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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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첫 영화. 우연히 플레이리스트 속 있던 ‘Waters of March’를 듣고 이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졌다. 이 영화가 ‘3월’이라는 계절적 특징을 갖고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왠지 지금과 참 잘 어울리는 영화인 것 같다. 처음 이 영화를 보았던 2022년 10월 즈음의 강남 아트나인으로부터 약 2년 반 정도가 지났고, 나의 몸은 군대에 묶여있다. 그 사이 많은 여행을 다녀왔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즉, 이 영화를 처음 봤던 20살의 나로부터 많은 외부요인이 더해졌으며, 이 영화를 보는 시각도 충분히 달라질만하다는 얘기다.
영화에 대한 단편적인 감상을 이야기해 보자면, 우선 사운드트랙의 유기성이 굉장히 좋은 영화. 그리고 오슬로라는 도시가 참 매력적이고 모던하게 다가오는 영화. 감각적인 영화. 엔딩신이 정말 좋은 영화. 뭐랄까, 청춘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가장 현대적이고 사실적인 누군가의 20대를 묘사한 영화. 지저분할지라도 용감한 영화.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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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주인공 율리에의 20대를 관통한다. 그녀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과, 그 시기에 그녀가 만난 연인들과의 사랑이 이 영화의 주된 테마다. 대학 시절의 풋사랑, 정신과 수업의 교수, 스킨헤드 모델, 문제적 농담을 그리는 만화 작가, 파티에서 만난 바리스타까지. 결론적으로 그녀는 누구와도 끝까지 맺어지지 않지만, 그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녀는 여느 청춘처럼 끊임없이 사랑을 탐닉하는 존재다. 그녀는 익숙해진 사랑에 만족하지 않고 여러 번 낯선 환경에 정착하기를 선택한다. 그것은 이미 익숙해진 사랑이 주는 안정성을 끊임없이 회피하려는 모습으로도 보인다. 즉 그녀는 거대한 자아를 만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움직여야 하는 사람이다.
영화의 초반부, 율리에가 의대에 진학한 이유도 그 학문 자체에 대한 열망이 아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학이 자신의 갈증을 풀어줄 수 없다고 생각한 율리에는 정신의학을 배우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만족을 얻지 못했고, 이번엔 사진에 열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어떤 때는 글을 쓰기도 한다. 악셀의 출판을 축하하는 파티에서 누군가 그녀에게 무얼 하냐고 묻자, 그녀는 '서점에서 일한다'라고 답한다. 그녀는 떳떳하게 자신이 '글 쓰는 사람' 혹은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지 못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질문을 한 여자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금방 자리를 옮겨버린다. 인기 만화작가의 애인치고는 평범한 직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녀는 스스로 '완성된 무언가'이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것이 되어가는 무언가'일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자주 침전한다. 그것이 관객이 오프닝에서 마주한 율리에의 첫 모습이다. 율리에는 위층 발코니에서 많은 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악셀을 올려다본다. 그녀의 내면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저 '평범한 서점 직원'에 불과하다는 현실은 이상에서 그녀를 떨어뜨려 놓는다.
앞서 말했듯이 율리에는 예술을 하고픈, 원하는 게 많은 사람이다. 악셀과 헤어지고 만난 애인인 에이빈드와 말싸움을 할 때 율리에는 이렇게 말한다. "넌 평생 커피나 나르는 걸 원하겠지만, 난 더 많은 걸 원해! 평생 서점에서 일이나 하기는 싫다고!" 익숙해진 사랑에 권태를 느끼는 것은 계속해서 새로운 갈증을 느끼는 것과 같다. 그녀는 매번 관심사를 옮기게 될 때마다 열성적으로 다가간다. 그게 하늘이 정해준 일인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는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반대로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수많은 사랑을 탐닉하는 율리에지만, 삶의 단계를 거칠 때마다 남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불가능한 사랑'이라는 가능성이다. 그녀는 사랑의 불완전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완전한 사랑'을 갈망한다. 연인관계나 커리어에서도 계속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 하는 모습은(새로운 사람을 만난다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현재의 불가능성을 깨닫고 새로운 단계에서 가능성을 찾기 위함이다.
