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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은 선물 Sep 09. 2022

책을 읽어가며 진정한 선생님이 되어가고 있다

책으로 내 우주를 만들어가는 중~

 얼마 전 카페에서 만나 고등학교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업으로 학교에 다니던 것 같은데, 요즘 넌 아이들을 진짜 좋아하고 가르치는 일을 즐기는 것 같다.”


 또 헬스장에서 만나 계모임을 8년째 하고 있는 동네 언니는 또 이런 말을 했다. “옥이는 천생 선생님이야. 애들이 자기 만나서 엄청나게 좋아하지?”


작년에 교내 장학(학교 선생님들끼리 하는 수업 공개)을 했을 때 수업에 참관하신 교감 선생님은 말했다.

 “옥이 샘은 학교에 힐링하러 오는 거죠? 아이들하고 너무 재미있게 수업을 하네.”


올해 공개수업 전날에 작년에 교감 선생님과 함께 수업을 참관했던 교장 선생님은 작년에 수업 재미있게 하는 것 봤다면서 덧붙였다. “이미지와 딴판이던데……. 애들과 친구처럼 잘 지내구. 올해는 공개수업은 안 들어갈게요. 안 봐도 잘하실 테니까”     


  5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교과수업을 열심히 가르치고 한 아이라도 부진에서 구제하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학습지도 많이 만들고 가르치는 내용이 시간마다 차고 넘쳤다. 쉬는 시간까지 가르치려고 아이들 마음을 상하게 했다. 아이들이 소화를 시켰는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매 차시 또 다른 내용을 또 가르치고 열심히 훈육하는 데 열을 올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잔소리를 퍼붓곤 했다. 성녀 샘의 표현에 의하면 새 옷을 사입히고 또 그 위에 새 옷을 또 입히고 또 멋진 새 옷을 입혀서 그 무게에 짓눌려 걷지 못하고 뒤뚱거리게 했었다. 생각만 해도 너무 많은 것을 가르치기만 한 시간이었다. 배움이 일어나는지는 생각하지 못한 채.


그러나, 경제 서적, 자기계발서, 교육학, 철학서, 시 등 인문학 등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읽어가면서 내 생각은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 갔고, 특히 『생각의 탄생』은 나의 교육관을 송두리째 바꾸는 역할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아이들의 생각을 막는 일방적인 수업을 했는 지 깨달아 부끄러웠다.


 한국 지성인이 뽑은 1위의 책(어느 기준인지는 모름), 『생각의 탄생』은 각 장을 PPT로 만들어 수업에 활용하기도 했는데, 교육대, 사범대에서 이 책을 필독 교양교재로 교수님들이 다루어 예비교사들의 생각을 탄생시켰으면 좋겠다는 동료들에게 주장할 정도였다. 모든 교대 교수님들을 비하할 생각은 없지만 내가 다녔던 대학에서는 좋은 책을 추천해주었던 교수님들이 당시에는 없었다. 대학생활 내내 사회과학에 심취하여 학생회 활동에 앞장섰던 내가 교수님들의 추천이 있었다 해도 읽었을 리는 난무하지만, 내 친구 모범생 예비교사들은 분명 읽고 깨달았을 것이다.  


  내가 몇 년 전보다 더 재미있게 수업을 하고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내게 된 것은 순전히 내가 읽은 수많은 책 덕분이다. 책들은 내게 장인정신으로 매 수업을 ‘신이 나를 보고 있듯이’ 열심히 할 것을 주문했고, 더 많은 이야깃 거리로 쉽게 가르칠 수 있는 수업의 재료들을 주었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코로나로 자가 격리되어 일주일 동안 학교도 출근 못 하고 있었는데 금요일에 3반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언니, 쉬시는 데 알려야 할 일이 있어요. 1학기에 위기관리 학생으로 회의했던 **이가 새로 2학기 임원이 된 아이보고 공약을 지키지 않는다면서 괜히 뽑았다고 해서 2학기 여자 부회장이 울었어요. 그런데 **이가 시간강사님에게 따박따박 대들고 엄마에게 전화해서 오셨는데 울고 난리가 났어요. 엄마가 다행히도 바로 오셔서 달래서 갔으니 걱정은 하지 마세요. 일단 알고 계시라고요.”

어제오늘 **이와 깡마른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전화해서 좀 마음이 가라앉았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데, 딱히 할 수 있는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글쓰기를 잘하고 싶어서 타자로 필사하는 책 『뼛 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135쪽을 치던 중 **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꼭 알맞은 말이 내게 왔다.


  ‘내 가까운 친구 한 명이 최근에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다. 그는 사고 전날 밤 한 숨도 못 자고 아침 일찍 매사추세츠로 장거리 여행을 떠났다가 가수면 상태에서 시속 85마일의 속도로 자동차를 들이받고 말았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오토바이는 완전히 박살이 났지만, 그는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심장이 멎는 줄만 알았다. 만약 그가 사고로 죽었다면 내 인생마저 흔들렸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물망처럼 얽혀서 서로의 우주를 창조해내고 있다. 누군가 제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 사람은 살아남은 다른 사람들에게 슬픈 파장을 남기게 된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며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이 지구를 위해, 텍사스를 위해, 지난밤 우리의 끼니를 위해 생명을 바친 병아리를 위해, 각자의 어머니를 위해, 고속도로와 나무들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친절하게 대할 책임이 있다. 먼저 자신에게 친절할 때에만 세상을 친절하게 대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몸을 소홀하게 생각하는 **이에게 우리가 사는 이유를 “지난 밤 우리의 끼니를 위해 생명을 받친 병아리를 위해, 우리의 어머니를 위해, 나무와 꽃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내일은 학교에 가면 **이에게 말해주며 꼭 껴안아 주고 싶다. “그러면 안 돼!”라는 말 대신.      


 지난주에 사서 읽고 있는 시집, 류시화,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의 서문도

 아이에게 써 주고 싶다.      


“살아있는 것들을 보라.

사랑하라.

놓지 마라.”

            -더글러스 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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