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질서있는 전쟁

전열보병의 광기어린 죽음

by 니노의성

한 줄로 늘어서서 총을 쏜다.
그 앞에 있는 적 역시 마찬가지다.
죽음을 향해 질서정연하게 걸어 들어가는 모습.
그건 우리가 상상하는 전투의 모습이 아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도망치고, 숨고, 피하고, 살길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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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한 발 앞으로.
그리고 또 한 발.

도대체 무슨 광기인가.

전열보병은 인간이 만든 가장 기이한 전투 형식 중 하나다.
길게 줄을 세운다. 사격을 한다. 죽는다. 다시 줄을 선다.
그 반복 속에서 수천 명이 스러진다.

누군가는 말한다.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다."
"머스킷은 정확도가 낮았고, 일제사격이 유일한 해법이었다."
"전술적으로 어쩔 수 없었다."

맞다.
전술적 설명은 이해된다.
그런데도 이해되지 않는다.

어떻게 인간이 그렇게 싸울 수 있었을까?

그들은 정말 죽음이 두렵지 않았을까?

아니다. 모두가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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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도망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하나가 아니다.

"다 같이 하면 덜 무섭다"는 심리.
집단 속에 있을 때, 인간은 감정을 나눌 수 있다.
혼자였다면 발을 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백 명이 줄을 맞춰 전진할 때,
두려움은 개인의 감정이 아닌, 무리의 분위기로 바뀐다.

죽음에 대한 감각 자체가 지금과 달랐다.
당시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짧은 인생을 살았다.
병, 사고, 전염병, 기근…
죽음은 늘 곁에 있었고, 피할 수 없는 일처럼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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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죽음을 ‘비극’으로 느낄 때,
그들은 그것을 ‘운명’이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모든 감정보다 더 강력한 힘이 있었다.

명령.
규율.
복종.

전투는 개인의 용기로 움직이지 않는다.
전투는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지휘관의 명령은 곧 생사였다.
전열에서 도망치는 자는 적의 총에 맞기 전에 아군의 총에 맞았다.
군율은 엄격했고, 복종은 살아남기 위한 최소 조건이었다.

훈련은 인간의 공포를 제거하지 않았다.
그 대신, 공포를 체계적으로 ‘이용’했다.
“두려움을 느낄 틈도 없이 움직이게 만드는 것.”
그게 군대가 만든 구조였다.

전열보병 전술이란 건, 공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공포를 줄 세우고, 정렬하고, 지휘 계통 속에 가두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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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칠 수도 없다’는 절망은 ‘무조건 전진해야만 한다’는 기계적 충성으로 바뀐다.

공포는 인간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지만,
시스템은 그 공포를, 움직이게 만들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 장면이 눈에 선하다.
흙먼지가 가득한 벌판 위에서, 무표정한 병사들이 천천히 걸어간다.
앞줄의 병사가 쓰러지면, 뒤줄이 앞으로 나온다.
총을 쏘고, 재장전하며, 다시 앞으로.
그 모습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그건 시스템에 점령당한 인간의 잔해다.
생존 본능마저 복종하게 만든 시대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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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와 돌아보면, 그건 전쟁이 아니라 장례식에 가까웠다.

살기 위해 나간 전쟁터에서, 그들은 죽기 위해 움직였다.
마치 무대 위에서 짜인 안무처럼, 총성과 함께 무너져내렸다.

현대의 우리는 그런 전투를 미친 짓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시대의 병사들도,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다만 그들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의 우리도,
다른 형태의 전열 속에서 여전히 줄을 맞춰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줄은 보이지 않고,
우리는 그 줄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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