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 교향곡 4번과 마사치오, 그리고 하이팅크
- Bernard Haitink,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 1979.1, 런던 킹스웨이 홀
Episode.1
마사치오의 작품 성삼위일체를 바라보면 언제나 마음이 조용해집니다.
이 벽화는 르네상스 초입에 세워진 작은 문 같아서,
그 문을 통해 세계가 다시 정리되는 듯한 감각을 줍니다.
단단한 기둥과 아치 구조가 깊이 있는 공간을 열고,
한 방향에서 떨어지는 빛이 인물을 차분하게 감싸며, 화면 전체가 고요한 긴장으로 유지됩니다.
장식은 거의 없지만, 그 절제된 구성이 오히려 시선을 깊이 끌어당깁니다.
마사치오는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 사람처럼 보입니다.
질서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위로가 되던 시대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Episode.2
쇼스타코비치가 교향곡 4번을 쓰던 1936년은 이와 정반대의 세계였습니다.
그의 일상에는 질서가 아니라 공포가 자리하고 있었고,
음악은 예술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그가 마음 한편에서 기대고 있던 중심축은 어느 순간부터 흔들렸고,
그 흔들림이 악장 전체에 그대로 배어 나왔습니다.
그래서 4번은 완성된 세계를 그리는 교향곡이 아니라,
중심을 잃은 채 하루를 버티는 인간의 기록처럼 들립니다.
저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마사치오가 그러했듯 쇼스타코비치 또한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질서를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다만 그 질서는 이 시대의 무게 앞에서 끝내 형태를 유지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Episode.3
이 곡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해석은 베르나르트 하이팅크가 런던필과 남긴 연주입니다.
하이팅크는 음악 앞에서 과장을 거의 허락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빠른 판단이나 선명한 제스처보다, 음향이 스스로 보여줄 수 있는 만큼만 드러내도록 기다리는 편이었고,
그 침착한 태도는 그의 전 레퍼토리에 걸쳐 일관됩니다.
쇼스타코비치 4번에서도 그는 음악의 혼란을 억지로 통제하기보다,
그 혼란 속에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구조적 선을 조용히 비추어 줍니다.
마사치오가 깊이를 드러내는 방식을 닮은 해석이라 해야 할까요.
겉으로는 절제되어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긴장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1악장 - Allegretto Poco Moderato - Presto(조금 빠르면서도 조금 절제된 속도로 - 매우 빠르게)
https://www.youtube.com/watch?v=3BLoe50wJ8U&list=PLBJenJIJrq0wqHpIONvWkakG699wLYEu5&index=15
https://www.youtube.com/watch?v=P_nooPmheaI&list=PLBJenJIJrq0wqHpIONvWkakG699wLYEu5&index=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