그러던 중 그녀를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두 가지 장애물이 나타난다. 하나는 율리에의 임신이다. 그녀와 에이빈드는 둘 다 아이를 가지지 않길 원했지만, 뜻하지 않게 임신 사실을 알아버린다. 또 하나는 전 애인 악셀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이다. 예상하지 못한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자, 그녀는 더 혼란스러워진다. 에이빈드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권태로움과 유일하게 그녀를 자극해 준 악셀이라는 존재의 상실에 빠진 그녀는 병원에 입원한 악셀을 찾아가 "예전에 했던 말 다시 해줄 수 있어? 내가 좋은 엄마가 될 거라는 말"이라고 묻는다. 그녀가 악셀에게 그 말을 다시 듣고 싶었던 건 스스로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인 동시에, 처음으로 그녀가 자신 앞에 주어진 현실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려는 시도였다. 여태껏 그녀는 자유롭게만 살아왔다. 계속해서 새로운 사랑과 자극을 추구하면서 말이다. 그런 그녀에게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자신을 포기한다는 사실과도 다를 바가 없었다. 악셀은 율리에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와 있을 때, 네가 얼마나 멋있는 사람인지 알려주지 못한 게 아쉬워” 지금까지 율리에가 필요로 했던 건 그 한마디였다. 자신을 믿어주는 가장 가까운 사람의 증언. 악셀이 율리에의 글을 칭찬했을 때 날뛰듯 좋아하던 모습은 그런 필요로부터 비롯된 것만 같았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뿌리를 내리도록 도와줄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사랑의 양면성을 과감하게 보여준다. 사랑은 그 자체로 완전하면서도 불완전하고, 때론 지저분하지만 순수하기도 하다. 이 영화의 예술관, 그리고 사랑에 대한 가치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은 악셀의 TV 인터뷰 장면이다. 인터뷰어는 악셀의 만화가 성차별적이고 문제적이라며 그것을 예술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에 악셀은 열변을 토하며 그가 생각하는 예술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가 생각하는 예술은 더럽고, 부끄럽고,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고, 금기시되는 것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겁니다. 그게 예술의 이유입니다.” 마치 이 영화의 예술관을 종합해 놓은 듯한 이 장면을 보면 영화의 매력이 예술과 사랑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인 '솔직할 수 있는 용기'에서 나온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망설임 없이 현대의 오슬로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최악’의 순간들을 풀어낸다. 그들의 트라우마, 터부시되는 젊은이들의 문화, 연인 관계에서 공유되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들, 연인 사이에 일어나는 현실적인 다툼과 이별. 친구들에게조차도 말 못 할 부끄러운 부분들도 율리에라면, 혹은 악셀과 에이빈드라면 공유하고 싶어진다. 율리에와 에이빈드는 서로를 처음 만난 파티에서 금세 비밀스러운 이야기까지 나누게 된다. 처음에는 가벼운 얘기로 시작해, 서로 부끄러워할 만할 부분을 건드린다. 들키고 싶지 않은 서로의 채취를 맡아본다거나, 소변을 누는 모습을 옆에서 뚫어져라 쳐다보기도 하고, 말 못 할 성적 취향을 공유하기까지 한다. (이후의 이야기이지만) 율리에와 에이빈드 모두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결핍이 있다는 공통점도 발견하게 된다. 가장 내밀한 부분까지 건들어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이런 모습은 오히려 그들에게 즐거움인 듯 보인다. 인물들은 서로의 취향과 결핍을 발견해 가며 가장 솔직한 상대방을 통해 가장 자신다운 모습을 발견한다.
이제 에필로그로 돌아가 보자. 한 여배우가 테이블에 앉아 형편없는 연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율리에는 카메라 뒤에서, 또 다른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역할을 기다리고 있다. 컷, 그리고 율리에는 여배우를 찍는 포토그래퍼로 등장한다. 시간이 꽤 흘렀고, 그녀는 창밖으로 가족을 이룬 에이빈드를 발견한다. 그녀의 시선은 내 것이 되지 못한 미래에 대한 아쉬움이 아닌 자신의 것이 아닌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녀의 미래는 따로, 이곳에 존재하는 것뿐이다. 그녀가 우려했던 두 가지 중 하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악셀은 곁을 떠났지만 결국 아이가 생기진 않았다. 그녀와 에이빈드는 권태로움을 이유로 헤어졌을 것이고, 몇 년이 흘러 각자 인생의 새로운 단계를 맞이했을 것이다. 겨울 동안에 쌓인 눈이 3월의 햇살을 맞으며 녹아내리듯이, 어떤 일들은 굳이 해결하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흘러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이구나’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면 된다. 그녀는 영원히 자신이 원하는 완전한 사랑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계속 시도할 것이다. 적어도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늦은 3월의 눈이 물로 흘러 봄이 시작되는 것처럼, 율리에의 삶도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를 찾아 나갈 것이다. 완벽한 사랑이 불가능함을 알더라도, 사랑을 그만둘 사람이 어디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