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과 불편은 서로 다른 별자리에 빛나는 두 개의 별과 같다. 불가능은 사막의 끝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오아시스와 같이, 존재 자체가 없음을 의미한다.
반면, 불편은 겨울 바다로 항해하는 동안 만나는 거친 파도와 같이, 통과해야 할 험난한 과정일 뿐이다. 나도 과거에는 이 거친 파도를 넘지 못할 것처럼 느껴진 불편함을 종종 불가능의 벽으로 잘못 여겼다.
사실,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나는 상황과 환경을 핑계 삼아 스스로 합리화하며 포기했다. 마치 자신이 만든 어두운 숲 속에 길을 잃은 것처럼, 불가능한 환경을 스스로 조성해놓고는, 할 수 없다고 믿으며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나 자신을 위로했다.
첫 책을 집필하던 시기에 나는 직업 군인으로서 일반인들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았다. 매일 원고를 작성해야 했지만, 긴 훈련이나 예상치 못한 사정으로 인해 작업은 계속해서 밀려나기만 했다. 이러한 직업의 특성상 양보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았다.
어느 날, 긴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지친 몸을 이끌며 생각에 잠겼다.
‘오늘 원고를 작성해야 하는데 너무 늦게 퇴근했네... 오늘은 못 적겠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번개가 치듯 깨달음이 찾아왔다.
‘정말 못하는 걸까? 아니면 할 수 있는데 내가 못한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걸까?’ 깊이 고민해 보니, 후자였다. 조금은 힘들고 피곤할지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약간의 무리가 따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치 안개가 걷히듯 명료해졌다.
‘아, 이건 그저 불편한 거지,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어. 그런데 왜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
그 후로, 내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상황들을 하나씩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예상외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운동을 건너뛴 일, 늦게 퇴근했다는 이유로 해야 할 일을 미루고 휴식을 취한 일들. 그뿐만 아니라 그런 상황들을 스스로 만들어내며, 자신을 속였던 것이다. 그러니 내 삶에서 진정한 발전이 있을 리 없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내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이제 내게 불가능한 상황은 없다. 혹시 그런 상황이 닥치더라도 반드시 해결책을 찾겠다고 결심했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며, 지금까지도 그 다짐을 지키고 있다. 불편한 선택이 나를 성장시키는 계단이 되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편안함을 선택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알고 있다.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결정이 나를 성장으로 이끄는 엔진이라는 것을.
매일 편안함을 택하는 것은 폭풍의 눈에서 안식을 찾는 것과 같다. 평온해 보이지만 결국 더 큰 혼란으로 이어진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독서하기, 글쓰기와 같은 행동들을 실천할 때, 그것은 마치 화산이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내 삶에 역동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처음에는 표면 아래의 변화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지만, 이 작은 습관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궁극적으로 내 삶의 지형을 재구성하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
독서, 글쓰기, 운동과 같은 활동들은 마치 날카로운 바위를 굴러가며 나아가는 물과 같은 불편한 선택이다. 굳이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은 없지만, 우리는 모두 더 높은 산맥을 넘어 더 푸른 평원을 꿈꾸며 살고자 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깊은 골짜기의 어려움을 피하려고 한다. 내가 이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삶의 강이 더 깊고 넓은 바다로 흘러갈 수 있다고 믿었다. 이는 마치 용감한 항해자가 먼 항해를 떠나기 위해 안전한 항구의 안락함을 떠나는 것과 같다.
귀찮다는 이유로 미루던 운동, 공부, 독서, 산책 같은 활동들이 나의 삶을 조금씩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이제 한번 생각해보자.
내가 미루는 이 행동들이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것일까? 유튜브를 보고, 넷플릭스를 즐기며, SNS 쇼츠를 탐색할 시간은 있으면서, 진짜 내 삶을 변화시킬 중요한 일들에는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다는 것이 맞을까?
사람은 편안함을 추구한다. 서 있을 때는 앉고 싶고, 앉아 있을 때는 눕고 싶어 한다. 불편한 선택을 자발적으로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쉬운 길을 택하며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삶의 변화를 기대한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사막을 건너는 여정처럼, 생각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요구한다.
수십 년 동안 같은 길을 걷다가, 하루아침에 다른 길로 접어들겠다고 결심한다 해도, 발걸음이 쉽게 옮겨지지는 않는다.
