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크너 교향곡 9번과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머무는 시간
브루크너 교향곡 9번 2악장 - Scherzo. Bewegt, lebhaft - Trio. Schnell(스케르초. 움직이듯, 활기차게 – 트리오. 빠르게)
https://www.youtube.com/watch?v=IuHkNRk8KGQ
Episode.3
1악장은 마치 거대한 공간의 윤곽을 천천히 드러내는 듯 시작합니다.
현악기의 낮은 트레몰로 위로 금관이 조심스럽게 울려 퍼지며,
명확한 주선율보다는 음향의 덩어리가 먼저 형성됩니다.
호른과 트럼펫은 영웅적으로 외치지 않고,
멀리서 울리는 종소리처럼 공간의 깊이를 만듭니다.
리듬은 전진하기보다 쌓였다가 멈추고, 다시 쌓이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이 악장은 이야기를 시작하는 서문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물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Episode.4
2악장은 스케르초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유희의 흔적은 거의 없습니다.
반복되는 리듬은 집요하고, 현악과 금관의 교차는 날카롭습니다.
이 리듬은 춤을 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같은 자리를 맴도는 의식처럼,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구조를 형성합니다.
잠시 숨을 고르는 트리오가 등장하지만, 곧 다시 원래의 반복으로 돌아옵니다.
이 악장은 대비를 위한 장치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낸 질서가 얼마나 강박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Episode.5
3악장 아다지오에 이르면, 음악은 거의 말을 멈춥니다.
현악은 길게 호흡하며 선율을 이어 가지만, 감정을 과시하지 않습니다.
특히 바그너 튜바와 호른의 음색은 이 악장에서 결정적입니다.
이 악기들은 빛나기보다, 음악의 무게를 지탱하는 기둥처럼 서 있습니다.
리듬은 흐릿해지고, 박자는 흐름 속에 녹아듭니다.
이 아다지오는 위로나 슬픔의 표현이 아닙니다.
그저 끝까지 견디는 상태를 유지합니다.
브루크너는 여기서 신에게 질문하지 않습니다.
그는 침묵 속에 머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