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크너 교향곡 9번과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머무는 시간
Episode.9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도 그렇습니다.
이 음악은 결말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첼리비다케의 연주는 그 태도를 훼손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 교향곡을 완성하려 들지 않고,
다만 음악이 스스로 서 있을 수 있도록 기다립니다.
그래서 이 연주를 듣는 경험은,
완공된 건축물을 감상하는 일이 아니라
공사 중인 성당 안에 조용히 들어가 서 있는 경험과 닮아 있습니다.
결국 이 연결의 핵심은 장엄함이 아닙니다.
장엄함은 결과가 아니라 태도입니다.
가우디는 완공을 미루는 건축을 선택했고,
브루크너는 결말을 남기지 않는 음악을 남겼으며,
첼리비다케는 그 음악을 서두르지 않는 방식으로 세웠습니다.
이 셋은 모두 완성보다 지속을 택했습니다.
Episode.10
그래서 이 교향곡을 듣고 나면,
무언가를 이해했다기보다 한동안 그 공간에 머물렀다는 감각이 남습니다.
끝나지 않았지만 무너지지 않는 구조,
완성되지 않았기에 오히려 단단한 형식.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과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그렇게 우리에게 묻습니다.
모든 것은 끝나야만 의미를 갖는가,
혹은 끝나지 않기에 더 오래 남을 수 있는가를.
아마도 우리가 이 음악과 이 건축을 반복해서 찾게 되는 이유는 같습니다.
둘 다 우리에게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조용히 머무를 수 있는 용기를 요구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