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과 존 덴버의 〈Annie’s Song〉
- Evgeny Svetlanov, USSR State Symphony Orchestra
- 1990.6.3, 도쿄 산토리홀
Episode.1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은 종종 ‘운명 극복의 교향곡’으로 소개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이 음악은 결코 단정한 극복의 서사로 귀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교향곡은 끝내 확신에 도달하지 못한 채,
그 상태 자체를 음악으로 유지하려는 시도에 가깝습니다.
차이코프스키에게 교향곡은 승리를 선언하는 형식이 아니라,
흔들리는 감정을 끝까지 견디기 위한 가장 큰 그릇이었습니다.
Episode.2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는 자신의 내면을 정리한 뒤 음악을 쓰는 작곡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늘 감정 한가운데서 작곡했고, 그 감정은 정리되기보다 증폭된 채 음악 속으로 흘러들어 갔습니다.
교향곡 5번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4번 교향곡 이후 이어진 창작 침체와 자기 회의 속에서,
그는 이 작품의 구상 노트에 “완전한 체념인가, 아니면 믿음인가”라는 문장을 남깁니다.
이 질문은 해답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끝내 지워지지 않는 질문으로 남기기 위한 메모에 가깝습니다.
Episode.3
교향곡 5번의 전체 구조는 전 악장을 관통하는 이른바 ‘운명 모티프’에 의해 지탱됩니다.
그러나 이 운명은 외부에서 내려오는 시련이나 극복의 대상이 아닙니다.
차이코프스키의 운명은 언제나 내면적이며, 감정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이 모티프는 반복될수록 선명해지기보다, 삶의 배경음처럼 스며들며 존재감을 키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RpJX3NXd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