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의 인상적인 문장들
서울 중심지에서는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월급쟁이들의 그 엇비슷한 복장 때문에 그 여자는 잠깐 그들과 자기 남편을 혼동하였던 것일까? 그리고 그들 중의 하나는, 친구의 구토를 진정시켜 보겠다는 진심에서가 아니라 오직 그러는 것이 재미있기 때문에 주먹으로 친구의 등을 내리치며 낄낄대고 있고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깨끗한 옷차림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의식이 없는 깡패들처럼 욕설을 지껄이고 있음이 그 여자는 미웠고 그 미움은 곧 자기 남편에게로 도려진 것이 아닐까? 저렇게 유치하게 굴 수 있는 자들이야말로, 같은 직장에 자기 아내를 숨겨두고도 무표정한 얼굴을 잘도 꾸밀 수 있는 게 아닐까? - 「야행」 中
자아는 더 이상 동경과 찬사의 대상이 아니다, 차라리 냉소와 조롱의 대상이다. 이런 자아에 대한 경험은 바로 미성년이 성장을 통해 성인의 세계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세계의 본질과 이면을 직시하게 되는 것과 동계를 이룬다. 세계가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오히려 자아의 발견이 아닌 자아의 거부에 이르게 되고, 세계와의 통합이 아닌 불화를 통해 세계로의 귀환에 실패하는 반성장소설적 성장소설을 이루기 때문이다.
성장에서 환멸의 체험은 필수이다. 「염소는 힘이 세다」에서 12살짜리 힘없는 소년 가장인 ‘나’에게 강한 남성성에 대한 욕망과 그 좌절은 ‘나’를 성인의 세계로 진입하게 한다. … 사실 20세기 후반의 모든 성장소설에서는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처럼 성장 없는 성장이나 성장할 수 없는 성장을 문제 삼는 반성장소설이 주류를 이룬다. 세계의 악무한적 폭력성은 중대된 반면 개인의 저항은 그만큼 더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 김승옥은 그만큼 신랄하다.
「무진기행」은 … ‘귀향’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 ‘귀경’ 소설이다. 온갖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고향의 품으로 돌아가는 유토피아 소설이 아니라,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세계를 인정하는 역유토피아 소설인 것이다. … 따라서 흔히 오해되듯이 서울과 무진은 도시와 시골로서 서로 대립하는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유사한 의미를 제공하는 공간에 더 가깝다. … 어느 곳에서도 ‘나’는 ‘나’를 상실할 위기에 처해있다.
「서울의 달빛 0장」에서 더 첨예화되고 있지만, 김승옥 소설 대부분에서 여자는 더럽고 남자는 부끄럽다. 여자를 더럽게 만들어서 남자들이 더 부끄러움을 느끼는 듯도 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무리 더러움이나 부끄러움을 유발한다고 해도 근대를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김승옥 소설에서는 낭만화되고 이상화된 자연이나 원시 상태에 대한 동경, 즉 전근대적 사회로의 회귀 욕망이나 향수가 전무하다. 근대의 ‘밖’이 아닌 그 ‘안’에서 근대를 문제 삼음으로써 근대를 내부자의 시선에서 근대적으로 규명하는 진정한 근대의 시선이 가능해진 것이 바로 김승옥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승옥에게 근대는 피를 빨리우면서도 행복한 미소를 건넬 수밖에 없는 드라큘라적인 괴물에 가깝게 된다.
옆방 형에게 빌렸던 무진기행을 거의 두 달여 만에 완독 했다. 바쁘다는 핑계가 있었지만 사실 마지막에 가서는 짧은 단편 두 편을 남겨두고 지지부진하게 속도가 나지 않아 2~3주는 그렇게 방치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왠지 스산하게 흐린 날이면 안개 낀 무진의 풍경이 떠올라 남은 소설을 읽어야만 할 것 같았고, 그렇게 하고 싶었다. 마음 속에 자꾸만 피어오르는 무진의 안개처럼, 읽을 때보다 읽고 난 다음 몰려오는 감상이 더 많은 소설이었다.
슬픈 도회의 어법. 김승옥의 소설에 담겨있는 근대성은 너무나도 탁월해서 씁쓸하다. 소설을 다 읽기 전까지는 그것들이 성장 소설이라고 생각해 보지 못했다. 오히려 성장이 가로막히는 반성장소설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다 읽고 나서는 한 번 꺾이고 나서도 다시 더듬더듬 갈 길을 찾아가는 '반성장적 성장소설'이야말로 가장 잘 쓰인 성장 소설이 아닐까 싶다. 영화에서도 더 오랫동안 남는 것은 평탄한 성장이 아닌 울퉁불퉁 깎이고 깎여진 성장이다. 지금 생각나는 것들은 이를 테면 제임스 그레이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아마겟돈 타임>이나, 기타노 다케시의 씁쓸한 유머가 담긴 <키즈 리턴> 같은 성장 영화들이다.
여러 단편의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염소는 힘이 세다」의 소년은 가정의 유일한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약하고 어린 몸으로는 그의 집을 찾아오는 더러운 아저씨들과 누이의 손을 잡아 끄는 아저씨를 막을 만한 힘도, 권력도 없다. 그렇기에 소년은 염소를 바라보며, 죽어서도 집을 먹여 살리는 그 힘을 동경해하고 그 현실을 슬퍼한다. 소년은 그의 누이를 ‘더럽다’고 표현하면서 현실에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고 불화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세상과의 불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저항을 포기하고 동화됨으로써 그 불화 자체로 세상과 타협기에 이른다. 김승옥의 소설을 읽으면 그가 서울을 바라보는 냉소적 태도가 느껴진다. 지저분한 현실과 거기에 타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를 유머로 만들어 비웃는다.
그의 소설에 담긴 60년대 혹은 70년대는 세련된 동시에 부패하고 지저분해서 지금의 서울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서울의 달빛 0장」에 담긴 서울의 밤거리 풍경을 보면 거의 50년의 틈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도회적이다. 그러나 한결 같이 그 서울 속 인물들의 모습은 비참하다. 어두운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약탈과 싸움, 강간, 섹스, 애수는 그 자체로 근대적이어서 아프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