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완공되지 않기 위해 지어진 것들(3)

브루크너 교향곡 9번과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머무는 시간

by 클래식덕후문쌤

브루크너 교향곡 9번 3악장 - Adagio. Langsam, feierlich(아다지오. 느리게, 장엄하게)

https://www.youtube.com/watch?v=69gKGL4Yekw



Episode.6


이 교향곡을 이렇게 ‘머무는 음악’으로 들리게 만드는 연주가


바로 세르주 첼리비다케가 뮌헨 필하모닉과 남긴 1995년 실황 녹음입니다.(EMI)


첼리비다케는 이 작품을 정리하거나 설명하지 않습니다.


템포로 감정을 조절하지도 않고, 클라이맥스를 인위적으로 강조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소리가 울리고 사라질 시간을 끝까지 허락합니다.


이 연주에서 선율은 서두르지 않고,


리듬은 우리를 끌고 가지 않으며,


악기들은 각자의 위치에 오래 머뭅니다.


그래서 이 음악은 연주라기보다, 공간 안에 세워진 구조물처럼 존재합니다.



IMG_5792.jpeg



Episode.7


바로 이 지점에서 저는 안토니오 가우디와


그의 역작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떠올리게 됩니다.


이 성당은 아직도 공사 중이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이 건축을 미완성으로 느끼게 하지는 않습니다.


가우디는 애초에 이 성당을 ‘완공될 건물’로 설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간의 수명을 넘어서는 시간을 전제로,


자연이 자라나듯 성장하는 구조를 상상했습니다.



1280px-Exterior_Sagrada_Fam%C3%ADlia2.jpg 사그라다 파밀리아



Episode.8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내부에 들어서면,


기둥은 나무처럼 갈라지고 빛은 위에서 아래로 스며듭니다.


장식과 구조의 경계는 흐려지고,


장엄함은 덧붙여진 결과가 아니라 오래 머문 시간의 축적으로 느껴집니다.


이 성당은 끝을 향해 달려가지 않습니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시간이 쌓이는 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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