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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의 선율, 굉음의 질문 - 슈베르트 4개의 즉흥곡

by 클래식덕후문쌤

Schubert 4 Impromptus D. 899 op. 90

- Krystian Zimerman

- 1990.2. Grosser Saal, Rudolf-Oetker-Halle, Bielefeld



Episode.1


음악의 역사에서 어떤 선율들은 시대를 뛰어넘어 살아남습니다. 프란츠 슈베르트의 4개의 즉흥곡 도이치 번호 899의 세 번째 곡(Impromptu D. 899 Op.90 No.3 in G♭ Major)은 그런 선율 중 하나입니다. 그가 이 곡을 쓴 1827년, 빈의 겨울은 쓸쓸했습니다. 병든 몸으로 죽음을 예감하던 스물아홉의 작곡가는 커다란 교향곡 대신 작은 피아노 곡 안에 인간의 고요한 내면을 담았습니다. 그로부터 160여 년 후,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짐머만은 이 곡을 새롭게 해석하며 20세기말의 감성으로 되살렸습니다. 짐머만이 이 곡을 녹음하기 14년 전, 영국의 록 밴드 Manfred Mann’s Earth Band는 그 선율을 전자음 속으로 불러내어〈Questions>이라는 곡으로 만들었습니다. 세 사람(혹은 세 집단)의 시대는 다르지만, 그들이 바라본 인간의 정서는 놀라울 만큼 닮아 있습니다. 그것은 침묵 속의 불안, 그리고 그 불안을 받아들이는 용기입니다.




Episode.2


1827년의 슈베르트는 가난했고, 병들었으며, 세상으로부터 거의 잊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여전히 놀랍도록 맑았습니다. 즉흥곡 D.899의 세 번째 곡은 잔잔한 G♭장조의 물결 위로 흘러나오는 하나의 멜로디, 마치 속삭이듯 조용하지만, 그 안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응시하는 맑은 체념의 빛이 담겨 있습니다. 그의 음악은 울부짖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조용해서 슬픔이 더 선명하게 들립니다. 이 곡은 “슬프다”라고 말하지 않고, 그저 “이것이 삶이다”라고 속삭이는 듯합니다. 그 점에서 슈베르트의 서정은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감정의 진실입니다.




Episode.3


크리스티안 짐머만의 1990년 녹음은 이 곡이 왜 그렇게 위대한지 다시 깨닫게 해 줍니다. 그는 슈베르트의 음악을 단순히 ‘아름답게’ 연주하지 않습니다. 짐머만의 손끝에서는 한 음 한 음이 공기처럼 투명하면서도 무게를 가진 존재가 됩니다. 그의 연주는 감정을 억누르지 않지만, 결코 흐트러지지도 않습니다. 페달을 살짝 머금은 울림 속에서 선율은 마치 ‘숨 쉬는 시간’을 갖는 듯합니다. 그 시간 속에서 청자는 슈베르트가 느꼈던 고요한 절망, 그럼에도 살아 있으려는 희미한 의지를 함께 듣게 됩니다. 짐머만의 피아니즘은 ‘절제의 미학’입니다. 그는 감정을 숨기지 않되, 그것을 넘치게 하지 않습니다. 그의 연주는 고통조차 구조화된 아름다움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그래서 그의 슈베르트는 듣는 이를 울리지 않고, 그저 오래도록 생각하게 만듭니다.




Episode.4


1976년, Manfred Mann’s Earth Band는 슈베르트의 4개의 즉흥곡 중 D.899의 세 번째 곡 선율을 직접 샘플링해〈Questions〉이라는 곡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원곡의 피아노 아르페지오를 거의 그대로 가져오되, 그 위에 신시사이저의 투명한 음색과 록 밴드의 리듬을 얹었습니다. 그 결과, 19세기의 고요한 명상은 20세기의 불안한 물음으로 변주됩니다.

〈Questions〉의 가사는 이렇게 묻습니다.

“In a dream it would seem

I went to those who close the open door.

Turning the key, I sat and spoke

to those inside of me.”

"꿈속에서 난,

열린 문을 닫는 이들에게 갔던 것 같아.

열쇠를 돌리고, 나는 앉아서

내 안의 그들과

이야기를 시작했어."


이 가사는 꿈속에서 문을 잠그고 내면의 존재들과 대화하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그들은 질문으로 대답하며, 밤의 어둠 속으로 인도합니다. 이 곡은 인간 내면의 갈등과 혼란을 표현하며, 시대를 초월한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 곡이 수록된 앨범의 제목 The Roaring Silence (포효하는 침묵)은 이 곡의 정서를 정확히 표현합니다. 소리가 넘치는 시대일수록, 인간의 진짜 목소리는 더 들리지 않게 됩니다. <Questions>은 그 침묵 속에서 슈베르트의 고요를 다시 불러내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답할 차례다.”




Episode.5


슈베르트는 죽음을 앞둔 인간의 내면적 침묵을, 짐머만은 그 침묵을 음색과 시간의 질서로, Manfred Mann’s Earth Band는 그 질서를 현대의 질문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들의 음악은 모두 한 가지를 향합니다. 바로 “인간이 자기감정과 어떻게 마주하는가”라는 문제입니다. 슈베르트는 고요히 받아들이고, 짐머만은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Manfred Mann’s Earth Band는 거대한 소음 속에서도 그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 선율은 세기를 건너며 각 시대의 감정 언어로 번역되었지만, 그 본질은 한결같습니다. 감정의 진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Episode.6


슈베르트의 즉흥곡은 짐머만의 손에서 다시 살아났고, 키보디스트 Manfred Mann의 신시사이저 속에서 또 한 번 새로워졌습니다. 그 선율이 여전히 우리 마음을 흔드는 이유는, 그 속에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질문이 있기 때문입니다. 슈베르트는 죽음을 앞두고 묻고, 짐머만은 그 질문을 연주로 되새기며, Manfred Mann’s Earth Band는 노래로 외칩니다. “우리는 여전히 듣고 있는가? 고요 속에서 울리는 인간의 목소리를.” 그 질문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조용하지만 끈질기게 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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