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으로서의 삶은 나에게 무엇이든 통제받는 삶을 강요했다. 퇴근 후에도 위수지역을 벗어나지 못했고, 주말에 마음 편히 어디론가 떠나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 길은 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기에, 그 속에서의 제약들은 크게 불만스럽지 않았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핸드폰은 항상 나의 그림자처럼 내 곁에 있어야 했고, 언제 어디서 전화가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끊임없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마치 전쟁터에 있는 병사처럼 본능적으로 긴장했고, 통화 상대를 확인한 후에야 겨우 마음이 놓였다. 어릴 적부터 자신의 꿈이 분명했다면, 아마도 나는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향해 조금 더 빠르게 나아갔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부터 나는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야 했다. 늘 남의 눈치를 보며 정신없이 지내야 했고, 고모나 이모의 손에서 자랐다. 그 속에서 내가 지켜야 할 유일한 사람은 내 동생뿐이었다. 그래서 먹고 싶은 것이나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사달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마치 깊은 물 속에 홀로 잠겨 있는 것처럼, 친자식이 아니라는 생각이 나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나는 그저 주어지는 대로 먹고 입으며 학교를 다녔다.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난 후, 아버지의 출근 시간에 맞춰 나 역시 마치 기계처럼 초등학교로 향해야 했다. 매일 아침 7시 전에 혼자 집을 나서 길을 걸어가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정문은 생각보다 일찍 열리지 않았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찬 바람 속에서 경비 아저씨가 오기를 마냥 기다리곤 했다. 그 순간들은 마치 세상이 아직 깨어나지 않은 시간 속에 혼자 던져진 기분이었다.
어릴 때는 그것이 일상의 일부로 여겨졌지만, 이제 돌아보면 '굳이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아버지의 출근 시간에 맞춰 학교에 갈 필요는 없었다. 희미한 기억 속에서도, 늦게 가고 싶다고 말했더라면 아버지는 분명 귀 기울여 주셨을 것이다. 매일 먼저 가서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불편함을 감내한 이유는, 그저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말할 수 없었다. 소심한 성격과 왜소한 체격, 그리고 내성적인 성향이 겹쳐, 마치 겨울 나무처럼 스스로를 꽁꽁 싸매고 견뎌냈다. 조기에 찾아온 성숙함이 내 내면의 힘듦을 숨기는 데 일조했다.
어느새 나는 마음의 문을 단단히 걸어잠갔다. 친구들과 있을 때는 마치 여름 바람처럼 활발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지만, 집의 문턱을 넘는 순간 가을 들판처럼 쓸쓸하고 무뚝뚝한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부모님은 내가 학교에서도 무뚝뚝한 아이일 것이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집에서의 나와 사회에서의 나는 마치 서로 다른 두 얼굴을 가진 사람처럼 완전히 달랐다. 내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던 시절이 길었고, 그로 인해 내 마음의 문은 늘 굳게 닫혀 있었다.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며 남의 눈치를 보며 자란 어린 시절은, 마치 찬 바람에 시들어버린 꽃처럼 내 안에 원하는 것들을 숨기게 만들었다. 그 영향으로,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있어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성향은 성인이 된 후에도 내 삶에 깊게 뿌리내렸다. 원하지 않는 것들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있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마치 거친 파도 속에서 나아갈 방향을 잃은 배처럼 휘둘렸다. 어릴 때는 그저 당연한 일로 여겼다. 세상은 모두가 원하는 것을 뒤로하고, 마지못해 경제적 생계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다른 시선을 갖게 되었다.
‘왜 나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걸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내 마음 속에서 잠들어 있던 용기를 깨웠다. 이제는 더 이상 타협하지 않기로, 나만의 길을 걸으며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움츠러든 나를 깨우는 순간이 마치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하면서,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대표님, 작가님, 크리에이터, 인플루언서 등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마치 내 세계가 넓은 바다로 뻗어나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확장되었다. 만약 내가 이 결심을 하지 않았다면, 평생 좁은 강둑에 갇혀 그 넓은 바다의 존재조차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갔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거나, 직장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그 자체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경제적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고, 노동은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그 시간을 통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남다른 편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큐가 높거나 공부를 잘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하나의 장난감으로도 몇 시간씩 몰입하며 놀곤 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작은 파란색 토끼 인형과 곰돌이 푸에 나오는 호랑이 인형이었다. 그 시간만큼은 마치 나를 마법 같은 상상의 세계로 안내하는 열쇠였다. 매일 같은 장난감들이었지만, 그 순간들은 늘 새로운 모험을 만들어냈고, 혼자서도 충분히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의 그 작은 인형들은, 내가 꿈꾸는 세계로 나를 데려가는 문이 되어주었다.