나 역시 그랬다. 몸을 만들기 위해 전문적으로 운동을 배운 적은 없지만, 매일 꾸준히 운동을 해왔다. 그러다 문득 깨달은 것은, 사람이란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에만 손이 가게 된다는 점이었다.
전문적인 지식 없이 운동하다 보니, 물 흐르듯 편한 자세로만 흘러가는 운동을 해 왔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후 운동을 잘하는 후배에게 자세부터 다시 배우며 운동을 시작하니, 같은 무게를 들더라도 마치 산을 오르는 듯 훨씬 더 힘든 노력이 필요하게 느껴졌다.
운동조차 이렇게 힘든데, 내 삶에서 편안함만을 추구한 것이 과연 이것뿐일까? 분명 아니다. 퇴근 후 내가 하는 모든 일들 역시 내가 편하다고 느끼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서야 나는 편안함에서 벗어나 불편한 선택을 하지 않으면 결코 발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변화는 마치 폭풍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 안전한 항구의 편안함을 뒤로하고 험난한 파도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절대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없다.
변화를 위해서는 불편함이 불가피하며, 그 불편함을 감수할 각오가 없다면 진정한 출발조차 불가능하다. 이러한 준비 없이는, 변화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은 꿈조차 꾸지 못할 일이다.
나는 몸이 가벼워 혼자서는 잘 달릴 수 있었지만, 무거운 군장을 지고 산을 오를 때는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체력이 바닥을 드러냈다. 내가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새로운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매일 퇴근 후, 나는 나무가 겨울 동안 뿌리를 깊게 내리듯, 내 체력을 키우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우리가 삶에서 어떤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 자신을 무한한 가능성에서 차단하게 된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이미 알고 있다. 다만 그 일을 두려워할 뿐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믿지 말라.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불편함을 스스로 선택할 용기가 필요하다.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마치 별똥별처럼 갑자기 빛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그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 동안 자신에게 불편한 선택을 계속해서 감내해왔다.
처음부터 쉬운 길만을 걷는 사람은 결국 험난한 길을 만나게 되는 법이다.
산 정상을 향해 오르는 길은 풍경을 가리는 짙은 안개와 맞서 싸우듯, 험난한 경사를 이겨내야만 한다.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길 때, 길은 멀고 고단하지만, 그 정상에 섰을 때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은 모든 고난의 가치를 증명한다. 불편함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 경치를 경험할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았을 것이다.
고층 빌딩을 올라갈 때 우리는 자주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그 편리함의 대가로 우리가 치르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의 건강이다. 계단을 이용하는 것은 힘들고 불편할 수 있지만,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건강을 조금씩 쌓아간다. 편한 길을 택하면 목적지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불편한 선택을 할 때만 우리는 진정으로 유익한 영양분을 얻을 수 있다.
불편한 것들을 계속하는 것은 마치 자신의 내면에 거친 바위를 맞닥뜨리고도 계속해서 오르는 등산가와 같다. 달리기를 할 때도, 숨이 차 올라 목구멍까지 느껴질 정도로 몸을 밀어붙이는 이들과, 조금만 힘들어도 멈추는 이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체력은 물론, 모든 면에서 성장하는 것은 그 한계를 뛰어넘어 자신을 밀어붙인 이들이다. 힘든 순간을 견디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사람만이, 현재의 자신을 초월한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다.
나는 계속해서 독서와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다. 사실 이런 활동은 누구의 강요도 아닌 자발적인 선택이지만, 새벽부터 일어나 이를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다. 피곤함은 나를 유혹하고, 출근할 필요도 없어서 언제든 원하는 만큼 잠을 청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나는 계속해서 불편을 택한다. 이는 마치 잔잔한 호수를 뒤로하고 거센 강물을 향해 노를 젓는 것과 같다. 한결 편안할 수 있는 선택을 피하고, 결국 더 큰 도전을 향해 나아가기 때문이다.
지금 미리 겪는 이 불편함들이 미래에 나에게 더욱 편안한 삶을 선사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불가능과 불편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설정한 한계는 그 자체로 한계가 되어 버린다. 불가능하다고 마음먹는 순간, 모든 가능성의 문을 스스로 닫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새로운 시도를 멈추는 순간, 우리는 성장의 기회를 잃는다. 불편함을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순간, 그것은 진짜로 극복할 수 없는 장벽이 되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