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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열 Sep 04. 2020

그림을 그리면서 여행하면 어때?


“그림 그리면서 여행하면 어때?”

“좋지.”

“응 좋을 거 같긴 한데 그냥 이야기가 듣고 싶어. 어떻게 좋았는지.”

“음 그러니까, 친구를 만들기가 좋았어.”

“하긴 이렇게 그림 그려주면 쉽게 친해지겠다.”


“사실 쉽게 친해져서 좋았다기보다 못 친해졌을 사람들이랑 친해졌던 게 좋았지. 방금 내가 네 얼굴 안 그려줬어도 우리는 어쩌면 내일쯤 친해졌을지도 몰라. 밥을 같이 먹었을지도 아니면 시간이 우연히 맞아서 같이 외출했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너랑은 그림이 아니었어도 친해졌을 거야. 그런데 그림 아니었더라면 잠깐이라도 못 어울렸을 사람들이 있거든, 길거리 꼬마라든지 잡상인이라든지, 그냥 스쳐 지나갔을 사람이라든지.”


“잡상인?”


“응, 인도에서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자꾸 사람들이 아무도 안 살 거 같은 작은북을 들고 와서 사라는 거야. 그 사람들한테 아무리 싫다고 이야기해도 다른 사람들이 오고 또 오고… 안 되겠다 싶어서 한 명을 앉혀서 얼굴을 그려줬어. 뭐 얼굴 그려주고 말 몇 마디 하면서 친해지면 이제 그만 사라고 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주변에 있던 인도 사람들 엄청 모였겠는데?”


“맞아 맞아. 주변에 북 팔던 사람들이 다 모였어. 자기들도 그려달라고. 그래서 이야기를 했지. 짜이 두 잔을 사 오면 그려주겠다고. 그랬더니 한 녀석이 내 앞에 앉더니 그림 먼저 그려달라는 거야. 그래서 속는 셈 치고 먼저 그림을 그렸어. 당연히 도망가거나 발 뺌 할 줄 알았고 꼭 받을 생각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림을 다 그리니까 진짜 나를 짜이 집으로 데려가는 거야. 그리고 짜이 두 잔을 주문했지.”


“오히려 인도 애들한테 뭔가 팔았네. 난 당하고만 온 거 같은데.”


“하하 그러게 말이야. 아무튼 짜이가 나오고 나서 ‘한잔은 네 잔 한잔은 내 잔’이라 하니 사준 친구가 웃으면서 고맙다는 거야. 양이 적어서 두 잔 사달라고 한 줄 알았다면서. 우리는 같이 짜이를 한 잔씩 나눠 마시면서 어찌나 웃으면서 이야기했는지 몰라. 제대로 말도 안 통하면서.
그러고 돌아왔는데 세상에나, 몰려 있던 사람들이 그대로 있는 거야. 이번엔 자기 차례라고, 자기도 짜이 사 오면 되냐면서. 그래서 난 ‘담배 두 개비!’라고 했지. 그랬더니 얼른 개비 담배 두 개를 사 와 내 앞에 앉더라. 나는 아까처럼 받은 담배 중 하나를 다시 돌려주고 이건 네 거라 했지. 그리고 그 녀석이 담배를 문 모습을 나도 담배를 물고 그렸어. 이렇게 해가 질 때 가지 같이 짜이를 나눠 마시고 담배를 나눠 피면서 그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어. 웃고 떠들고 장난치면서.

그냥 이런 시간들이 좋았어.  그림을 그리지 않았더라면 스쳐 지나갔을 사람들과 웃고 떠들던 시간 말이야. 

그래서 자꾸 그림을 그렸나 봐. 사람 얼굴을, 벽화를, 그리고 거리 풍경을."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누구든지 꼭 한 사람은 말을 걸었거든."





오래전 여행을 하고 몇 년 동안 글을 쓰고 사진을 다듬고 몇 해 전 책을 만들었습니다.

브런치에 새로운 글을 쓰기 전에 책에 실은 글 중 좋아하는 글, 편집 과정 중 빠진 글, 사진이나 그림을 더 보여주고 싶었던 페이지를 중심으로 다시 올려보려 합니다.

책을 봐주신 분들께는 다시 여행을 떠올리는 계기로, 아직 본적이 없으신 분께는 답답한 일상에서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Instgram: @310.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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