이런 상상력과 창의력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나는 상상이나 영감이 떠오르면, 일단 시도해보는 사람이 되었다. '퇴사를 하면 내 삶이 정말 무너질까? 아니면, 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걸까?'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마치 누군가가 내 인생의 한계를 미리 정해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지금의 생활이 평생 유지될 수 있을까?' 나이는 점점 들어가고, 능력은 점차 희미해져 간다는 불안감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왜 나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는 걸까? 어떤 이유로 그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걸까?‘
이 질문들을 마주하고 나니, 마치 안개 속에서 길을 찾는 것처럼 답이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일을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것은 불안감이었다. 그 불안은 마치 그림자처럼 나를 뒤따랐고,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와 불안정한 직업에 대한 두려움, 그게 전부였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시작된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종종 지금껏 해오던 것만이 유일한 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는 세계는 내가 스스로 결정한 틀 안에 갇혀버린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다. 그것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 적이 없거나, 그저 추상적인 개념 속에서만 답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행복한 삶",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어떤 일을 할 때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지, 무엇을 통해 경제적 성과를 이룰 것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도 그랬다. 그러나 인생은 끝없이 펼쳐지는 빈 페이지 위에 쓰여지는 이야기와 같다. 어디서 끝을 맺고, 어디서 새로운 시작을 할지는 오로지 내가 쥐고 있는 펜에 달려 있다.
내 스토리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며 노후를 맞이할지, 아니면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새로운 길을 열어갈지, 오로지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스스로의 삶에 집중하지 않으면, 마치 항해사를 잃은 배처럼 남의 삶에 휘둘리기 마련이다.
더 좋은 직업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친구들을 보면 마치 내 배는 고요한 항구에만 머물러 있는 것처럼 초라해 보이고, 부러움이 스멀스멀 올라오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기에, 그런 비교는 더 이상 나를 옭아매지 않는다. 나는 내 바다 위에서 내 항로를 그려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두려움 때문에 미루곤 한다. 그러나 진정한 성공은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데서 온다. - 제임스 클리어
나에게도 두려움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새로운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마치 깊고 어두운 바다를 홀로 항해하는 것처럼, 나에게 엄청난 공포로 다가왔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무엇을 정말로 두려워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만이, 비로소 그 두려움을 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역시 지금의 삶에서 어려움과 피로, 고통이 찾아오더라도 긍정적인 생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무엇보다 ‘이건 내가 선택한 일이니까’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모든 두려움과 불안감은 마치 바람에 날려가는 먼지처럼 사라진다.
만약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똑같은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면, 차라리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며 그 두려움과 마주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선택한 지금, 그 생각이 얼마나 옳았는지 절실히 느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나 역시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 사실을 인식하기까지 무려 3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누군가는 내가 그 답을 빠르게 찾았다고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너무 늦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삶의 기준으로 보자면, 오히려 나는 적절한 때에 내 길을 찾았다고 믿는다. 마치 긴 어둠 속에서 마침내 내 앞을 밝혀주는 빛을 발견한 것처럼.
만약 내가 여전히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살아가고 있었다면, 아마도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속에 갇혀 살고 있었을 것이다. 원하는 삶은 마치 길 없는 숲 속에서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 길을 걷지 않는 한,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결코 알 수 없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 누구도 나를 내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주지 않는다. 계속해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대개 상황이 더 좋아지면 원하는 일을 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이상적인 순간은 마치 신기루처럼 영원히 다가오지 않는다. 혹여 그런 기회가 찾아온다 하더라도, 이미 그때는 원하는 일을 시작할 수 없는 환경일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결국, 스스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 길은 아무도 대신 걸어줄 수 없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른다. 내가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마치 강물처럼 쏜살같이 흘러가고 만다. 하루는 길게 느껴지지만, 1년은 어느새 짧게 스쳐가는 순간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첫 단계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다.
목표가 없는 사람은 바람에 맡겨 떠다니는 돛단배와 같다. 그저 바람이 부는 대로 흘러갈 뿐,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러나 명확한 목표가 있는 사람은, 비록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도 노를 꽉 움켜쥐고 그 반대 방향으로 힘차게 나아간다. 바람의 방향을 바꿀 수 없지만, 나의 손에 쥔 노는 내 길을 결정할 수 있다.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할 줄 알아야 한다. 만약 내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사회적 비난, 주변인의 시선, 그리고 경제적 불안을 이겨내지 못했다면,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한 첫 발걸음조차 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두려움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지금 나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조언과 충고를 해줘도, 자신의 삶을 가장 잘 이해하고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이다.
내 선택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많이 개입될수록, 그 선택이 실패할 때 느낄 후회 또한 더욱 커질 것이다. 목표를 세우고 두려움에 맞서는 순간, 마치 무거운 철문이 열리듯 내가 원하는 삶으로 가는 첫 번째 문이 비로소 열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