제안을 승낙한다.





몇 분 후, 다 그리고 건넨 그림이 다행히 마음에 들었는지 약속보다 많은 종이 두 장을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내 카메라를 보고 말한다.

“메모리 카드 좀 잠시 주게나.”

받은 메모리 카드를 자신의 카메라에 꼽고는 나를 타지마할 앞으로 데려가 포즈까지 가르쳐주며 찍어준다. 그리고 말했다.


“그림을 종이 한 장으로 바꿀 순 없지 않겠나.”











오래전 여행을 하고 몇 년 동안 글을 쓰고 사진을 다듬었습니다. 그리고 몇 해 전 책을 만들었습니다.

브런치에 새로운 글을 쓰기 전에 책에 실은 글 중 좋아하는 글, 편집 과정 중 빠진 글, 사진이나 그림을 더 보여주고 싶었던 페이지를 중심으로 다시 올려보려 합니다.

책을 봐주신 분들께는 다시 여행을 떠올리는 계기로, 아직 본 적이 없으신 분께는 답답한 일상에서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Instgram: @310.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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