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세열 Sep 09. 2020

사진을 찍어 준 사람이 되고 싶었다.

Yangon, Burma


사진을 찍어간 사람이 아니라 사진을 찍어 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대부분 사진을 찍고 자신이 찍힌 LCD를 보고 웃고 말지만 가끔씩 두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있다.

차라리 약간의 돈을 요구하면 그저 건네주고 마음은 편한데, 사진을 달라고 하면 카메라에서 사진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어렵게 손짓으로 설명하면서 미안한 마음이 무겁게 든다. 그래서 많은 관광객들처럼 사진을 찍고 가버린 사람이 아니라 사진을 찍어 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런 이유로 매번 여행 때마다 가방에 몇 개의 렌즈와 커다란 사진기 옆에 폴라로이드 카메라(정확히는 후지 인스탁스 미니카메라)를, 나중엔 작은 휴대용 사진 인화기를 들고 다니게 되었다.


물론 매번 사진을 찍을 때마다 사진을 뽑아 건네주는 좋은 여행자는 아니었다. 필름을 충분히 들고 다닐 수 없었다는 핑계가 있지만 사실은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단지 내 마음이 조금 더 편하고자 하는 간사한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모든 사람들에게 사진을 뽑아 줄 수 없으니 ‘이런 사람에게, 저런 사람에게 사진을 선물 하자’ 같은 규칙을 세웠다가 바꾸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마지막까지 남은 나름의 규칙은, 사진을 뽑아 주는 건 전체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아예 하지 말자였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있을 때 한 두 아이에게만 사진을 건네면 나머지 아이들의 부러운 눈빛을 감당해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양곤의 길거리를 걷다가 배가 고파 노점에 앉아 오백 원짜리 국수를 먹고 멍하니 벽에 기대고 있으니 담장 너머로 병아리 소리 같이 아이들 노랫소리가 들렸다.

호기심에 까치발을 들어 담장을 쳐다보니 아이들이 한가득 교실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괜한 장난기에 이상한 몸짓과 표정을 지으니 아이가 키득키득 웃고 그 웃음소리에 그 아이의 짝꿍 그리고 다시 그 옆의 아이들이 나를 쳐다본다. 그래서 우린 서로 술래 없는 숨바꼭질을 했다. 그러다 산만한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고 나는 멋쩍게 미안하다는 손짓을 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화내기보단 한번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신다.


미안한 마음과 설레는 마음을 함께 안고 교문을 지나 교실로 들어간다. 약간은 캄캄한 교실에 하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천사들처럼 재잘재잘 춤추며 노를 부르고 있다. 방해가 될까 재차 괜찮으냐 여쭤보고 아이들과 사진 놀이를 시작했다.

커다란 사진기 앞에 아이들이 살짝 긴장했지만 찰칵 셔터 소리가 나고 나서야 숨겼던 미소를 환하게 짓는다. 그리고 쪼르르 달려와 작은 LCD로 사진을 확인하고 깔깔대고 웃는다.


그렇게 아이들과 선생님과 사진놀이를 하고 있는데 한 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교장 선생님이 위로 올라와 오라고 하셨단다. 그동안 너무 많은 여행 이야기를 들었기에 순간 '이렇게 학교에 구경 오는 사람들에게 기부금을 내달라고 부르는구나.’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걱정스레 얇은 지갑을 매만지며 계단을 올랐다.





앞장섰던 선생님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답답한 교장실이 아니라 한 교실이었다.

음악 소리가 새 나오는 문을 여니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꼬마 신사 숙녀들!

그리고 그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어머니들과 선생님들!

그래 오늘은 학예회 날이었구나. 그래서 아래 아이들이 그렇게 열심히 연습하고 있던 거구나.

그제야 얇은 지갑에서 손을 뗄 수가 있었다. 한가운데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계시던 선생님은 내게 악수를 하고 의자 하나를 내어주신다. 그렇게 선생님들 사이에서 아이들을 구경하다가 양해를 구하고 슬며시 나와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논다.





곱게 타나카를 바른 아이, 엄마 화장품 빌려 예쁘게 화장한 아이, 머리에 힘 좀 준 아이들!

아이들 한 명 한 명 안 예쁜 아이들이 없다. 그중에서 한 꼬마가 유독 너무 귀엽고 예뻐서 결국 가방 속에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냈다.

하지만 이건 커다란 실수의 시작이었다.

사진을 몰래 찍어 주고 ‘쉿!’ 소리를 내며 아이에게 ‘비밀이야’라고 이야기했지만 나를 계속해서 관찰하던 수많은 아이들의 눈을 피하지 못했고 할머니가 손녀를 손에 잡고 한 장만, 아주머니가 딸과 함께 한 장만 찍어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리고 그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그날 가방에 있던 필름을 모두 써버리고 만다.

결국, 엄마 손을 잡고 있지 않았던 아이들이 사진을 받은 아이들을 부럽게 쳐다보게 만들어 버렸다.


편애가 가득했던 국민학교 저학년 교실에서 그렇게 예쁨을 받는 아이가 아니었기에 매일매일 누군가를 부럽게 쳐다보았다. 그래서 빈손의 아이들이 사진을 쥔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그저 아이들에게 다가가 미안하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이미 돌이 킬 수 없는 일.

결국 누군가에게 느끼지 않아도 될 아쉬움을 쥐어주었지만 학예회 때 사진 한 장 찍지 못했을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아이들에게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 주지 않았을까 하며 애써 위로했다.









오래전 여행을 하고 몇 년 동안 글을 쓰고 사진을 다듬고 몇 해 전 책을 만들었습니다.

브런치에 새로운 글을 쓰기 전에 책에 실은 글 중 좋아하는 글, 편집 과정 중 빠진 글, 사진이나 그림을 더 보여주고 싶었던 페이지를 중심으로 다시 올려보려 합니다.

책을 봐주신 분들께는 다시 여행을 떠올리는 계기로, 아직 본적이 없으신 분께는 답답한 일상에서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Instgram: @310.park

매거진의 이전글 이게 당신의 비엔티안이에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